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생각들

by 생명의 언어

1.


이 세상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 세계라고 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뜻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육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는 법이며, 어두움은 어두움을 일으키고, 빛은 빛의 순환을 가져온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고, 내가 남을 배려하면 남도 나를 배려하며, 결국 생성된 모든 것들은 없어지지 않고 그 형태만 변화하며, 그 끝에서 그것을 일으킨 자기 자신에게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벽 앞에 서서 공을 던지면 그 공이 누구에게로 오겠는가. 그리고 세게 던질수록 다치는 것은 누구인가. 벽은 나를 해칠 의도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공을 세게 던졌을 뿐이다.


"내가 옳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인간은 불완전하고, 따라서 완전한 옳음이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가 맞으면 하나는 반드시 틀린다. 하나가 옳으면 하나는 반드시 어긋난다. 하나가 진실하면 하나는 반드시 거짓되며,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고, 하나가 움직이면 하나는 멈춘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 내 생각이 옳다, 내 행동이 옳다, 내 결정이 옳다, 이것을 들이밀어서 내 뜻을 타자에게 강요하고 세계에 투사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내 생각을 타자에게 강요하면, 타자는 그 생각을 내게로 되돌려줄 것이다.


내 뜻을 세계에 투사하면, 세계는 투사된 욕망과 공포를 내게로 되돌려줄 것이다.


지옥은 없다. 내 안의 어두움을 세계에 내던진고로 내게로 그 어두움이 되돌아오며, 내가 어리석은고로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벽에 공을 더 세게 던지는 미련한 짓을 반복할 뿐이다. 신은 인간을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 빛으로 인도하는 모든 길을 인간에게 다 열어줬음에도 우리 "인류" 형제들이 어리석어서 기어코 스스로 어두움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탄은 무기한 휴가를 받았다.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놀고 먹기만 해도, 인간들이 스스로를 지옥으로 내던지며, 죽어서 지옥 가기에 앞서 살아 있는 이 세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주는 참으로 기특한 일을 벌이고 있는데, 굳이 일할 이유가 있는가. 뭐하러 번거롭게 움직이겠는가.


그러므로 제발 부탁이니, 단 하나의 매우 단순한 진리만이라도 깨닫기를 소망한다.


벽에 공을 던지면, 그 공은 내게로 되돌아온다. 더 세게 던지면, 더 세게 내게로 튀어와서 나를 해칠 것이다.


공도, 벽도, 나를 해칠 의사가 전혀 없다. 내 스스로를 해칠 의사가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다.




2.


만약 부모가 "내가 옳다"는 신념을 근거로 하여 자식을 엄히 가르친다면, 그것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따지는 짓은 어차피 부질없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이든 간에, 한쪽 측면이 옳다면 다른 쪽 측면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는 언제나 공존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서, 언젠가 부모가 늙었을 때, 자식 역시도 자기의 "신념"을 근거로 하여 부모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늙고 병들어서 자식의 수발이 없으면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 부모는 자식에게 행한 일들을 하나도 어긋남 없이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만약 자식이 "내 삶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하여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이것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고 허망하다. 어차피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은 제각각 다르며, 모두에게 사정은 존재하므로. 무엇이든 간에 변명과 핑계는 존재하며,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 역시도 선택 가능한 자유 의지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서, 언젠가 그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식으로부터 정확히 자기가 행한 대로 돌려받게 될 것이다. 만약 결혼하지 않고 홀로 늙어간다면, 내가 행한 그대로 남들도 "내 삶이 우선이다"며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모른척할 것이다.


만약 가난한 자에게 "게으르고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한다면, 언젠가 그 자신이 가난해졌을 때에 세상도 "네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며 행한 그대로 되돌려줄 것이다. 만약 약한 자에게 "네가 강하지 못한 탓"이라고 단죄한다면, 세월은 지상의 그 어떤 권력도 힘도 언젠가 꺾어버릴 것이며, 그리 약해졌을 때에 남들로부터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하여 단죄당하게 될 것이다.


자기의 옳음을 핑계 삼지 마라. 만약 내가 남들에게 공정하게 대한다면, 내가 약해지고 불리해졌을 때에 세상도 공정하게 내 죄를 따져서 나를 심판할 것이다.


자기의 권위를 기준 삼지 마라. 만약 내가 권위로써 남들을 위압한다면, 언젠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적에 신께서도 그 절대적인 권위로 그의 영혼을 위압하실 것이다.


남에게 엄격하게 대하지 마라. 만약 내가 남들을 엄격하게 대한다면, 언젠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적에 신께서도 내 평생에 지은 모든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엄격하게 가늠하셔서 내 영혼을 지옥에 보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사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고차원적인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미 그분의 뜻을 잘 알고 있다. 다만 행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적에, 신께로부터 어떤 판결을 들을지가 궁금한가. 그 답은 이미 지금도 알 수 있다. 행한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든 것을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 생에서라도, 다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다.


이것의 무서움을 일찍이 깨닫는 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에게 선을 베풀게 될 것이다.


선한 자가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요, 계산과 이익에 밝고 두려움이 많은 자가 일찍 깨달아 선을 행한다.




3.


가방에 짐을 적게 넣으면, 다소 불편하고 모자라겠지만, 그만큼 가볍고 편하며 멀리 갈 수 있다.


그러나 가방에 짐을 많이 넣으면, 여러 쓰임이 있고 편리하겠지만, 그만큼 무겁고 고생하게 될 것이다.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진리를 모르는 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른 척할 뿐이다. 어리석음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어리석으면서 교만하기까지 한 죄는 백약이 무효하다.


머릿속에 많은 것을 주워담으면, 유용하고 쓸모가 많겠지만, 그만큼 고통과 괴로움이 커진다. 그러나 비우고 내려놓으면, 다소 간에 불편할 때도 있겠지만, 그만큼 평온하고 고요해진다.


