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은 곧 '기뻐하는 것'이다
받아들임, 내려놓음, 내맡김, 수용, 순종, 뭐라고 부르든 간에, 바로 그것, "신성한 수동태", 이것은 영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임계점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계기이며, "천국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이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진리를 "소유"하려는 자는 처음에는 익숙하고 능숙하게 나아가겠지만, 끝에 다다를수록 더뎌지게 될 것이니, 이는 지식과 진리에 대한 욕망은 결핍, 즉 어두움에서 비롯하며, 반대로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처음에는 미숙하고 더딜 것이나, 끝으로 나아갈수록 하늘의 모든 축복이 그에게 임할 것이니, 하늘나라는 반드시 "아버지를 사랑하는" 영혼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능동태와 수동태의 비밀이다. "내가 하려는 것", 이것은 남성성의 가장 어두운 측면이다. 아성(我性)의 극치는 바로 "1인칭 능동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다, 내가 산다, 내가 이룬다...... 자아라는 이름의 교만함.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숨은" 교만이다. 그것은 가장 은밀하고도 교활하여,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로 숨어 있다. 그러나 삶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은 반드시 말썽을 일으킨다. "마지막 날"에, 모든 영혼들은 반드시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며, 그날에, 바로 그 "해결하지 않은 채로 끝까지 미룬" 최후의 교만은 천국의 문을 건너가지 못하게 막는 치명적인 장애가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신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채로 무관심한 것" 역시도 죄악이다. 그것은 게으름, 나태함, 즉 나는 아무것도 바꿀 것도 변화할 것도 없다는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신성한 수동태", 즉 나를 통하여 신께서 이루시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자는, 살아서는 늘 뒤처지고 미숙하고 손해를 볼 것이나, 그는 마침내 "마지막 날"에 모든 천사들의 환대를 받으며 천국의 문을 가장 먼저 건널 것이니, 아버지께서 그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수행자들, 영적 성장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영혼들이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자 잘못이며, 대개의 경우 남성성이 강한 영혼들이 저지르는 "죄"이다. 그렇다. 나는 이것을 분명히 "죄"라고 말했다. 1인칭 능동태는 실수나 잘못이 아니다, 죄다. 그것도 가장 근원적인 죄이다. 아버지께 계신 주권을, 내가 빼앗아오려는 죄. 이것은 또한 드러나지 않은 죄이며, 감추어진 죄이며, 가장 교묘하고도 교활한 죄이다. 그래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것을 평생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내가 세상을 창조한" 것처럼, "내가 내 삶을 창조한" 것처럼, "내가 내 힘으로 스스로 태어난" 것처럼, "내가 내 인생을 완벽하게 지배 장악"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내 힘으로 온 세상을 발 아래에 둘 수 있을" 것처럼, 그리하며 마침내 "내가 신보다 더 높은" 것처럼 믿는, 최후의 교만함. 그것의 실체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 "자아"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정교한 죄와 악의 실체를 온전히 통과하여 건넌 자는, 마침내 "나의 내면의 왕국의 중심"에 있는 그 권좌는, 내가 앉을 자격이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묻건대, "나의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생을 돌아보건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양심적으로 돌아보건대, 그 삶에 과연 평화가 있었는가? 그 삶에 기쁨이 있었는가? 그 삶이 고귀하고도 아름다웠는가? "나"가 주권을 쥐고서 삶을 통치해온 결과, 내 삶에 평강이 있었는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는가? 선했는가? 물론 그러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마침내 무너진다. 내가 나의 주권을 쥐고서 통치해온 결과, 내 삶은 늘 구속되었고, 늘 답답했고, 늘 지루했고, 늘 고통스러웠고, 늘 괴로웠고, 늘 불안했으며, 항상 안개 낀 듯한 불안과 앞날을 알 수 없는 공허함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 짓을, 수십 년씩이나 했다면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권좌에 앉으실 분"이 누구신지, 누구이셔야 하는지를. 그리하여 그 영혼은 마침내 죄를 건너서, 진정한 "열쇠"를 발견하고서 그 열쇠로 "나"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그리하여, 그 문 너머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그분을 본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이제 됐다"는 그 평화를, "참된 주인께서 오셨다"는 기쁨을 맛본다. 그리하여 그는 그분께 엎드려 경배한다. 생애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도 진실로 "자신 안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께 찬양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휘황찬란한 마차나 가마를 타지 않으시되, 오직 나귀 하나만을 타고서 홀로 내게 오셨다. 그리하여, "수고했다, 애썼다, 참으로 잘했다"며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신다. 나는 그분께서 "본래 마땅히 앉으셔야 할 권좌"에 앉으시는 모습을 본다. 