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은 실재한다. 신의 실재는 곧 신의 이름이며, 신의 이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며, 신의 이름을 영접함은 "아버지의 이름의 거룩하심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사랑하는 자 안에서 아버지는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며, 그와 함께하실 것이다. 사람 중에서는 아버지를 직접 본 자가 없으되, 오직 부활하신 그분 자신만이 아버지를 직접 보았으며, 모든 사람에게 있어 아버지를 영접함은 곧 아버지의 이름을 영접함과 같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접함은 아버지의 이름의 거룩하심을 진실로 경외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과 같다. 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이 곧 신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2.
아버지께서 실재하신다. 아버지께서 임재하신다. 아버지께서 역사하신다. 신의 실재와 임재와 역사, 신을 믿는다는 것은 곧 신의 세 현현이 하나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신의 계심이 곧 신의 임재하심이며, 신의 임재하심이 곧 신의 역사하심이다. 사람은 자기 존재와, 뜻을 품는 것과,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각기 다르고 분리되어 있으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영원하고 완전하시기에 사람과 같지 아니하다. 따라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께서 계시며, 계심으로 말미암아 임재하시며,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계심과 임재와 역사를 각기 구분하여 믿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
3.
신은 존재하시지만, 존재보다 더 높다. 존재가 있기에 신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신이 계시기에 모든 존재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가 신으로부터 말미암음이므로, 따라서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보다 열등한 것으로 말미암아 보다 완전한 것을 가늠하고 측정하려는 자아의 망상적 관념일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존재보다 더 높이 계시다.
4.
신은 에너지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시며, 에너지를 통하여 우리가 그분을 체험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신이 에너지 그 자체이신 것은 아니다. 신은 에너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신은 에너지가 아니며, 다만 신은 에너지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신다. 이는 에너지를 통해서만 체험이 이루어지며, 체험을 통해서만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으며, 우리는 그분을 보아야만 그분을 믿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기에, 거룩하신 분께서 존재 전체보다도 더 모습을 낮추어 에너지보다 낮아지시는 치욕과 모욕을 감수하시고 스스로 모습을 낮추사 우리 안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함께하심이다. 따라서 에너지를 신처럼 숭배하는 모든 영성과 철학들은 신을 안다고 믿으며 신을 만났다고 증언하여 왔던 형제들보다 더 높다고 스스로 칭하나, 사실은 신을 한 번도 만나지 아니하였으며, 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함이다.
5.
사람은 비인격적 원리나 법칙 따위를 이해할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영접할 수도 없음이다. 비인격적 실재는 인간에게 오직 관념으로서만 인식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관념은 실재가 아니며, 따라서 인식은 실재를 만난 것이 아니라 실재를 만났다는 착각, 어리석음, 무지, 망상, 교만함이다. 사람은 오직 인격을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신 아버지만을 영접할 수 있으며, 인격은 자아가 아니며, 인격은 영이고, 인격은 영이 영혼을 통하여 자기를 드러냄이며, 인격은 영혼이 춤추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순수한 의식이 느끼고 체험하고 교감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버지는 인격이 아니시지만, 아버지는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하여 스스로 인격으로 낮추사 우리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인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다.
6.
관념은 실재가 아니다. 관념은 실재를 가리킬 수도 없다. 심지어 관념은 실재를 은유할 수조차도 없다. 은유는 오직 영과 영혼의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개 실재를 가리키는 은유는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어리석고 평범하고 서투르나, 실재를 영접한 자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도 경이롭고 아름답고 찬란하고 눈부시고 고귀한 것이니, 거룩하신 분께서는 오직 경외하는 자의 영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심이다. 관념은 인식을 낳고, 인식은 분별을 낳고, 분별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교만함을 낳으니, 결국 관념을 통해서는 진리와 신성을 영원히 만날 수 없고 아버지께로 영원히 이르지 못함이다. 관념의 허망하디 허망한 실체를 빨리 깨달을수록 성장이 더 빠름이며,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수억 년의 수행이라 하여도 다 무의미함이다.
7.
실재를 만난다는 것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실재 안에 아버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말미암아 실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신성 안에 있으며, 신성은 아버지 안에 있음이다. 실재를 만나는 것은 오직 부활하신 분을 영접하여 거듭난 자녀의 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영이 실재를 만나는 것은 경외이고, 경이로움이고, 거룩함이고, 영원과 초월이며, 감동이고, 기쁨이며, 이 모든 것들이 내면에서 영원한 샘물로 넘쳐흐르는 것이다. 참 생수를 맛본 자는 자신이 물을 마셨음을 알되, 물을 전혀 마시지 못한 자들끼리 모여서 누가 물을 마셨으며 물이 무엇인지를 관념으로 논쟁한다. 그 모습이 참으로 허망하기 이를 데 없음이다.
