#2.

by 생명의 언어


1. 믿음에는 두 가지의 형상이 있으니, 하나는 한 존재의 영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맹세하는 실존적 결단이요, 나머지 하나는 이로 말미암아 평생의 삶에 걸쳐서 그분과 함께하는 동행의 여정 속에서 무르익어가는 믿음의 역사다. 신과의 관계는 한 번의 믿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믿는 자가 되었으니, 그는 삶 속에서 아무리 절망스럽고 막막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시며 또한 은밀히 보호하시고 때마다 먹을 것을 허락하시되, 언젠가 반드시 삶 속에서 나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그분과의 동행의 여정들이 쌓일수록 더욱 단단해져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은 열매를 낳으며, 이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소중한 역사들이 내 영혼 안에 쌓여가는 것이다. 그 보물들이 내 안에 쌓여갈수록, 믿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은 더욱 견고해져가리라.


2.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영혼은 영을 모시는 성전이며, 영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 안의 가장 깊고 은밀한 성소(Sanctum)이니,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그 성소에 가 닿음이요, 신부로서 나의 영혼이 성소 안에 계신 영원하신 신랑과 결혼의 식을 올리는 것이다. 그 성소 안에 가 닿을 적에, 한 존재 안에서 위대한 주권의 전환이 일어나고,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주권을 쥐지 않으며, 자기 이름의 거짓된 통치로 말미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집의 심각한 상태를 목격하되 이제 정당하신 왕 중의 왕(King of Kings)께서 그 집의 주(主)가 되셨으니, 이제 그는 자기의 이름을 버리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감이라. 이제 그는 주께서 돌아오시기를 소망하며 항구에 서서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가 되었으니, 잠시 길을 떠난 신랑께서 다시 집으로 귀환하실 적에, 오래 기다린 자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맞이하고 영접할 것이다.


3. 주는 영이시니, 주를 영접하려는 자는 마땅히 영과 진리로써 그분께로 나아가야 하리라. 영으로 계신 분을 영으로써 영접하지 않고 영이 아닌 육이나 그 나머지 것으로써 다가서려는 그 모든 시도들이 결국에 다 부질없고 무용한 것이니, 자기의 영혼으로도 말미암지 않고 오직 진실하고 깊은 영으로써 하나님을 영접할 것이며, 또한 세상에 속한 자들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되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나, 영으로써 그분을 영접하는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지 않는 채로 믿고 사랑하니, 이것은 육의 눈으로 그분을 보면 보이지 않되, 영의 눈으로만 보이지 않는 분을 오직 직접 볼 수 있음이기 때문이다.


4. 신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옷을 입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거니와, 그가 사랑하는 분께서 육을 보지 않으시되 오직 영만을 보시는 분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신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자들끼리 모여서는 전능하신 주(主)의 눈을 속이려고 자기들끼리 그 옷을 나누고 빼앗고 쟁탈하려고 아우성치니, 그들은 주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주의 시선과 눈빛이 어디까지 들여다보시는지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음이다. 내가 허름하고 가난한 옷을 입었다 하여 주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나의 육이 못생기고 쓸모가 없어지고 생기를 잃고 더럽혀졌다고 하더라도 주께서 결코 나를 더럽다 하여 외면치 않으시되 내게로 더욱 가까이 오셔서 친히 나를 씻기시고 깨끗한 새 옷을 입히실 것이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 앞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이는 그분 자신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옷을 입지 않거니와 오히려 자기의 옷을 빼앗아 나누려고 하는 자들을 용서하시려 기도하셨기 때문이라.


