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선의(善意)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것들이 내게 확실한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내 안에 “생명”이 자리잡고 그것이 더 깊어질수록, 오히려 가장 단순하고 쉬운 것들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정말로 바보가 되었다. 어린아이에게 묻고 싶다. 엎드려 절하며,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이 어리석은 영혼을 버리지 마소서”하고……, 간절히 청컨대 내 물음에 답을 구하노니, 이제 내 모든 지식을 다 버리고 가장 쉬운 것만을 구한다. 나는 이제 “좋음”이 무엇인지, “옳음”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그것들의 개념적 정의를 내가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서, 그 “본질”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 이리도 그분께 가르침을 받아서 겨우 깨달은 것이 그거 하나가 전부였다. 관념은 실재가 아니라는 것. 이제 내 영혼은 간절하게 실재를 갈구하며, 물의 원자 구조 따위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허망하고 또 허망한지를 절실히 깨달은 바, 오직 시원한 물을, 내 영혼을 영원히 충족케 하는 그 물을……, “내 피는 참된 음료라, 이것을 받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요” 하신 그 생명의 물을 마시기를 진실로 열망한다.
“빛”을, 창세 이전부터 계셨던 분께서 태초에 이르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셨던, 그 빛을, 내가 보기를 원하고, 그 눈부심을 마주하기를 원하고, 그 온기를, 따뜻함을, 감촉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오직 그 하나만을 원한다. 그리하매 마침내 좋은 것을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되 다만 진실로 좋은 것을 마주하매 너무 기뻐서 눈물 흘리기를 원하고, 옳은 것을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되 다만 진실로 옳은 것을 만나매 너무 경이로워서 내 영혼이 전율하기를 원한다. 이제 나는 이 하나만을 절실하게 원한다. 지식과 관념은 결국 언젠가 잊혀지고, 무너지고, 사라지되, 육신의 죽음과 함께 혈은 흘러 바다로 흩어지고 육은 썩어 땅으로 돌아가매, 내 영혼이 진실로 기뻐했던 순간의 그 눈부신 반짝임과 나의 영이 진리 앞에서 진실로 경이로워 전율했떤 그 일렁임은 주의 눈동자 안에 비치어 영원토록 그분께서 기억하시리니, 이것이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속하는 영원한 것임을 마침내 깨닫는 것이다. 성령께서 자비하사 이토록 가난하고 어리석은 영혼에게 하늘의 귀하디 귀한 지혜에 눈뜨게 하셨으니, 내가 그 잔을 받아서 망설임 없이 마시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하늘의 술에 취하였으니 이제 어찌 그보다 낮은 지상의 술을 마실 수 있으랴. 성령에 취하였으니, 이제 그만도 못한 지상의 남루한 술에 취할 수 있으랴.
“옳은 것”을 찾는 자의 간절함을, “좋은 것”을 갈구하는 자의 절실함을, 내 어찌 모를 수 있으랴. 겪지 못한 자들은 그것이 세속에서의 삶에서 쓸모가 없는 것이라 하여 비웃을 것이고, 먹고 살만하니 사치스러운 철학이나 한다고 조롱할 것이나, 내가 그들로 인하여 참으로 안타까움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으니, 어찌 진리를 알지 못하는가, 인간이여! 그대가 영원히 살 것 같은가. 이 지상에서 형성되었던 그 무엇이라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 결국 사라지고 없어지며, 강인했던 육체도 허물어지고, 굳건했던 의지도 세월 앞에 꺾이며, 늙고 병들어 제 손으로 똥오줌조차 홀로 감당하지 못하매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 시절에서도 그대는 같은 질문을 할 것인가. 그날에, 과연 그대는 “자력구원(自力救援)”의 기치를 내걸고 사망의 압도적인 군세(軍勢)와 대적하려는가. 그 싸움에 진실로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으려는가. 죽음은 참으로 교활하고도 잔인하여, “아차” 하는 순간에 그대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번개처럼 앗아가리니, 그 충격적인 사고를 당하여 흐려져가는 의식 저편에서 결국 당신은 신의 이름을 찾게 되리라. 어느 평화로운 휴일의 산책길이 그대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음이니, 그대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는 날에는 그대의 혈과 육은 결국 정육점에 걸린 그 고깃덩이와 하등 다를 것이 없음을, 육이란 그토록이나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임을 어찌 모르는가. 다 늙어서야 이것을 깨달으매 그제까지 한 평생을 쌓아왔던 어리석음과 교만의 죄를 다 어찌하려는가. 