8.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시며,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영 안에서 경외와 경이로움으로 모습을 드러내시며, 그분을 영접한 나의 영은 나의 영혼 안에서 감동과 기쁨과 열망으로 넘쳐흐름으로 말미암아 모습을 드러냄이며, 나의 영혼이 나의 순수한 의식 안에서 모습을 드러낼 적에, 이것은 고요함이고 평온함이며 기도이고 묵상이며 찬양이고 예배이며 사랑이고 순수함이고 순결함이며 가난함이고 부끄러움이고 간절함히고 절실함이다. 나의 영과 영혼이 그분께 가까이 이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모든 순간마다 이끌고 인도하심이다. 체험은 실재가 아니지만, 체험을 통해서만 그분은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신다.
9.
참된 영접은 상위 감정으로 이루어지며, 거짓된 교만한 영접은 하위 감정으로 이루어짐이다. 상위 감정은 수동태이고 낮아짐이고 기쁨이며, 하위 감정은 능동태이고 높아짐이며 교만함이고 욕망이고 공포이다. 참으로 그분을 영접한 자는 자기 스스로도 알고 또한 그분께서도 아시되, 그분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자기가 영접하지 못하였음을 알지 못하되 영접하였노라고 믿고 교만하다. 자기 스스로 앎은 곧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기뻐함이며, 그분께서 아심은 나로 인하여 그분께서 크게 기뻐하심이다.
10.
사랑은 모든 생명들과 영혼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평등한 은혜이지만, 그분께서 크게 기뻐하심은 오직 진실로 그분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소수의 영과 영혼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며, 사랑보다 기쁨이 더 높다. 그러므로 참된 영접은 오직 그분으로 인해서만 내가 기뻐함이며, 또한 나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언제나 기뻐하심을 알고, 또한 이것을 다시 내가 기뻐함이다. 그분과 내가 기쁨 안에서 하나가 됨이다.
11.
순종은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의 죄성을 처절하게 목격한 자, 자아의 실체를 처참하게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자,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 무의식의 어두움에 깊이 빠져들어 그 안에서 고통 속에 절규하고 울부짖은 자, 고요한 지옥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새벽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한 자, 그 순간의 슬픔과 아픔과 눈물과 답답함과 쓸쓸함과 공허함을 다른 핑계와 변명을 대지 않고 오직 그분께 대한 충성 하나로 정면으로 통과하여 지나온 자, 그러한 자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여 순종의 기쁨이 꽃을 피우는 법이다. 슬픔을 알지 못하는 자, 기쁨도 알지 못한다. 순종은 슬픔과 기쁨이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12.
오직 그분 앞에 홀로 서본 자, 절대적으로 고독한 그 광야 한가운데에서 오직 성령께 의지해서만 꽃을 피운 자, 그러한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의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의지를 이해하는 자만이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증언할 수 있다. 광야를 모르는 자, 감히 함부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광야 한가운데에서, 그 무엇도 의지될 수 없고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오늘 하루의 생존과 안식을 장담할 수 없는 그 절박함의 신앙을 알지 못하는 자, 감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리라. 온실 안에서 안락하게 보호 받으면서 흘리는 눈물과, 광야 한가운데에서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고 죽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치며 본능적으로 성령을 찾은 자의 그것은 결코 같을 수가 없음이니.
13.
신앙은 감정이 아니다. 신앙의 첫 걸음은 감정으로 말미암으나, 자기 자신의 위로와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종처럼 부려먹는 것은 하늘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죄이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감정으로 남겨두지 말되, 감정에서 시작하여 순종과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순종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따름이요, 믿음은 그분께서 실재하시고 나와 함께하시며 또한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받아들이고 하나되는 것이다.
14.
하늘에 계신 아버지, 거룩하신 분의 이름, 신의 진명(眞名)을 감히 함부로 부르지 말라. 주여 주여 하지 말라. 신의 이름은 그 자체로 신성이요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이니, 그것은 세상의 언어와 이름과 결코 같지 않음이되, 오직 그분을 진실로 경외하고 찬양하는 자의 영으로 인해서만 조심스럽게 불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감히 함부로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올리지 말라.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적마다, 나의 존재 전체가 영원히 불타는 나무 앞에 선 그 이처럼 경외와 경이로움으로 요동치고 진동하여야 할 것이다.
