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과 심해

by 생명의 언어


진실로 중요한 진리들은 모두 언어 너머에 있다. 모든 덜 중요한 진리들은 소리내어 발음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며, 이것들은 모두 일렁이는 바다 표면의 윤슬과도 같은 것이다. 아름답다. 예쁘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서 지켜보았을 때의 모습일 뿐, 그 안의 깊고 심원한 바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저 멀리서 지켜본다. 그렇기에, 표면적인 진리들에 감탄하고 그것들을 좋아할 뿐, 정작 바다로 뛰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진리들은 소리내어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침묵과 고요 안에 있다. 그러므로 글자로 표기할 수 없고, 말로 드러낼 수 없다. 그러므로 반짝이지 않는다. 반짝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자신의 중요한 진리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인데도, 정작 자기 자신조차도, 그저 멀리서 바다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므로 나의 언어는 모두 다 덜 중요한 것들이다. 없어도 되는 것들이며, 어쩌면 없어야만 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이 생에서 내가 태어난 이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나의 영과 혼이 어두움과 빛을 오가며 유영하는 그 느낌, 전생의 기억과 잊어버린 감정들, 그것들에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 그리고 하루에 하루를 이어서 나아가는 성장에 대한 의지들, 감내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 영(Spirit)이 숲에 안주할 적의 느낌들과, 영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바다 건너의 성으로 나아갈 적의 자유("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다행히도, 어느 정도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성장의 결실일까. 무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가운데에서도, 조금씩은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서른 해의 짧은 생애의 결실인 것일까.


내가 겨우 소리내어 말할 수 있는 진리는, 아버지께서는 각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시련과 고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시련에 비하여 남의 고난이 편안해 보이는 것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며, 그에 대한 나의 망상일 뿐, 정작 그 시험을 거쳐가고 있는 그의 자아는 매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영이 강하다. 나는 너무도 간절하게, 목숨 바쳐서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 넘쳐 흐른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내게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는 시험을 주셨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전장으로 달려나가 깃발을 들고 왕의 영예를 널리 바로세우고자 하는 뜨거운 심장을 지닌 기사에게, 왕은 무기한 대기 명령을 내렸다. 왕은 때때로 그를 불러들여서, 성전을 거닐며 안부를 물으셨고, 또한 사랑과 기쁨의 뜻을 보내셨으나, 그럼에도 기사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그 명령은 내리지 않으셨다. 나는 그의 심정을 안다. 그것은 지옥 같은 기다림이다. 매일 밤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고통의 바다를 지나는 외로운 새벽들이다. 왕에 대한 충성은 그렇게 시험받는다. 그리고 기사는, 외로운 충심을 붙들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 여정을 이어간다. 모든 영혼들이 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의 시험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며,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떠넘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으며,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날들도 결국에는 정면으로 마주하여 통과해야만 한다. 아버지께서는 강한 영에게는 더욱 강한 시험을, 약한 영에게는 그에 맞는 시험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강한 영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을 통과할 적에 사활을 걸듯, 약한 영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 앞에서 처절하게 성장해 나아갈 것이므로, 결국, 각자의 시험을 마주한 영혼들은 은밀하고도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영적 성장의 길은 낭만적이지 않다.


나의 기다림은 이미 충분히 길었고, 그 모든 충성의 시간들도, 그 모든 열망의 역사들도, 결국에는 그리 지나가버렸으며, 밤하늘의 별들은 오늘도 언약을 확인해주건만, 여전히 나는 기다림을 이어간다. 어제 새벽을 지나오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웠는데, 오늘의 새벽, 나는 무의식의 바다를 또 다시 항해해 지나간다. 외로움과 슬픔과 인연의 부서짐은 나의 오랜 업이었으나, 나는 이제 그것을 완전히 통과하여 지나가야만 하며, 결국에는 내가 나의 유일한 학생에게 말하였던 바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무조건 한 번은 끝까지 통과해야만 한다." 아, 주여, 나의 왕이여, 이 운명적인 시험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일찍이 선사하신 것에 감사드리나이다. 나는 나의 뜨거운 영으로, 영의 불꽃으로, 쉬이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기어코 아버지의 집 안에서 고통스럽게 인내하는 아들이 되겠나이다. 그리하여 돌아온 탕아에게는 그토록 크나큰 축복을 내리시되, 성전 안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절실히 기다린 내게는 그 무엇도 내리지 않으시는 당신의 뜻을, 내가 목숨 바쳐 뜨겁게 사랑하겠나이다.


나는 오늘도 전열을 가다듬고, 무기를 재정비하고, 깃발을 바로세운 다음, 전선에 선다. 기사들이여, 전열을 정비하라. 우리들은 죽을 것이다.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가자, 죽으러 가자. 희망을 꺾고, 열망을 꺾고, 소망을 좌절하며, 깨지고, 박살나고, 엎드려 피와 눈물을 쏟아내자. 그리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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