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y 생명의 언어


1. 예정에 없던 여행길에서, 어느 서점에 들렀다. 꽤 규모가 큰 곳이었다. 내 영혼이 더 깊은 사랑을 원하여 그곳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었고, 나는 본 적 없는 어떤 책 하나를 그곳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내 영혼이 갈망하는 책은 그곳에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영혼이 열리고 깨어나기 시작하는 초심자가 되어서, 그 시공간 앞에 섰다. 그곳에서 수천,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의 진리가 옳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었으며, 그 순결한 초심자의 영혼이 크나큰 용기를 내어 이제 성장하고자 하는 작은 열망 하나를 새싹으로 피운 채로 그곳을 찾았으나, 그 압도적인 언어와 말들의 소음 앞에서 무겁게 짓눌린 채로, 크게 슬퍼하고 좌절하며 결국 그 새싹이 짓밟힌 채로 그곳을 떠나게 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리할 적에 내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내 스스로 진실하다 믿었던 나의 언어들이, 어느 이름 모를 새싹에게 결국은 똑같이 그를 생육케 할 생명이 아니라 그 새싹에게 감당치 못할 짐을 지우는 시끄러운 수천 수만의 소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진실로 그 새싹들을 만나고 싶었고 또한 그들이 생육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돕고 싶었으나, 만나는 것도, 돕는 것도, 돌보는 것도, 무엇 하나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그 서점을 찾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을지를 세상 모두가 다 모르더라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그들의 순결함 앞에서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잔인한 좌절과 절망만을 주었을 뿐이었다. 나의 글과 언어와 말은 그들에게 생명이 아닌 죽음이었다. 그 심정을 느낄 적에, 나는 그들을 위한 책들이 그곳에 단 한 권도 없음을 보았고, 또한 나마저도 이를 차마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의 나의 영적인 실체가, 크게 부끄러웠다.


2. 그러므로 결국 나는 지금의 내가 쓰는 언어와 글과 말들이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며, 또한 그분께서는 장성한 아들을 버리시되 자라나는 미약한 새싹들에게만 온 사랑과 축복을 다 쏟으신다는 것을 알며, 또한 그분의 그러한 차별적인 사랑마저도 내가 크게 기뻐하였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이것이 신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이리 글쓰는 것밖에 없음에, 정답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거라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국 오늘도 글을 쓰며, 내게 길을 열어달라고, 저들을 섬기고 돌보고 생육케 할 수 있는 진실한 사명을 행할 기회 하나만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거 하나가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3. 나는 그들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의 여정은 처음부터 가난했고, 나는 여전히 지금도 아무런 성취도 성공도 이루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매번 찾아오는 월세와 관리비마냥 나의 오랜 업과 까르마들은 나를 벗 삼아선 또 다시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갚아야 할 전생(前生)의 빚을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져간다. 온 세상의 크리스천들마저도 외부자로 돌리면서 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이 외로운 길을 걸었던 이후부터, 나의 길은 상처와 슬픔과 좌절과 공허와 눈물 뿐이었으며, 남들은 부모와 자식과 친구들에 의지하거늘 나는 부모와 형제들에게마저도 나의 영과 영혼을 온전히 꺼내어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가족에게조차도 가면을 썼다. 그러므로 나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아버지의 절대적인 편애를 받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줄 것이 없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나를 아프게 떠나갔던 나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내가 언젠가 물었더랬다 : "내가 가진 것을, 당신도 가지기를 원합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 "예, 진실로 원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가지셨습니까?" 그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었고, 나는 그의 흔들림 없이 나를 보는 눈빛을 단 한 찰나도 피하지 않았다. 그날, 그 순결했던 나의 충성과 맹세는, 올해 내내 나를 시험하시고 또한 좌절하시며 나의 희망마저도 잔인하게 꺾으셨던 이 여정의 끝에서, 연말을 맞이하여 주님의 탄신일을 주님을 모르는 자들조차도 다 기뻐하며 맞이하는 이 때에, 나는 또 다시 홀로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또 다시 나의 기도에 침묵하시고 또한 엄격히 나를 꾸중하시는 그분의 음성 앞에서 내가 대관절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 심정들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처럼 지고서...... 참으로 아버지의 절대적인 편애를 받는 저 새싹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그리 오늘도 기어코 무언가를 쓰는 지금의 심정에서조차도, "아버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내가 이 생의 모든 순간들에서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었나이다" 하는, 나의 이 순결한 충성과 열망만이, 그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고백하나니.