15.
말씀은 경이로운 것이다. 말씀을 읽을 적에 내 존재 전체를 완전히 압도하는 거대한 경외와 경이로움과 감동과 기쁨이 없는 자는, 주의 이름을 그저 주문처럼 달달 왼다고 한들 모든 게 다 무용한 것이라.
16.
나의 이성을 무장해제하라. 지금껏 한평생을 그 이성이라는 완전무장을 하고서 인생이라는 전장을 떠돌았을진대, 그 갑옷을 벗는 순간 너는 죽고 말 것이라고, 사탄의 속임수에 지금껏 기만당하고 농락당하여 왔을 것이다. 이것은 강요될 수 없음이다. 그 갑옷을 벗을 적에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이용당하지 아니한다는 약속이나 보장을 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이성을 무장해제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단이다.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자, 죽기를 무릅쓰고 그 갑옷을 벗으라. 맨몸으로 그분 앞에 엎드려 자기 목숨을 제단 위에 제물로 바치라. 그 제물 앞에서 나의 슬픔이라는 향을 피우되, 그분께 기도하라 : 주여,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아니하거든 차라리 죽겠나이다. 자기 스스로를 움직이지 못하는 기도가 어찌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분께 닿을 수 있으랴. 그 갑옷을 벗고,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마음으로, 바보 천치가 되어서, 멍청하고 열등하고 어리석고 진부하고 가난한 자가 되어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조롱을 받고 멸시를 받으면서, 오직 외로운 심정으로 그분 앞에 엎드리라. 그 시간은 실로 길고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평생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절망이요 고요한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여, 기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영혼을 결코 외면치 아니하심이니, 마침내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사, 그의 영은 새로이 깨어날 것이고, 그의 영혼은 빛으로 비추어 밝히어지리라. 그날에, 그는 자기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할 것이며, 그분의 휘황찬란한 빛을 목격한 증인이 되리라.
17.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믿지 않으며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자, 그분을 선택지 아니하고 그분을 버리고 그분 아닌 것을 허망히 선택한 자, 그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를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말되, 그를 조롱하거나 비웃지 말되, 그의 잘잘못을 따지고 분석하지 말되, 다만 그의 영혼이 깨어나고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기를 기도하거니와, 이는 오직 성령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이니, 성령께서 그에게 함께하사 자비를 베푸시기만을 기도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 심판이 아닌 구원에 있음이며, 그 외아들께서도 십자가 위에서조차도 오직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만 사용하심이라.
18.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멸시받고 비웃음 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낮은 자들,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 그러한 자들을 진실로 주님을 영접하듯이 하며, 그들 앞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며, 그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는 자, 그는 그 어떤 영적 재능이나 능력 따위를 타고나지 않았으며 또한 평생에 단 한 번도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였더라도 이미 그의 가난하고 진실한 마음 하나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친히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하심이라. 가난한 자, 순수한 자, 진실한 자,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라.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자,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 앞에서 언제나 떨리는 심정으로 엎드리는 그분의 자녀들은, 이 말의 무게를 알리라.
19.
기도는 말로 하지 말라. 기도는 오직 자기 안에서 그분을 향하여 끓어오르는 경외와 경이로움과 감동과 열망과 기쁨으로만 하라. 말로 하는 기도는 외식이요, 그분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영의 기도이니, 주는 영이시되, 오직 영으로 하는 기도만을 들으심이라.
20.
그분은 가장 높은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절대자이시니, 그분께 세상의 능력과 힘은 다 무용함이요,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의 상태 또한 다 부질없음이라. 그분은 오직 마음의 진실함과 의지의 절실함만을 보시니, 그 의지는 곧 가난함에서 비롯한 간절함과 절실함이라. 그분은 능숙한 자의 능숙한 기도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으시되 다만 가난한 자의 절실하고 떨리는 기도 하나로 인하여 임재하심이라. 하늘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성령께서, 가난한 이름 없는 영혼 하나의 간절하고 서투른 기도 하나로 인하여 임재하시리라.
21.
마음이 부유한 자는 그 부유함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영달과 평안을 누리겠으나, 그의 마음이 가득참으로 인하여 그분께서 임재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그 가난함을 인하여 육신의 슬픔과 상처와 아픔을 겪겠으나, 그 가운데에서 그가 마침내 어두움에 기만당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이름만을 간절히 부르짖을 때, 그분께서 그의 가난한 마음 한가운데에 임재하사, 가장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리라. 마음이 부유한 자는 가졌으므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으나 그 아무것도 갖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하늘의 모든 것을 다 가지리라.