내가 내 스스로 성문을 여는 날을 그분께서 오랫동안 기다려오셨음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한 음성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는" 권세를 거느리신 분께서, 고작해야 나 하나의 성문이 스스로 열리는 순간을 그토록 오랜 시간 기다려오셨음을, 그럼에도 나를 탓하지 않으시고 무척이나 기뻐하셨음을, 본다. 그렇다, 나는 "본다"고 표현한다. 그 순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다시 한 번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사, 사흘째에 부활하셔서", 나의 영(Spirit)이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그리하여, "나"라는 이름은 죽고,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세상에 없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마침내 그 왕국은 "평화"를 되찾는다. 정당한 계승자께서, 왕 중의 왕(KING OF KING)께서 임재하셔서, 이제 그 권좌에서 가장 자비롭고도 완전한 통치를 영원토록 이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보아라, 이것이 "신성한 수동태"의 비밀이다.
나는 한 가지 비밀을 말하고자 한다 : "받아들임"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수용"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내려놓음, 내맡김"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순종"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온전히 되었는지 아직 안 된 상태인지를 명확하게 판가름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이다. 비장하고 엄숙한 자세로 엄격하게 행하는 "받아들임"은, 가장 높은 수준의 교만이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은, 가장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순종의 상태이다. "나는 시련과 고난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곧 "나는 내 삶의 시련과 고난으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곧 "나는 죽음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지금 자살을 조장하는 게 아니다. 이때의 죽음은 영적인 죽음, 바로 "내 손으로 내 삶을 통제, 억압하려는" 최후의 교만을 내려놓고, 나의 주권을 내 자유의지로 그분께 이양함을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절대적이고도 명확한 기준이다. 모든 기도, 묵상, 명상, 그러한 것들은 바로 이 "기쁨"을 위한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으로 인하여 "기뻐하는가?", 스스로 돌이켜보라, 이것은 절대로 속일 수 없는 선명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게 아니다. "무작정 따르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순종은, 바로 "말씀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본다면, 곧바로 알 수 있다. 나는 "기뻐하는가?" 삶에 시련과 고난이 찾아올 적에, 비록 인간적으로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것이 "아버지께서 이루신 일"임을 알고, 또한 "나를 벌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되, 오직 "잠시의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나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한" 크고, 고귀하고, 의로우신 뜻임을 내가 믿으며, 이로 인하여 삶의 가장 깊은 어두움 한가운데에서조차도 "기뻐할" 수 있을 때, 바로 그때,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이다. 즉,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때에, 그는 마침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쁨이 너무도 커서, 주변에 나누게 된다. 은밀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심지어 타인의 어두움을 대신 짊어져서라도, 그 빛을 나누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걷기를 열망하며,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녀이자 형제가 된다. 그 빛이 내게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것이 순종이다. 나는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는가?" 그리고 또한 나로 인하여 "그분께서 기뻐하시는가?" 양자가 모두 성립할 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되는 것", 곧 복음이며, 그것이 곧 천국이 임하는 것이며,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자체가 곧 천국이되, 우리 모두가 살아서 그 길을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가르침이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따르는 모든 영혼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다 "그리스도인"이며 나의 형제들인 것이다.
기억하라 : "기쁨"은 사람의 의지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시련과 고난" 속에서 기뻐할 수 없다. 사람은 절대로 삶의 실존하는 고통과 괴로움 한가운데에서 진정으로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임재하실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순종의 본질은 곧 "기쁨"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오직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는 것"만으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