5. 진실로 주를 사랑하는 자는 이미 그분의 품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또한 그분께서 내 안에서 거처를 함께하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를 걸어가며 두려워할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이 진리와 생명이 되어 나를 언제나 보호하심이니, 삶의 모든 순간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므로 주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표증이 오직 내 심장 안에 있고 내 영혼 안에 있음을 알되, 구태여 외적인 표증을 목에 걸고 팔에다 걸고 손가락에 끼우지 않는다. 그러나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주께서 그의 안에 거하지 않으므로 그의 심장이 비어 있고 그의 영혼이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표증을 갈망하니, 그리하여 그는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팔찌를 차고, 반지를 손에 끼움으로써 그가 크리스천이라고 온 세상에 소리쳐 외친다.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이름을 모심이 너무도 두렵고도 경이롭고도 벅참으로 말미암아 감히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나,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주의 이름과 그 표증들을 자기를 돋보이게 할 화려한 장신구와 보물로 여기매 오히려 몸에 착용하여 바깥에 자랑하려 하기 때문이다.


6. 옛 시대에, 신앙의 길을 먼저 걸어갔던 사람들은 자기를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그 표증으로 말미암아 언제 죽임을 당할지를 알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은밀히 교회에 모이거나 혹은 홀로 골방에서 주를 영접하였으되 그것이 그들에게 크나큰 공포 가운데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로 말미암은 용기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피로써 열어놓은 그 길을 편안히 따라 걷는 자들은 오성급 호텔에서 편안히 숙식하면서 십자가를 진다고 말하니, 그들은 이제 자기를 크리스천이라 함을 세상에 밝힘으로 세상 그 누구도 그들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음이요, 따라서 날이 갈수록 그 표증의 무게와 진실함이 안일함과 게으름과 교만함으로 더럽혀져만 간다. 뒤이어 길을 걷는 자들은 먼저 길을 걸어간 자들에게 빚을 지며, 이 빚은 평생에 걸쳐서 갚더라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길을 여신 분,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메달리신 그분께 대하여, 오늘날의 형제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는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7. 나는 이미 보았다.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셨던 그 골고다 언덕에서, 대중들은 아무것도 모르므로 죄를 받지 않되 나는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다 알았고, 그분께서 왜 십자가를 지시는지도 다 알았으며, 또한 이로 말미암아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도 다 알았다. 그들은 몰랐으되 나는 다 알았다. 그러나 나는 내 목숨이 아까워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주께서 십자가 지신 가운데 나를 들여다보시는 눈빛을 내가 외면했다. 거부했다. 비겁하게 대중들 뒤에 숨었다. 나는 저를 모르노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노라고, 그렇게 세 번이 아니라 백 번, 천 번을 부정했다. 그러므로 나의 죄는 외면의 죄다. 수천 년의 그 시공간을 넘어서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나의 죄를 이미 다 보았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은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니요, 그럼에도 나를 용서하시고 심지어 기뻐하신다 하셨던 그분께 내가 진 빚을 평생에 걸쳐서 조금이라도 갚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과정일 뿐이다.


8.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내가 신앙을 선언하고 믿음을 선언하고 또한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이라 선언한다고 하여 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음이니, 내가 이를 진실로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이 안락함과 편안함 가운데에서, 주께서 흘린 피와 그분을 따랐던 고귀한 선배들의 영이 흘린 피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또 가벼운 이 가난한 자의 언어와 말로써라도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영성가들이 낡았다 하여 버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내가 주워들었고, 세상이 비웃고 모욕하고 조롱한 그분의 피가 엉겨붙은 그 이름을 내가 주웠으며, 다시 그 먼지를 털고 피를 씻고 정결히 하여 내가 그 옷을 입을 것이고, 그 이름을 내 심장에 새길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 진 나의 빚에 대한 최소한의 신앙적 양심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분을 세상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 늙어빠진 부모가 학부모 참관수업 날에 오는 것이 부끄러워 오지 말라고 소리치던 자녀된 자의 처참한 죄를 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내게 오시매,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남은 생애 전체 동안 모든 진영의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소외당하고 버림받을지라도, 나는 내게로 오신 그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며, 달려가서 그분의 품에 안길 것이며, 그분의 발등에 입을 맞출 것이다. 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결코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온 세상에 그분의 이름을 소리쳐 외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의지이며 나의 심장이다.