22.
사람의 지식과 인식과 지혜로 말미암아 감히 아버지를 알지 못함이니, 그 오만하고 열등한 머리로 말마임아 감히 그분을 함부로 알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만하여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그 턱으로 그분을 가리킨 자, 심판을 받으리라. 경천(敬天),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지극히 두려워하고 또한 공경하고 사랑하고 엎드려 경배하고 찬미하여라.
2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을 향한 나의 영의 진실한 의지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무엇을 허락하시는지 또한 허락하지 않으시는지를 능히 다 알 수 있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을 향한 나의 영혼의 간절하고도 절실한 사랑 그 하나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누구를 사랑하시고 또한 누구로 인하여 기뻐하시는지를 다 알고 있음이니, 그는 그 사랑 하나로 말미암아 세상이 용서치 않는 죄인을 능히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노라고 선포할 수 있으며, 그는 그 사랑 하나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하나로 말미암아 천상의 모든 고귀한 영들이 그의 의로움을 찬미하며, 또한 창세 이전부터 계셨던 거룩하신 분께서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노라고, 감히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선포할 수 있음이니, 그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월권으로 인하여 결코 분노치 않으실 것이되, 오직 그 함부로 행한 선포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시리라.
24.
기사는 왕의 의지에 질문하지 않는다. 기사는 왕의 의지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것이 기사의 가장 날카로운 검(劍)이다. 기사는 왕의 깃발을 들고 왕께서 하사하신 검을 들고 왕께서 명령하신 의지를 받들며, 기사는 자기의 수고로움은 낮추어 감추되 오직 자기로 말미암아 왕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만을 열망하니, 그는 그 고귀한 의지로 말미암아 반드시 패전할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나아가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에서도 결코 물러섬이 없으니, 왕을 위하여 죽음은 기사의 영광이요, 왕을 위하여 자신의 영(Spirit)의 뜨거운 불꽃이 사그라짐은 기사의 영생이기 때문이라. 기사가 지친 몸을 이끌고 찢어진 깃발과 다 헤진 무거운 갑옷을 벗지 아니하되 왕의 앞으로 나아갈진대, 기사는 왕께 엎드려 결코 먼저 고개를 들지 아니하며, 왕께서 버선 발로 권좌에서 황급히 내려오셔서는 기사의 어깨를 붙잡고 친히 일으키실진대, 기사는 백 번, 천 번, 만 번을 그리하였더라도 그 순간에 진실로 크게 감동하며 그의 충심을 다시 회복할 것이다. 왕께서 권좌에서 내려오셔서 자기를 낮추사 기사의 곁으로 오심은 그분께 능히 가능한 일이며 또한 그분의 의로움일지라도, 왕께서 명령하시기 전에 기사가 감히 먼저 고개를 치켜들고 엎드린 자세를 일으키며 그분을 올려다보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음이라. 기사는 언제나 왕이 자신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것이 기사의 충성이며, 기사는 자기의 고난 한가운데에서도 오직 왕의 의로움만을 절실히 사랑하였음이니.
25.
그분께서는 익숙한 자의 능숙한 기도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으시며, 서투르고 가난한 자의 간절하고도 떨리는 기도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시리라. 그분께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십자가 달린 집에서 자기 뒤에 새겨진 십자가를 지신 외아들의 영광을 감히 함부로 빼앗아서는 그 자신의 권세인 마냥 설쳐대는 거짓 중보자들의 곁에 임하지 않으시되, 오직 세상에서 외면받고 거리로 내쫓겨서 추운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잠을 청하였음에도, 그분을 결코 원망치 아니하되 그토록 순결한 마음 하나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어느 작은 자 하나의 곁으로 은밀히 임재하시리라. 그가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께로 나아가기 위해 교회를 찾았을 적에, 엄숙한 복장을 갖춘 성직자가 그를 냄새나고 지저분하다 하여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내쫓을지니, 그리스도께서 그 성직자의 내쫓으심에 또한 함께 걸음을 돌리시되, 다만 그 가난한 자의 손을 잡으시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시며, 그와 함께 그 길바닥에서 또한 함께 아파하시고 또한 함께 기뻐하실지니, 그분께서 그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리라. 그러므로 그분의 일을 행하는 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신앙이 익숙해지고 능숙해졌는지를 경계하여야 할 일이며, 그분의 축복으로 인한 풍요 한가운데에서도 언제나 그 길바닥 한가운데에서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께서 어디에 임재하시며 또한 어디에 임재하지 않으시는지를 다 알 수 있으며, 그분을 열망하는 자는 그분께서 누구의 곁에서 거처를 함께하시며 또한 누구의 곁으로 오지 않으시는지를 다 알 수 있음이니, 그분의 뜻을 아는 자는 그분을 알고 그분께로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또한 그분을 절실히 사랑하는 마음이 나날이 커져감이라.