내가 감히 말하노니, 죽음이 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막연하게 들리는 젊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것을 진실로 깨닫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것이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리라.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서 어찌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저 오쇼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그러함이니, 죽음을 온전히 마주할 적에, 마침내 사망의 압도적인 군세를 나의 힘으로 능히 이길 수 없음이요, 인류가 이제껏 쌓아왔던 그 거대한 철학과 신학과 형이상학을 모두 동원하여도 결국 패배함이니, 그 앞에서 마침내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아질 것이고, 허망한 것들에 대한 마음을 강물에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그때,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나의 십자가 위에 스스로 누워 못박히기를 기다리는 순간”에, 마침내 죽음을 이기신 분의 영원한 승리가 문득 찾아오리라. 죽음조차도 능히 이기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망을 영원히 이기는 진정한 권능이 무엇인지를, 그대는 그 순간에 영접하게 되리라. “옳음 자체”이신 분을, “영원히 좋은 것”이신 분을, 만나게 되리라. 누군가 증거하였듯이, 멸망하는 자들의 눈에는 이것이 어리석고 열등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천지 만물 가운데에 언제나 임재하시되, 사람들이 스스로 두 눈을 뽑아낸고로 그분께서 바로 코 앞에 계시며 부드럽고 온화하게 날 부르시는 그 음성조차도 듣지 못함이라. 그러나 그분께서는 진실로 귀중한 것들은 언제나 은밀한 가운데에 감추어 놓으셨으니,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 “이것을 지혜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순전한 어린아이에게만 드러내셨으니, 옳소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바다를 분석하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열리지 않을 것이요, 오직 크게 기뻐하며 온 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만 하늘의 지극히 귀한 지혜가 열리리라. 아, 이것을 이 이상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세상에 쓰임이 될 만한 유용한 것을 찾는다면, 지식을 가져라. 세상에서 높임을 받을 만한 것을 원한다면, 관념을 움켜쥐어라. 지식과 관념은 비록 최고의 진리가 아닐지라도 살아 평생에 세상에서는 적당히 유용하고 높임을 받으며 평안을 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적당히 높아지기를 원한다면, 지식을 향하여 가라.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날에 육체의 죽음과 함께 소멸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살아서의 삶은 지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함이니, 죽음은 영리하여 찰나에 불과한 살아 평생에 그에게 넘치도록 세속의 권세를 주되, 진정한 삶 그 자체인 사후의 영생을 그의 마지막 날에 그 이자로 앗아갈 것이다. 그날에, “네가 세속에서 높임을 받았고 넘치도록 권세를 누렸으니, 이제 그 대가를 받으러 왔노라”하며, 사망이 그대의 생명을 빼앗아가며, 그의 영혼을 손아귀에 넣고 조롱하고 기만할 것이다. 그 참람한 사태를 어찌하랴. 그것이 바로 코앞까지 와서 그의 그림자로 언제나 따라다니고 있음에도 이를 기어코 깨닫지 못하는 실태를 어찌하랴.
그러나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이 실체를 깨닫는 자가 있다면, 이에 내가 감히 진실로 이르노니 적당히 높은 것을 찾지 아니하되 처음부터 지극히 높은 것을 구하여라.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되, 죽음을 넘어서 영원히 영속하는 것을 갈망하라. 살아서의 삶은 비록 아름다우나 찰나와도 같고,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신 앞에 설 것이며, 그날에 생명이 있는 자는 영생할 것이요, 평생 동안 그 하나조차도 얻지 못한 자는 그제야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리요, 살아 평생 동안 하나님께서 자비하사 모든 날들의 모든 순간들로 그를 찾으셨고, 햇빛으로, 바람으로, 비로, 구름으로, 그 모든 음성으로 그를 구원하시려고 그토록 필사적으로 찾고 또 찾으셨음에도, 간절히 부르시고 절실히 부르셨음에도, 스스로 귀를 잘라내고, 눈알을 뽑아낸 자가 대관절 누구였던가. 그래놓고 “듣지 못했다” 하여 신을 원망하려는가? 스스로 그리해놓고 “보지 못했다” 하여 신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려는가? 사람이 그리도 염치가 없단 말인가? 그 많은 십자가를 스스로 외면해놓고서 무슨 기회를 또 달란 말인가.