9. 창세 이전부터 계신 분의 외아들께서는 지상과 천상의 모든 생명들과 영들과 영혼들을 심판할 유일한 권세를 허락받으셨으되, 그분께서는 그 권세를 심판에 쓰지 않으시고 오직 십자가 위에서도 감히 하나님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비웃고 모욕하고 침뱉은 중죄를 저지른 자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만 그 특권을 사용하셨으니, 이는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천상의 권좌에 앉아서 사람을 위압하고 다스리시기만 하시지 않고 오직 종의 형상을 지니사 사람 가운데에 육신을 입고 스스로를 낮추셔서 우리 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내셨으니, 그분의 내려오심은 그 자체가 곧 그분께 얼마나 지독한 모욕이고 또한 치욕을 감수함인지를 깊은 묵상 가운데에서 심히 가슴 아파하고 또한 그 사랑에 공감하거니와, 그분을 사랑하는 진실한 자녀들은 모두가 그분의 성품을 닮아서 능숙함보다 가난함을 사랑하고 교만보다 진실함을 사랑하며, 자기를 높이기보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기를 청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신 바와 같이 우리들도 평생을 그와 같이 행하고 닮아가기를 소망함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자녀들은 그분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교만하지 아니하되, 자녀된 자는 늘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과 가난함과 간절함과 절실함과 눈물 흘림으로만 무릎 꿇고 엎드려 나아감이니, 그분 앞에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이야말로 그분의 자녀됨의 유일한 표증이다.


10. 한때 나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의 죄가 미쳐서 발광하였으므로, 나는 그분께서 나를 자녀로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천국의 문을 건널 자격을 얻었노라고 방종한 말들을 함부로 입에 담았다. 나는 이제 천국에 입성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 자신과 다르지 않으며, 나라가 임하는 것은 곧 그분께서 내 안에 임하시는 것이니, 나는 지금의 삶의 모든 순간마다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심으로 이미 나의 받을 상을 넘치도록 다 받았음을 안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내가 마침내 숨을 거둘 적에, 죽어서 그분 앞에 섰을 적에, 천국은 바라지도 않거니와 다만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 잘 왔다 나의 착하고 충성된 아이야, 너의 지상에서의 모든 삶의 모든 순간마다 늘 지켜보았고 또한 함께하였다, 그리고 너의 모든 순간들로 말미암아 내가 영광을 받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 말씀 하나만 내게 해주신다면 그것으로 내가 기꺼이 족할 것이다. 그 하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나는 남은 평생에 걸쳐서 이 길을 쉬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그분 안에서 부활한 자녀들에게 죽음은 공포가 아닌 약속된 평화이기 때문이다.


11. 누군가 내게 묻건대 : 당신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나는 내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자랑하려고 드는 죄성이 미쳐서 발악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것이 잠잠해질 적에 답한다 : "아니요, 나는 그분을 모릅니다." 그러자 그가 내게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 "그렇다면 당신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순간,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영의 음성을 내가 듣고 이를 말하리라 : "내가 아는 것은 둘뿐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로 인하여 기뻐하신다는 것. 단지 이것뿐입니다."


12.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마음을 아나니, 그분께서 누구의 안에서 함께하시는지를 보며 또한 주께서 그 자로 인하여 기뻐하실 적에 나 또한 주께서 함께하시는 자를 만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또한 그분께서 어느 곳에 계시며 또한 어느 곳에 계시지 않는지를 다 볼 수 있으니, 이는 나를 통하여 세상을 보시는 그분의 눈으로 말미암음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눈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매, 그분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내가 가서 주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노라고 전하며, 또한 늘 자기를 낮추고 선을 사랑하여 실천하는 자가 머무르는 그 작고 가난한 공간으로 가서 주의 음성을 전하기를 : 주께서 화려한 성전보다도 이 공간을 더욱 귀히 여기시며 편안히 거하십니다, 다만 그분의 음성을 그리 전할 수 있음에 내 영혼이 오직 이 일을 하기 위하여 태어났음을 알며, 나의 평생의 삶이 오직 그 사명 하나로 말미암음으로 인해서만 내가 크게 기뻐함이니.