어제 술을 먹었으면 다음날 머리가 아픈 법이다. 술을 먹고 싶으면 그리하라. 그러나 다음 날에 숙취는 반드시 따르며, 지구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막을 수 없음을 기억하라. 만약 다음 날이 편안하고 싶거든, 그 전날에 술을 먹지 마라. 진리는 간단하다. 그 어떤 술꾼도 다음 날의 숙취에 대해서 내 스스로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런 병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치를, 자기 삶의 다른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못한다. 오늘 술도 먹고 싶고, 내일 머리 아픈 것도 싫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봤자 괴로운 건 자기 자신이다.


어리석음과 교만함이 길어지면, 그 세월만큼 괴로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임계점을 넘어서는 그날에 마침내 내 인생을 완전히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4.


걸릴지 안 걸릴지 알수도 없고 걸린다 한들 언제 걸릴지 알 수 없는 질병을 위해서는 매달 꼬박꼬박 적지 않은 돈을 퍼붓는다. 그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잘만 낸다. 언제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 사고를 위해서도 보험은 꼬박꼬박 낸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아무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질병과 사고를 대상으로 무모한 객기를 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그리도 크고 무서운 것이다. 누구든 예외 없이 다 이러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며, 따라서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문제는 인간에게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확실하게 한 번은 오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리고 육신의 죽음이 그걸로 끝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나, 만약 육신의 죽음이 그걸로 끝이 아닐 경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보험"을 들지 않는다. "만에 하나" 죽음이 끝이 아닐 경우에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리 무모한 객기를 부리는가.


"만에 하나" 신이 정말로 계신다면, 그때 가서 어쩌려고 아무 대책도 없이 그리 속절없이 늙어가는가.


어떤 종교를 선택할지, 어떤 영적 전통이 옳은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할지, 이런 건 나중 문제다. 일단 뭐라도 시작해라.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좋으니까, 기도든 명상이든 뭐라도 해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아니 1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영적으로" 뭐라도 해라. 일단 시작이라도 해라.


대관절 보험은 그리도 잘 들면서, 죽음 이후에 대한 보험은 왜 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


그리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나중에 죽어서 신 앞에 혹시라도 서게 된다면 어쩌려는가. 신이 날 지옥 보내는 건 둘째치고, 살아온 세월이 민망하고 쪽팔리지 않겠는가. 내가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신 앞에 서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뭐라도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5.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 아는가.


인간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의 사건들, 곧 생(生), 로(老), 병(病), 사(死) 중에서 그 무엇도 이성으로 파악되지도 않고 분석되지도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느 날 재수가 없어서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하필 머리라도 크게 다치면, 아무리 명석하고 똑똑했던 자라 하여도 하루 아침에 바보 천치가 되어 침 흘리며 남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 같은가. 에이 설마, 하다가 그리 되고 나서야 크게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에이, 설마, 내가 지옥에 가겠어?


천국에는 못 가도, 설마 지옥에 가겠어?


살아서의 생로병사의 문제도 이성으로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 이성으로, 논리로, 지식(gnosis)으로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 애초에 생로병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오늘 일어난 문제조차도 그 "이성"으로 해결이 되지 않거니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에서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그리도 많거늘, 어떻게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하는가.


진정한 어리석음은 매우 교횔하여 "똑똑함"이라는 가면 뒤에 자기 실체를 감춘다. 그러나 진정한 현명함은 매우 겸손하여 "순전함"이라는 종의 형상을 가지사 우리에게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보되 그 보이지 않는 본체를 보지 못하므로, 똑똑한 것을 취하고 순전한 것을 버리되, 한 번 선택한 것은 영원히 번복할 수 없으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듯하여도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나면 자기 선택의 결과가 내게로 올 것이다.


억울해하지 마라.


지금의 내 삶은, 지난 수십 년간의 나의 선택들의 총합으로서의 업보다.


그 누구도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




6.


정공법으로 안 되니까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편법을 써서라도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이치이다. 굳이 실력을 쌓아서 정당하게 성공하지 않더라도, 편법으로라도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할진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의 심판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도 무식하게 정공법으로 접근하려 하는가. 이 생에서 내가 지은 죄와 행한 선(善)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클 것 같은가.


장담컨대, 힘겹게 열 개의 선업을 쌓는 동안 백 개, 천 개, 만 개의 악업을 쌓는 것이 인간이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얼굴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답시고 속으로 욕하여 순식간에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다. 과연 정공법으로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리 순진한가.


차라리 신을 사랑하여,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서, 공적인 재판이 아니라 사적인 연인끼리의 만남이 되도록 하는 "편법"이 훨씬 더 승산이 있지 않겠나. 세속에서 자기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는 그 모든 편법과 꼼수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도 우직하게 정공법으로만 접근하는가.


평생 동안 선업을 쌓으려고 아등바등해봤자, 인간은 아차 하는 순간에도 순식간에 수십 개의 죄를 짓는 동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이 우리를 벌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경우에도 신에게로 나아오면 모두 자비를 베풀어 구원하시겠다는 그분의 숨겨진 의도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기어코 신 앞에 "공적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자기가 정공법으로 승부해볼 만한 수준이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 살아도 된다. 어차피, 죽어서 신 앞에 서면 그때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분처럼 자비와 사랑이 깊지 않은고로, 굳이 스스로 어두움 속으로 기어 들어가겠다고 고집 부리며 빛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도시락 싸 들고 쫒아다니며 말릴 생각은 없다.


나는 다만 내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들에 온전히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어지러이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채로 기록하여 내보낸다.


언젠가 나의 부끄러움과 죄까지도 그분의 역사를 위한 제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결심(決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