세상은 그분의 자비하심을 알지 못함이니, 자녀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사 천군 천사들에게조차도 허락지 아니하시는 귀중한 것을, 그분의 “영”을, 그 안에 심으사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선물하시었으나 그들이 이를 대개 감당하지 못하여 그 권능으로 빛이 아닌 어두움을 찾고, 사망의 유혹에 기만당하고 스스로 죽음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셨을 적에, 그때도 우리들을 모두 심판하시기에 이미 의로우셨음이라. 그러나 내가 감히 말하건대, 그분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함이었으니, 창세 이전부터 계셨던 분께서 자기를 제한하사 자녀들의 눈높이까지 낮아지셨고, 영원과 초월로 계셨던 분께서 육신을 입으사 자녀들의 곁으로 직접 오셨음이니, 온 세상은 그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육 가운데로 오심이 얼마나 그분께 치욕이 되고 모욕이 되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하매, 오직 이것을 깊은 묵상 가운데에서 헤아리니 이 심정을 지상의 언어로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을 것인가. 자녀들이 스스로 눈을 뽑아내었음에도 햇빛으로 안아주시고 바람으로 품으시며, 이를 위하여 절대적인 권세를 스스로 억압하시고 온 세상을 아우르는 영광조차도 스스로 다 감추셨음이니, 이는 자녀들이 쉬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시기 위함이요, 자녀들이 쉬이 찾고, 알아보고, 만날 수 있는 형상으로 찾아오시기 위함이며, 마침내 자녀들이 믿고, 신뢰하고,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관계 맺으시기 위함이라. 그분의 자비가 이토록이나 깊고 그분의 긍휼이 온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음이니, 이러하매 우리가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그분께서 내게로 오시는 것을 거부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가슴 아픈 사랑으로 날 찾으시는 분을, 면전에서 내쫓고 거리로 내모는 짓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나와 함께하자” 부르시는 그 음성을, 그리 냉정하게 일축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호소하니, 평생 그리도 잔인하게 그분을 내쫓아놓고서, 그분의 본래의 권세와 영광을 온전히 영접하는 순간에는 이를 어찌 감당하려고 하는가.
나는 “도덕성”에 대해서, 화려한 언어와 휘황찬란한 관념으로, 능히 설명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내게 그러한 재능과 자질과 능력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아니하되 오직 내 사랑하시는 분께서 나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시고 감동 받으시는 것만을 보기를 바라는 이 마음 하나만으로 움직임이니, 그분께서 내게 모든 자유를 다 허락하시었음에도, 내 사랑하시는 이가 내게 오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제한하시었듯이, 나도 그분께로 나아가기 위하여 내게 주신 자유의 일부분을 스스로 내려놓을 것이다. 나는 원한다면 넘치도록 술과 고기를 먹고 질펀하게 취해서 너브러져 살다가 죽을 자유가 있으며, 그러한 모습들마저도 그분께서 족하다 하시었음을 이미 알고 있으나, 그 어떤 술보다도 내 사랑하는 분의 음성이 내 영혼을 더욱 취하게 함이니 내가 어찌 썩어 없어질 부질없는 술에 취하리요, 진정으로 황홀한 천상의 술을 이미 맛보았으니 저급한 술 따위에 어찌 입을 버릴 수 있으랴. 그 어떤 양식보다도 그분의 생명이 더욱 맛 좋고 나를 기쁘게 함이니, 내가 어찌 부질없고 허망한 지상의 기름진 양식과 고기 따위에 입을 버릴 수가 있으랴.
이에 나는 그분께서 허락하신 재능과 자질과 능력으로, 오직 그분의 사랑을 고백하고, 그분의 겸비하심을 증거하며, 그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훈게하지 않으시되 다만 그분의 아름다운 형상을 내게 드러내시어 나로 하여금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하사, 내 스스로 그분과 같이 되기를 열망하게 하시었으니, 나 역시도 부족하고 모자라나 감히 그와 같이 내 존재와 삶을 통하여 그분을 드러내며, 더 많은 이들이 그분께 사랑에 빠지도록 내 평생의 삶을, 젊고 혈기왕성한 이 청춘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다. 이 마음이 있을진대, 억지로 행하는 도덕이 이루지 못할 그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살아 평생에 이루어가며, 억지로 강요하는 윤리가 보여주지 못할 그토록 고귀하고 경이로운 것들을 살아 평생 동안에 이룰 것이다. 이제 나는 옳기 때문에 옳음을 행하지 아니하되, 옳음 그 자체이신 분께서 오직 나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만을 보기 위하여 옳음을 행하고, 좋기 때문에 좋은 것을 취하지 아니하되, 완전한 좋은 것 그 자체이신 분께서 오직 나로 인하여 크게 감동 받고 눈물 흘리시는 모습만을 보기 위하여 모든 좋은 것들을 구할 것이다. 이것을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억지로 강요해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으되, 오직 사랑하는 이가 기뻐하는 모습 하나만을 보기 위하여 한평생을 다 헌신하는 이 제정신이 아닌 자의 열망을, 어찌 사랑에 빠지지도 못한 자들이, 세상이, 마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을 사랑하라.
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
그 순간에, 지상이 아닌 하늘의 선(善)이 드러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