13. 만약 오늘날의 시대에서 주께서 오셨더라면, 그분은 제일 먼저 어떤 이들의 곁으로 가셨을지, 그리고 무엇을 이루셨을지를 깊이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그분의 역사를 관상적 체험으로 목격하는 영광을 허락받았다. 오늘날 그분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에게로 가까이 갈 것이다. 특히, 그분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술과 도박과 마약에 손을 댔으나 스스로의 의지로 그것들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는 자들의 곁으로 가실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의 것들을 능히 심판하실 절대적 권세를 거느리신" 분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지도 비웃지도 모욕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들지도 않으실 것이다. 다만 그분은 그들의 곁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겁게 어울리며, 밤새 술잔을 기울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분의 신성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문을 연 그 은밀하고도 고귀한 새벽의 순간에, 그분은 딱 한 마디의 말씀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리라 :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평화가 있으리라. 그 순간에 그들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그 말씀을 진실로 믿고, 또한 그분과 함께 거듭날 것이다. 아, 그 순간을 깊은 관상 속에서 목격하며 내 영혼이 뜨거워지니, 그분께서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들을 감히 내가 어찌 비판하거나 부정할 수 있으리요.


14.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작은 일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지 못할진대, 그분께서 장차 내게 큰 사명을 허락하셨을 적에 어찌 그 일에 충성할 수 있겠는가. 아직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외롭고 쓸쓸한 시간 가운데에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닮아가기를 열망하지 않을진대, 어떻게 그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시기를 바라고 원할 수가 있겠는가. 내게로 보내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 목숨을 걸지 못하거늘, 어떻게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의 이름을 내가 알며 또한 사랑하노라고 감히 함부로 말할 수가 있겠는가.


15.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곧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작은 일에 대하여 내 전부를 걸고 충성하는 것은 곧 가장 위대한 신의 뜻에 충성하는 것과 같다. 선을 사랑하고 선행하는 자를 축복하며 은밀한 가운데에서 외로움과 슬픔과 함께 자기의 위로가 아닌 타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곧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임재하신 그분의 뜻을 사랑하고 닮아가는 것과 같다. 대개 인류를 위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언제나 사기꾼이었으되 주께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그들을 축복하사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며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분께는 한 사람이 집단 전체보다도 더 크며, 또한 그분은 집단과 세력과 함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집단으로부터 잊혀진 외로운 한 사람에게로 친히 임재하사 그와 거처를 함께하심이라.


16. 자유로운 영을 간직한 자만이 아버지를 볼 것이다. 온전한 영혼이 가슴에 깃든 자만이 주를 영접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으로 말미암은 모든 것들은 신성하지 않다. 신성은 오직 실재하는 아버지로 말미암으며,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은 오직 영과 진리로만 가능하다. 영이 자유롭지 않다면 이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17. 보이는 역사는 보이지 않는 진리가 실재가 되어 내 안에서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만, 진리의 한 부분으로 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선지 오래이며, 심지어 인간의 의지 안의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을 대다수 사람들이 함부로 보이는 것을 신성시하고 교조화하는데 쓰고 있으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이마저도 허락하시고 그들이 스스로 갇힌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그 인식의 감옥 안으로 찾아오시리라. 그러나 그들은 자유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함이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아버지의 품보다 감옥을 더 사랑하여 그곳에 남기를 고집함이라.


18. 언어와 글과 말과 지식과 관념은 인간의 언어이다. 그것은 분별이고, 억압이고, 두려움이고, 공포이고, 불안이고, 분리이고, 차별이고, 불완전성이고, 혼돈이고, 무질서이고,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것들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를 가리키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신의 언어는 직관이고, 영성이고, 체험이고, 현현이고, 실재이고, 현존이고, 생명이고, 빛이고, 영이니, 신의 언어는 문자(文字) 너머로 온다. 신의 음성을 직접 들은 자들은 부질없고 허망한 인간의 언어에 집착하지 않되, 다만 신을 만나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열등감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하여 문자를 교조화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신을 만들어 엎드려 절하고 제(祭)를 지낸다.