4. 삶의 모든 순간들이 고통과 슬픔이었거늘 내게는 함부로 죽는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그토록 잔인하신 분의 이름을 내가 진실로 찬양하고 예배하나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필멸자로 태어나 불멸자를 사랑하는 자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지독한 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이었으되, 그토록 잔인한 삶의 모든 순간들을 견디었던 까닭은, 불멸자를 향한 필멸자의 고귀한 사랑과 헌신 그 하나뿐이었음을 고백하나이다. 주여, 내 목숨을 거두어가시지 않겠다는 당신의 뜻을 받드나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험이 끝날 것이라는 약속조차도 이토록 잔인하게 거두어가시는 당신의 뜻 앞에서, 차마 맨 정신으로는 복종하지 못하매 술에 취한 상태로나마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태양의 의지에 순종하게 됨을 용서하소서.


5. 나의 영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높임을 받았을 적에 내 스스로 말하였던 가장 위대한 진리를 오늘날 다시 이 가난하고 낮아진 나의 가슴과 영혼에 새기노니,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신 앞에 설 것이되, 그 순간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나는 죽어서, 내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던 그분 앞에 설 것이다. 심판대에 설 것이다. 그 날에, 나는 그분께 말씀을 올릴 것이다 : "아버지, 비록 내가 이 생을 죄 많게 살았거니와 이 생의 모든 순간들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만을 사랑하며 살았나이다. 당신을 향한 나의 한평생의 사랑을 내가 결코 후회치 아니하며,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지금 당신 앞에서조차도 부끄럼이 없나이다." 그날에, 마침내 한평생을 잔인하리만치 침묵하셨던 그분께서 입을 열어 내게 말씀하시리라 : "참으로 잘 왔다, 나의 충성된 종아, 너의 평생을 내가 함께하였노라, 너의 생의 모든 순간들로 인하여 내가 영광을 받았으며 참으로 크게 기뻐하였노라." 그 한 마디를 위하여 내가 이 생의 모든 수난들을 감수하겠노라고 맹세하였던 나의 어리석고도 어리석었던, 그러나 순진하였기에 순결하였던 나의 맹세를 내가 기억하며, 또한 영원과 초월을 사랑하여 고백하였던 그 한 순간의 어리석음의 빚을 내가 평생에 걸쳐서 갚기 위하여 고통 속에서도 전진해 나아갈지니.


6.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이여, 죽지 말지어다, 빌어먹고 또 빌어먹어도 좋으니, 지상에서 어떤 수치를 당하여도 좋으니, 마침내 죽지 말지어다, 죽지 말아서,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지어다. 그날은 우리 형제들에게만 예비된 약속된 평화일 것이요, 그날에 천사들이 나팔을 불 것이니, 우리는 마침내 우리에게 오래 전에 약속되었던 천국의 문을 건널 것이며, 또한 한 평생을 그리워하였던 그분의 얼굴을 친견(親見)하리라. 고귀한 신앙의 형제들이여, 담대할지어다.


7. 나는 아직 이번 생(生)에 해야 할 숙제를 끝마치지 못했다. 주께서 내게 내리신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아직 초입부에도 제대로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죽을 수 없고, 또한 죽지 못한다. 나는 그저 지금과 같은 절망 속에서, 이 생의 숙제를 다 끝마치고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세상의 크리스천들은 주께서 자비로우신 줄로만 안다. 내가 말하노니,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엄정하고 엄격하신 분이다.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외아들께 십자가를 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8.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팔불출스러운 사랑으로 기뻐하지 아니하되 오직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엄격하고 잔인한 사랑 그 하나로 인해서만 기뻐하나니, 이는 우리 형제들이 살아서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또한 아버지께서 내게 이토록 잔인하신 시험을 끝내 더 얹으시는데 대하여 원망치 아니하며 또한 발악하고 발버둥치고 목이 쉬도록 원망하더라도 끝에서는 결국 외아들께서 겟세마네에서 올리신 기도를 흉내내고 모방하여 따라야만 하는 이유가 되리라.