26.
세상으로부터 멸시받고 비난받고 소외당하고 조롱을 받는 자의 눈동자를 통하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의 눈동자를, 그분께서 고요히 들여다보시리라. 그 소외당한 가난하고 작은 자의 안에서 그분께서 함께하시되, 그를 보내사, 그분의 이름을 공공연히 부르며 그분의 제자를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시리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자녀임을 칭하는 자들이 삶 속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여라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마음을 단 한 찰나라도 품을진대, 그분께서 그의 안에서 그것을 능히 다 들여다보실 것이며, 청세 이전부터 계셨던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그분께서 그 하나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리라. 그 날에, 그분께서 물으시리라 : 너는 어찌하여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모욕하고 침을 뱉고 조롱하였느냐? 그러자 그가 억울해하며 말하기를 : 주여, 제가 언제 그리하였나이까? 제가 교회에 성실히 나가고 또한 헌금을 바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리라 :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누구를 사랑하여 누구와 함께하는지를 몰랐음이라."
27.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준비되었든 준비되지 않았든 간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절대적인 죽음을 맞이하며, 죽어서는 그분 앞에 설 것이다. 이에 내가 진실로 묻겠으니 : 스스로 원하여 태어나지 않았을진대, 죽음의 순간이 자기의 뜻대로 찾아올 것이라 믿는가? 내가 언제 죽을지를 알 수 없으며 또한 죽어서 어찌될지를 알 수 없을진대, 그 심판의 순간에, 그분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그분 앞에 설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서 세속의 부질없고 허망한 것들을 욕망한 자들은 그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요, 살아서 오직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자기 삶 속에서 실천하여 행하기를 열망하며, 의로운 십자가를 지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그날에 마침내 아버지의 얼굴을 영접할 것이요, 천국의 문을 건널 것이라.
28.
죽어서, 행하지 못한 선(善)이 아쉬울 것인가, 아니면 손에 쥐지 못한 보물이 아쉬울 것인가. 죽음의 순간에, 행하지 못한 사랑이 아쉬울 것인가, 악인을 향한 분노와 원망과 질투가 아쉬울 것인가.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적에, 그 죽음의 순간에서조차도, 신은 없노라고, 신은 죽었노라고 부정할 것인가.
29.
평생을 낮아지려 애쓴 자는 죽음의 순간에 가벼워질 것이다. 가벼워질 것이므로, 그의 영혼은 깃털처럼 하늘로 올라갈 것이며,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로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까워질 것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한평생을 움켜쥐고 채워넣고 쌓으면서 살아온 결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죽어서는 그 살아 평생의 무게로 인하여 영원히 아버지께로 가까워지지 못하리라. 그들은 그제서야 뒤늦게 절규하며 후회할 것이나, 그때는 이미 늦을지니, 이는 주께서 그의 살아 평생 동안 이미 기회를 허락하셨음이라.
3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지옥 한가운데에서도 담대할지니, 이는 그곳에서도 성령께서 능히 함께하심이라. 성령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를 또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능히 이루지 못함이 없으시니, 지옥 한가운데에서조차도 자녀의 곁에 임재하시며 또한 그 불길로부터 그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이끄심이라.
31.
우리 형제들은 이미 살아서 그분을 영접하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허락받았음이니, 더 이상 세속의 부질없는 것들을 취해서 무엇하랴. 그러므로 우리 형제들에게, 육신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고 공유함으로 인하여 그분께서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심을 얻는 것 하나뿐이니. 그분의 사랑은 내가 평생 동안에 사치하더라도 결코 다 쓰지 못함이기 때문이다.
32.
세상에서 현명한 자들은 죽음의 권세 아래에 놓임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조롱하고 멸시하니,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적에 그들이 사망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하에 인도받음으로 인하여 부활을 믿고 경외하고 열망하리니,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 아버지의 품에 안기리라.
33.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은 본능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며 또한 언젠가 하나님의 품으로 되돌아갈 것임을 알지니, 이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영혼이 언제나 열망하고 그리워함이라.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하나님께로 가까워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그분을 바라고 열망하지 않음이라. 이 하나로 인하여 누가 그분께서 보내신 자이며 그분의 말을 하는 자인지를 알 수 있으니,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열망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