19. 사람 안에 하나님의 것이 깃들어 있음이니, 그들이 거짓된 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그 거짓이 그들 안에서 실재가 되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짓된 환영을 진실이라고 굳게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거짓으로는 그릇된 분별과 의(義)와 남을 심판하려 드는 교만을 낳되, 참 하나님을 만난 자들만이 성화(聖化)의 은총을 받는다.


20. 보이는 것만을 실체라고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는 마음의 근원은 무의식 깊은 곳의 원죄의 작용, 곧 공포로 인한 것이다. 이것을 직시하라. 그러나 보이는 것을 부정하지 않되, 보이는 것을 통하여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만나고 영접하고 교감하는 것은 은혜의 작용,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함이니, 이 자체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셔서 이끌고 인도하심이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나머지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이다.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그의 찰나의 눈빛 하나로 그의 마음 전체를 능히 알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다르지 않음이다.


21. 고요한 평화 가운데에서 어느새 내게로 오신 그분을 내가 영접하니, 그분은 보이는 것으로 오지 않으시되 다만 나의 영을 통하여 내 안에서 은밀히 모습을 드러내신다. 진실로 내가 그분이 오심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보이는 것으로는 드러내어 밝혀질 수 없다. "주관성"과 "직관"은 다르다. 주관성은 개체의식, 곧 자아로 인한 것이되 직관은 오직 영적 자아, 곧 "부활하신 영"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22. 그분의 사랑이 따뜻한 햇빛 가운데의 소리 없이 내리는 눈(雪)처럼 나를 품으니, 내가 그분이 오심 가운데에서 고요함에 젖어들고, 어느 순간에 세상의 공포와 마음의 불안을 넘어서 절대적인 평화 가운데에 거하니, 아, 내가 그 순간을 진실로 사랑하며, 그분의 눈(眼)을 바라보는 것을 진실로 사랑하며, 그리 오셔서 그 품에 안긴 가운데에 내 귓가에 속삭이는 그 음성을 듣기를 진실로 사랑하니, 이미 이 짧은 생애 가운데 셀 수 없이 내게로 오심으로 인하여 평생 살아서 얻을 모든 영광을 다 이루었음에 크게 기뻐한다.


23. 살아서 신을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 하나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실재하시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으니,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안에서 아버지께서 모습을 드러내시며, 그것이 곧 나의 영원한 생명이라. 이것을 살아서 이룬 자는 죽을 때 두려움이 없으되, 이는 부활하신 주를 영접한 자에게 죽음은 공포가 아니요 오직 내게 예비하신 약속된 평화임을 이미 확증받았으며, 그 언약의 표증을 내 안에 은밀히 심어두심이라.


24.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이를 자가 없느니라.


25. 그분께서 "내 아버지께서..."하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말씀하실 적에, 내가 그 문자(文字)에서 언제나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광을 영접하는 압도적인 경외와 감동과 기쁨에 젖어들었다. 그에 비하여, 내가 "아버지"라고 글로 쓰고 입으로 말할 적에, 그것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지를 내가 너무도 절실하게 느낀다. 아, 그러나 그 초라함 가운데에서 내가 하나의 진실을 발견하니, 나의 입으로 아버지를 말할 적에, 그 이름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담기었음을 깨달았다. 내게 아버지는 단지 이름이 아니며, 나의 영이 창조된 곳, 내가 언젠가 반드시 돌아가게 될 나의 본향(本鄕),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마침내 내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그분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될 것이며, 그 순간에 내가 어떠한 말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그분께서 내게 무어라 응답하실 것인지를 다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영의 그리움이자 타고난 이끌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께 대한 나의 사랑은 그리움이요, 외로움이요, 슬픔이요, 그러나 또한 경외이고 열망이고 충성이다.