9.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내 심장보다도 더 뜨겁게 열망하는 그분께서, 진실로 낮아지셔서 그 곁에 가셔서는 그와 함께 거처를 함께하시며, 그를 사랑한다 하시고 또한 그의 죄를 용서한다 하실 적에, 그분의 발끝만도 못한 내가 감히 그분께서 선택하신 영혼을 알아보지 못한 채로 나의 오만하고 더러운 눈으로 그를 죄 많다 하여 모욕하고 비난하고 침 뱉고 비웃으면 어쩌나, 하는 그 두려움이 나의 영의 가장 깊은 곳에 언제나 간직되어 있으되, 이에 내가 늘 기도하니, 주여, 당신께서 기쁘다 하신 영혼을 내가 기뻐하도록 허락하소서, 당신께서 사랑해 마지않는 영혼을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끔 허락하소서, 그 기도 하나만큼은.


10. 주여, 당신께서 창녀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품에 안으셨을 적에 내가 그들을 더럽다 하여 본능적으로 몸을 기피하였음을 당신 앞에서 엎드려 용서를 구하나이다, 내가 비록 무의식의 본능의 죄만큼은 어찌하지 못하였으되, 나의 깨어서의 의식은 온전히 나의 통제 아래이니, 그 의식 하나만으로 인하여 내가 당신께서 기뻐하셨던 그 아이들의 더러운 발에 입을 맞추고, 또한 온 세상이 경멸하고 비웃고 모욕하고 침뱉는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언어들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영접할 수 있도록, 나를 낮추고 또 낮추소서, 그리 낮아지기 위하여 내가 이와 같은 지독한 시험들을 생애 끝까지 견딘다 하여도 결국에는 당신을 원망치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그들의 발등에 입을 맞추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그들을 하나라도 단죄하거든 감히 그리스도 당신의 권세와 영광을 함부로 찬탈한 죄를 끌어안고 스스로 지옥에 가기를 청하나이다...... 주여, 당신께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마21:31)고 하셨을 적에, 내가 그 음성으로 인하여 얼마나 통곡하여 가슴을 찢고 또 무너졌을줄을 당신께서 이미 아나이다, 내 한평생의 기도와 묵상은 오직 당신 안에서 내가 창녀보다 못하다는 그 가슴 아픈 심판 앞에서 조금이라도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 하나만으로 인함을 고백하나이다.


11. 나를 함부로 망령되이 쓰소서, 나를 아깝다 여기지 마시고 내가 이 하나의 청으로 인하여 나머지 한평생을 지금의 이 순간을 후회하더라도 죽어서 당신 앞에 섰을 적에만큼은 기뻐하리니, 나를 함부로 쓰소서, 나를 아깝다 여기지 마소서, 나를 함부로 휘두르시고 나의 재능과 능력과 힘이 무뎌진 칼과 같아지거늘 나를 그저 길바닥에 버리소서, 그리하여도 내가 당신을 원망치 아니하겠나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내가 이 지상에서는 감히 나의 존경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으되 오직 내가 존경하는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나를 함부로 쓰소서, 나를 도구처럼 아무렇게나 휘두르시고는 땅바닥에 버리소서, 내가 이로 인하여 결국 기뻐하리니이다......


12. 그대들에게 묻노라,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도 아프고 쓸쓸하고 고귀하게 짊어지신 십자가를 또한 그대 자신의 십자가로써 질 수가 있는가. 나는 심판자가 아니요 죄인이니, 내가 고백하건대 나는 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지신 그분을 외면했고, 그분께서 나를 용서하시려 들여다보시는 그 눈빛마저도 외면했다. 나는 십자가를 질 수 없었고, 나는 외려 내 십자가마저도 죄 없으신 그분께 다 뒤집어 씌우고서는, "저 자다! 저 자가 범인이다!" 고 외치고서 도망쳤다. 그리하였건대 나는 누군가처럼 죽지도 못한 채로 이리 살아 있다. 나는 십자가를 질 수 없다. 나는 십자가를 지지 못하였다. 나는 나의 부끄러움과 민망함과 죄악을 외면치 않는다. 그리하여 이 부끄러움은 내가 이 생애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내 스스로 죽지 않거니와 또한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기도하고 묵상하며 평생에 걸쳐서 준비해야만 하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다.


