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서술형 문제를 잘 못 푸는 이유

학습목표가 알려주는 서술형의 진짜 의도

by 페로로

요즘 학교 시험에는 항상 서술형 문제가 일부 섞여 나온다. 이전에 과외하던 학생 중 한 명은 객관식 문제는 잘 푸는데 서술형에 특히 약했어서, 서술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어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이번 이야기는 그중 어떤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과산화수소 수용액에 감자 조각을 넣어서 거품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이 있다. 감자 조각에는 과산화수소가 물과 수소로 분해되는 것을 돕는 '카탈레이스'라는 효소가 있어서, 감자 조각을 넣으면 수소 기체가 발생한다. 그래서 실험을 진행한 플라스크 윗부분에 고무풍선을 씌우면, 고무풍선이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효소는 과산화수소 분해 반응의 속도를 높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종이를 손으로 찢을 때보다 가위를 쓰면 훨씬 빠른데 그 과정에서 가위가 없어지지는 않듯이, 효소도 반응 이후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감자 조각을 넣은 과산화수소 수용액 플라스크의 풍선이 커지지 않는다면, 이는 (효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과산화수소가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 관련된 서술형 문제 몇 개를 숙제로 내주었는데, 아이가 풀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풍선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한 방법을 서술하시오"였다. 그리고 이 문제의 모범답안은 '과산화수소를 더 넣는다'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왜 이 문제의 답을 적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아서, 좀 더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이 문제는 왜 못 풀었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풍선을 더 크게 하는 방법'이라고 하니까 '풍선의 재질을 잘 늘어나는 걸로 한다'같은 물리적인 요소가 먼저 떠오르지. 그런데 그건 누가 봐도 문제의 의도가 아니니까, 적기가 망설여졌겠지."


아이의 끄덕거림에서 격한 공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내가 생각한 게 맞았구나.


"사실 풍선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지 많잖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더 잘 늘어나는 풍선을 써도 되고. 좀 더 창의적으로 가면, '산 정상에서 실험한다' 같은 것도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네. 산 정상은 대기압보다 기압이 더 낮으니까 풍선이 더 크게 부풀 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생각해도 그런 건 답이 아닐 거 같지? 그래서 내 생각엔 이 문제가 좀 별로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만약 이런 문제가 내신으로 나온다면 풀 수 있어야 해. 음... 서술형 문제는 언뜻 보면 질문 같잖아? 문제를 보면 '~을 서술하시오'라고 되어 있지만, '풍선을 크게 하는 방법이 뭐예요?'라고 물어본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문제를 낸 사람이 풍선을 크게 하는 법이 진짜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라는 거야. 일종의 설의법 같은 거지."


아이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나도 내 설명을 듣고 이해 못 할 것 같았어.


"만약에 어떤 판타지 세계관이 있다고 치자. 나는 그 세계관에서 모험가야. 그래서 막 모험을 하던 중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한테 와서는 "제 딸을 좀 구해주세요!" 하고 우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러시는지 물어보니까, 우리가 배운 이 실험기구를 보여주면서 "이 풍선을 더 크게 만들어야 딸에게 걸린 저주를 풀 수 있어요!"라고 하는 거지."


"너무 억진데요."


"나도 아는데 일단 편견을 좀 내려놓고 들어봐 봐. 만약에 내가 그 사람한테 "높은 산에 가서 실험해 보세요"라고 알려줘서 저주를 푸는 데 성공한다면 그 사람은 좋아하겠지? 그러니까, 이 사람은 '진짜 풍선을 크게 만드는 방법'이 알고 싶었던 거야. 반면에, 우리가 풀 서술형 문제는 진짜 풍선을 크게 만드는 법이 궁금한 게 아니고, 사실 우리가 적어줬으면 하는 모범답안이 있다고. ㅇㅋ?"


"오... 그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적기를 원하는지 어떻게 아는데요?"


"그건 내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된다... 긴 한데 사실은 각 단원의 학습목표를 보면 알 수 있어. 이 단원의 학습목표를 한 번 보면, '효소의 기능과 특징을 알 수 있다'라고 돼 있잖아. 효소의 기능과 특징이 뭔데?"


"효소의 기능은 반응이 빨리 일어나게 하는 거고, 특징은 반응 후에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렇지! 그럼 효소는 반응 후에도 사라지지 않으니까, 기체 발생이 멈춘 이유가 효소 때문이 아니고 과산화수소가 부족해서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이건 사실 너는 알 수 없는 건데, 너는 효소로 하는 실험을 이거 하나만 알고 있지만 당연히 이거 말고도 효소를 쓰는 실험이 많이 있거든? 그런데 교과서에 소개되는 실험으로 이 과산화수소 분해 실험이 선택된 건 '얼마나 가르치고 싶은 개념이 잘 녹아있는지', '실험 재료는 저렴한지', '학교에서 실험했을 때 결과 재현이 쉬운지' 같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사실은 '과산화수소 분해 실험'을 가르치는 게 이 단원의 목표가 아니고, 이 실험을 통해서 '효소의 기능과 특징이 뭔지!' 네가 알게 하는 게 목표라고. 실험은 그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거고. 그래서 이 문제'네가 학습목표를 이뤘는지 확인하고 싶다'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다는 거지. 그러면 이 문제의 출제자가 원한 답은 뭐였을까?"


"과산화수소를 더 넣는다."


"정답! 문제의 발문이 좀 애매했지만, 단원의 학습목표를 중심으로 잘 공부했다면 이 정도는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학습목표를 잘 보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막상 내가 학생일 때는 말뜻이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제는 내가 그 말을 하고 있으니 배움이란 것이 참 묘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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