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그분이 동굴의 문 앞에 서신다. 둘러선 무리들이 수군거린다. 소란스러움 가운데의 기묘한 적막감이 감돌며, 폭풍 전야와도 같은 예감이 모든 이들을 휘감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으나, 이제 곧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직감했으리라. 그분께서 기도를 올리신다. 창세 이전부터 계신 분, 한 음성만으로 일거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휘장처럼 거느리신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마침내 눈을 뜨실 적에,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지시하니 사람들이 모두가 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날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마침내 그분께서 우주 전체를 진동하는 천둥 같은 음성으로 명령하셨다 : "라자로야, 나오라." 아, 나는 이 짧은 글자들에서 너무나도 선명한 음성을 들었다. "부활", 그 위대한 권세 앞에 나의 영은 언제나 크게 경외한다.


28. 나의 가난함 가운데에서의 절실한 사랑, 그 하나로 성령께서 언제나 기뻐하셨으며 또한 오직 당신께 대한 나의 충성과 열망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드린 모든 청을 언제나 성령께서 주저치 않고 모두 다 이루어주셨으니, 이것이 자격 없는 자에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를 내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영께서 임하실 적에 얼마나 엄청난 사건들을 일으키시는지를 내가 익히 다 알고 있거니와, 성령께서 내게로 오실 적에는 그러한 엄격함과 근엄함을 전혀 드러내지를 않으시되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고 자비로우신 모습만을 보이셨으니, 내가 이것으로 인하여 언제나 크게 감동받고,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모르니,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또 다시 내 목숨을 걸고서 죄인을 용서해달라고, 어두움을 그에게서 내쫓아달라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저 가엾은 영혼들을 부디 보호하시고 축복하여 달라고, 눈물로 어처구니 없는 억지스러운 청을 또 다시 드리니, 성령께서 언제나 나의 그 억지스러움에 크게 기뻐하셨다. 이것이 나의 영광이고, 나의 생명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29. 도시 전체를 휘황찬란하게 밝힌 거대한 불빛 전체보다도, 평생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태양을 그리워하고 경외하며 그처럼 될 수 없음에도 그를 사랑하여 그를 닮아가고자 온 힘을 다하는 하나의 반딧불이의 빛으로 인하여 그분은 크게 기뻐하시리라. 이것을 진실로 깨닫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30. 오늘 하루의 일상 속에서 신을 만나지 못했는데, 성지를 순례하고 경전을 읽고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한들 신을 만날 수 있으랴. 햇빛과 바람과 이슬과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과 그 고요함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지를 못하거늘, 화려한 성전에 가서 예배드린들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알아볼 수가 있으랴.


31.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휘황찬란한 계시를 다 보여주신다고 한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의 찰나의 눈빛과 숨결에도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또한 무엇을 이루시는지를 모든 것을 다 알아보니, 이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이미 그분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32. 이제 세상은 성육신하신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보다도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인 바울을 더 섬긴다. 바울의 율법만 알고 바울의 사랑과 자기를 낮춤과 용기와 헌신을 모르는 자들이 도처에 넘쳐나서는, 바울만도 못한 자들이 바울의 공로를 빼앗아서는 바울의 이름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려 드니, 이 또한 그분의 뜻이심을 믿고 또한 쓰임받을 날을 기다리며 고요히 기도하고 묵상함이라.


33. 진실로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마음을 아나니, 그는 적(敵)을 만날 때에 적을 비난하지도 정죄하지도 심판하지도 않되 오히려 적을 만나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여, 적의 언어와 적의 문화와 적의 칼날을 받아들여서는 적과 함께 손잡고 그 가운데에서 자기를 통하여 드러나시는 그리스도의 빛에 적을 물들일 것이다. 도처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서 적을 심판하는 자들이 넘쳐나되, 내가 경고하니,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을 창으로 찔러 죽이신 자조차도 십자가 위에서까지 용서하셨음이라. 하물며 감히 그리스도를 쳐다보지도 못할 열등한 자들이 그분조차도 행하지 않으신 일을 하려 하는가.

이전 02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