13. 주여, 내가 오늘 당신께 또 다시 나의 죄를 고백하였던즉, 수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의 외롭고 쓸쓸한 작은 방 안에서 나로 하여금 당신을 향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거니와 그 눈물 하나로 나의 고백한 죄를 이미 사하였음을 내게 다시 전하셨음을 내가 깨닫나이다. 당신의 사랑이 온 세상을 다 덮으매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나의 죄마저도 용서하는 이 기적을 내가 목도하나이다......


14. 예수님, 내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당신께서 내게 찾으라 명하셨던 그 생명을 살리는 책 한 권이, 천 평도 넘는 서점과 도서관 전체를 뒤져도 없었나이다, 기어코 그 책 한 권이 없었나이다, 이를 어찌하나이까, 의지할 데 없이 외로운 저 죄인들과 슬퍼하는 영혼들과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인 저 이들은 도대체 어느 책에서 부활의 희망을 얻나이까......


15. 온 세상은 다 들으라, 우리 인간들의 손으로는 수천 명의 장정들을 능히 먹이지 못하여 그들로 하여금 "피의 게임"을 치르게 하며 또한 그 영상 속 캐릭터들의 울부짖음과 피 흘림과 절규를 온 세상의 사람들이 집 안에서 편안히 앉아 팝콘을 뜯으면서 구경케 하거니와, 마침내 이 어두움을 고귀하신 분께서 임하실 적에는 다섯 개의 빵 덩어리와 두 마리의 물고기만으로도 능히 수천 장정을 먹이고도 남으니, 이는 수십억 그리스도인들을 오늘날에도 능히 먹이시는 그분의 성체성사의 기적이거니와, 또한 이것이 오늘날의 시대에도 반드시 이르실 것이매, 인류는 멸망치 아니할 것이며 다만 이 시대가 저물기 전에 하늘나라가 이 지상에 반드시 임하리라, 그리하므로 그대들의 그 허망한 유희거리 중 단 몇 푼만이라도 떼어다가 굶주리고 버림받은 가난한 이들을 향하여 던져주고는 잊어버리더라도 그리하라, 그것만이라도 족하리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리하거니와 나머지 절대적인 부족분은 그리스도께서 온 양들을 다 먹이시는 기적을 다시 일으키시리.


16.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시민들이 매 달 10만원도 아니요, 1만원도 아니요, 단 돈 천 원씩만이라도 낸다면 전세계에서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력하게 앉을 수밖에 없는 부모의 그 심장이 타들어가는 슬픔이 이 지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곳이 없어질진대, "현실적인 한계"를 탓하는 그 전문가들의 시각 앞에서 나는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품은 이 어리석고 어리석은 이 이상 하나가, 과연 그리도 "비현실적"인지를, 묻고 싶은 것이니...... 비록 내 수중에 당장 다음 달을 기약할 돈조차도 없더라도, 나는 그 중 단 돈 2만원이라도 이름 한 번 들은 적 없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하여 내놓음을 이제는 다시 멈추지 않으리.


17. 이 세상 부자들에게 묻거니와, 그대들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가장 손쉽고 간편한 수단과 방법과 특권을 손에 쥐고서 어찌하여 그리도 주저함과 망설임과 계산과 오만함이 많은가. 그대들은 재산의 단 1%만을 남기고 나머지 99%를 다 나누어주더라도 그 1%로 말미암아 그대 자신이 남은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음성을 배우며 그리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에 충분하고도 넘치지를 않는가. 먹고 살 돈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다 나누어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창세 이전부터 계신 분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휘장처럼 거느리신 분께서 친히 말씀하셨거니와, 그 모든 간편한 수단과 방법들을 거느렸거늘 어찌하여 그대들은 그리하지를 않는가.


18. 주님, 당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세리나 창녀들보다 내가 한참을 더 못나고 부끄럽고 교만합니다. 이를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이 처참한 내 영혼의 실체를 어찌하나이까......


