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없음에서 얻은 희망

결국엔, 지금 내가 마주한 것이 전부일 뿐

by 생명의 언어

오랜만에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쓴다.


"존재하고 형성된 모든 것들은 결국엔 변화하고, 없어지고, 흘러가는 것." 사람들은 희망을 갖는다. 진리를 깨닫고 나면, 신을 만나고 나면, 뭔가 "특별한 것"이 남겠지.


나는 지금 "못 깨달았으니까",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특별한 기쁨과 평화를 맛보지 못한 것이고, 언젠가 내가 깨닫고 나면 지금의 고통과 괴로움은 눈 녹듯이 없어지고, 내가 꿈꾸고 기대하는 환상 속의 멋진 "천국"의 삶이 펼쳐지겠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어느 선각자가 쓴 책의 제목 말마따나, 깨달은 이후에도 빨랫감은 있는 법이다. 깨달았다고 하여 밥먹고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지지고 볶는 일상의 과업들이 없어지지 않는다. 깨달았다고 하여 마트 가서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대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삶은 그저 주어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삶과 일상을 이미 마주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먹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지지고 볶다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잠들고는, 다시 일어나는 삶.


깨달음을 추구하는 누군가는 묻는다. "그게 전부라면, 뭐하러 깨닫나요?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깨달은 자나 깨닫지 못한 자나 결국엔 삶으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기어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체험한 자는, 미련이나 집착이 없다. 다시 말해, "희망"이 없다.


무슨 희망?


깨닫고 나면, 진리를 알고 나면, 신을 만나고 나면, 지금의 비루하고 답답하고 낡아빠진 반복적인 내 일상이 무언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그것이 덧없고 부질없고 허망한 내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으므로, 때로 답답하고, 때로 허무하고, 때로 외로우며, 때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희망을 갖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삶이 전부이고, 주어진 일상이 모든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하지 못한 자는, 여전히 무의식 속에서 기대를 갖고, 환상을 갖고, 희망을 갖는다.


오늘, 나는 오후의 햇빛 속에서 한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깨달은 자에게 희망 따위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나, 당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나, 그냥 고통은 그대로이고, 괴로움도 그대로이며, 삶의 과제들과 일상의 과업들도 모든 것들도 다 그대로 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결국 희망없음인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나의 그 말을 통해서 그분은 오히려 희망을 얻었노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어떠한 위안, 내지는 확신, 이었달까. 나도 언젠가 깨달아야만 한다는 마음의 짐, 그리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잘못된 것이라는 어떤 열등감, 죄의식,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나의 말이 오히려 희망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나는 올해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좀 더 길게는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리저리 흘러들어 오면서......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특별한" 체험도 있었고, 깨달음도 있었으며, 마음의 짐과 영혼의 괴로움을 안은 자들에게 나름대로의 진리에 대해서, 신의 음성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그러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 속에서도 고통은 그대로였고, 괴로움도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깨달음이 없었더라면 굳이 더 보태지 않았어도 될 고통과 괴로움이 더 추가되기만 했다.


"깨달음을 얻으면 뭐가 좋습니까? 신을 만나면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나는 답한다. 허망함 가운데서 겨우 한 줄기 빛을 찾아내어, 그렇게, 겨우, 답한다.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태의 고통과 괴로움이 더 추가될 것이다."


그러면 뭐하러 공부하고 수행 정진하며 나아갈 건가? 거기부터는 이제 더 이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저 자신 안에서, 내면의 깊은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그렇게 신을 찾고, 그렇게 진리를 더듬어가며, 일상과 삶이 전부인 가운데에서, 있지만 없는 것을, 드러나 있지만 숨은 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언어를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하려고 하는, 그 부질없지만 부질'있는' 것을......


허망하지만, 허망하지 않은 것을...... 하루하루 찾아가는 그것이 결국엔 진실한 것이므로.


오늘, 나는 그 희망없음의 자리를 다시 확인한다.


희한하게도, 그것이 내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주는 희망임을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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