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사랑함으로 닮아가는 것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요14:23)
나는 이 말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크게 경계한다. 무릇 신비주의란 복음주의적 진리를 뒷받침하는 시녀이자 하인이 되어야 하는 법(그 옛날, 철학이 신학을 섬겼던 바와 같이), 영적 성장의 길에 있어서도 신비 체험이나 환시, 환영, 계시 등 신비적인 것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러한 체험들은 곧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열망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실재가 되는" 믿음(히11:1)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을 때에만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나는 믿는다. 결국, 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복음주의자인 것이다. 특정 종교나 교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대승(大乘)적 차원에서의 보편적인 복음주의자. 지상에서는 비록 종교적 이념과 사상과 교리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경계를 가르고 부딪히고 갈등하고 반복하나, 본래 하늘에서는 모든 진리가 하나인 바, 나는 진리의 이원적인 양 극단이 하늘에서 그러한 바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가 되는 아름답고도 고귀한 꿈을 꾼다. 사랑, 그 하나의 이름으로.
결국, 기독교의 가장 아름답고도 고귀한 진리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에만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길에는 제한도 자격도 없다. 오직 "그분을 사랑하는 것" 하나, 이 하나일 뿐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가장 은밀하고 신비적인 비밀들을 증언하고 있는 책, 내가 성경 전체 중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책인 요한복음에서는 그 어디에도 "특정 종교와 교리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갈등과 반복과 차별의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나의 영(Spirit)이 그분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과 같으며, 그분의 신성은 곧 본래부터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셨고 영원히 그러하심이니, 결국에는 그분의 신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 그 하나로 인하여 "하나됨"을 이루며, 나는 그분께서 그토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셨던, "나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될 것"은, 곧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본래 하나가 되는 것이며, 아성(我姓)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희생하고, 헌신하며, 섬기고, 봉사하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있다고, 그리 빛을 사랑하고 빛을 증거하는 어여쁜 마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그분께 기쁨이 되는 것 하나만으로 그 모든 희생과 헌신과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道)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빛을 증거함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든 영혼들은, 종교와 교리와 형식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형제이며, 또한 나의 형제라고, 나는 진실로 믿는다.
나는 때때로 그분의 말씀들이 참으로 경이로움을 깊이 느낀다. 그분께서는 진실로 하늘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 거느리신 분이셨다. 드높은 천상의 권좌에 앉아서 본래 그분께서 누리셔야 할 것들을 누리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신 그분의 신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토록 고귀하고 신성하셨던 분께서 스스로 모습을 낮추사 지상으로 내려오셨고, 그리하여 홀로 외롭게 가장 고통스러운 성배를 드셨으며,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그리 걸어가신 것으로, 그분을 뒤따르는 모든 형제들과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보아라, 그분마저도 저렇게 걸어가셨다, 하늘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분마저도,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가장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지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 되셨다"고...... 그리하여 자신의 영으로 그분의 신성을 영접하매, 그분과 사랑에 빠진 모든 영혼들은 마침내 그분을 닮아가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운 밤마다 그분께 대한 나의 사랑을 은밀하고도 아름답게 고백하며, 또한 그분께서 그리 나의 진실함을 들으시고, 나의 어두움을 용서하시며, 오히려 나의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신다는 응답을 받되, 이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을 미력한 수준에서나마 내 삶 속에서 뒤따르고 흉내내기를 바라는 깊은 영혼의 열망이 피어난다. 꽃을 피운다. 그리하여 비록 빛을 증거하고 선을 행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룸에 있어서 그분처럼 홀로 높고 고귀하게 빛나는 태양이 될 순 없더라도, 어두움 가운데서 태양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한 마리의 반딧불이라도 될 수 있음에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 나의 영혼이 하나의 반딧불이라도 될 수 있음에, 그리하여 어두움 속을 외롭게 걸어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을 닮아간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간다. 물들어간다.
누군가가 신을 사랑하는지, 신을 "믿는지"는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름을 알리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서라도,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자 하는가. 희생하고, 헌신하며, 섬기고, 봉사하고, 자신을 낮추고,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기뻐하는가.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 그것이 "나의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고귀하신 뜻임을 깨닫고 또한 그 가운데에서 기뻐하는가. 그리하여, 그의 아픔과 슬픔으로 말미암아 다른 영혼들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소망하는, "신의 마음"을 닮아가며, 그 마음 하나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주변을 빛으로 물들이고, 어두움을 밝히고 있는가. 그 모든 여정들 가운데에서 그가 진실로 바라는 것이 단 하나, 세상의 인정을 구함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기를" 바라고 열망하는가. 이것 하나일 것이다.
사랑하면, 닮아간다. 물들어간다.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는 자는, 신성에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