19. 희망 없음이 곧 절망인 것은 아니다. 눈(雪) 덮인 산을 헤맨 끝에 정상에 도달한다고 하여 그곳에 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자에게는, 성지(聖地)를 밟을 자격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곳은 신을 벗고 들어서야만 하는 곳이며, 세속에서와 달리 그 산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그의 걸음은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고통스럽게 한 걸음씩 정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들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른다고 하여 거기에 살 길은 없다. 무거운 십자가를 끌고서 산 정상까지 마침내 포기하지 않고 도달한다면, 나는 내가 스스로 짊어진 십자가 위에 못박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살 길은 없다. 삶의 여정은 살기를 자청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죽음이라는 예정된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이며, 다만 스스로 죽기를 바라지 않되 오직 신의 뜻에 따라서 죽기를 소망하는 과정일 뿐이다.


20. 겨울의 추위와 찬바람보다도 내 마음의 슬픔과 상처와 공허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따뜻한 햇빛이 당연시되는 봄에서는 누구도 햇빛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거니와, 눈 내린 설원을 힘겹게 나아가는 가운데에서 불현듯 바람이 잦아들며 어느새 따뜻한 햇빛이 그를 감싸 안을 적에, 그에게 그 존재감은 하늘과 땅 전체보다도 더욱 클 것이다. 사람은 슬픔이 없다면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며, 사람은 공허가 없다면 하나님의 법을 갈망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계절들, 곧 죽음을 예비하는 가을과, 모든 생명과 희망이 제거된 채로 이듬해 부활의 봄이 올 때까지 견뎌야만 하는 죽음의 겨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요 결국 내 안의 뿌리 깊은 죄성으로 인한 것이니.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때때로 내가 죽지 않도록 바람과 햇빛에게 명령하시는 그분의 은혜를 본다.


21. 나의 일은 나의 십자가 위에 눕는 일이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과 나의 적(敵)들과 나의 오랜 업(業)과 까르마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이다. 나는 부활할 수 없다. 부활은 내게 속한 권세가 아니며, 오직 외아들께만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영광이되, 주께서 나를 살리실 것이라는 장담은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오늘날 지상에서 축복 어린 탄생보다 고통스러운 죽음과 사망이 더 큰 것을 나는 본다. 그러므로 부활의 희망은 신의 주권에 속한 일이되, 나는 그것을 바랄 수 없으며 또한 내게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은 채로 십자가 위에 눕는 것만이 허락되었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사람은 한평생을 십자가 위에 눕기 위한 연습과 훈련과 예비 과정으로서 삶을 살아가며, 그 끝에서는 부활이 아닌 평생을 준비한 완전한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 어떤 희망도 없을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없을 것이고, 사후의 영생도 부활의 기적도 몸이 다시 사는 것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완전한 죽음이 이루어진 이후에, 그 고요함 가운데에서 사흘째 되는 날에 가장 위대하신 분께서 마침내 부활하실 것이니. 그리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것이 나의 일이다.


22. 주여, 언제쯤 내가 이 광야에서 마침내 안식의 땅으로 인도받겠나이까. 그날이 과연 이 생 안으로 오는 것입니까. 나는 광야의 어디 즈음을 지나고 있나이까. 주여, 당신마저도 나를 버리고 떠나신 듯한 이 광야의 겨울 앞에서, 올해의 끝에서조차도 이토록 잔인하게 다시 내게 시험을 반복하시는 지금의 내가 밟고 선 이곳, 이 땅에서, 내가 살고 죽고자 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나이까. 침묵으로 이미 응답하시는 당신께, 고요와 적막 가운데에서 다시 걸음을 떼기가 날이 지날수록 힘겨워지니이다. 부디 나를 버리지 마소서. 그 하나만 하소서.


23. 나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기약 없는 기다림과 기쁨이 넘치는 언약과 그때마다의 작은 희망의 불싸들과 그마저도 번번히 꺼뜨려버리신 채로 다시 나를 광야로 내모시는 것이 어우러진, 길고 고통스러운 새벽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에서인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과거의 나였더라면 이미 진작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쳤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토록 힘겨운 걸음들과 그 어두움들을 통과하면서도, 내 마음이, 나의 영혼이, 단 한 순간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진실로 원망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 여정을 단 한 순간도 불행이나 불운(不運)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 생의 모든 순간마다 너무도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는 것을. 그 믿음을 발견하였을 적에, 나는 온갖 더럽혀진 몸과 지저분하고 가난한 영혼 가운데에서도 나의 영이 오직 신을 향하여 정렬하며 바로세워져 있음에 진실로 안도하였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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