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걸음, 나의 긴 여정

08. 겨울방학의 그림자

by 빛나래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세상은 조용해졌습니다.
매일 들리던 종소리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멈췄습니다.
마을은 눈으로 덮였고, 창밖은 온통 하얗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잠시라도 편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도 세상은 멈춰주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더 느리게 흘렀고, 불안은 눈처럼 쌓여갔습니다.
그 집에서의 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웃을 때조차,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문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그 문이 닫히는 소리,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 그리고 얼어붙은 내 손.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었습니다.

“놀러 와.”
친구의 목소리는 평범했습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끈이 그 친구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 몸은 다시 긴장했습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공기, 익숙한 침묵.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갇혀 있었습니다.

그 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눈이 내리고 또 녹아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하얗게 덮여 있었지만,
내 안의 겨울은 여전히 검은색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겨울은 참 예쁘다”라고 말했지만,
내게 겨울은 숨을 죽이고 버텨야 하는 계절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나는 이불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숨을 고르며, 내 손바닥을 꼭 쥐었습니다.
손끝에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흔들리고, 금세 꺼질 것 같았지만,
그 불씨는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불씨가 더 또렷이 보였습니다.
작은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박였습니다.
그 불빛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습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살아 있다.
내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어.”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 번 더 숨을 쉬고, 한 번 더 하루를 버텨내게 하는 주문이었습니다.

밖에서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하얗게 변했지만, 내 안의 겨울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겨울은 언젠가 끝날 거야.
그리고 나는 다시, 빛을 볼 거야.”

눈송이들이 창문에 부딪히며 흩어졌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낮은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이불속에서 손을 펼쳐보았습니다.
아직 따뜻했습니다.
그 미약한 온기가 내 안의 불씨와 맞닿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숨을 내쉬었습니다.
눈물은 말라 있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조용히 무언가가 녹고 있었습니다.
아직 봄은 멀었지만,
그 겨울밤의 공기 속에는 아주 희미한 봄의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