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멈춰 선 시간의 그림자
사고 이후의 나에게 세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던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은
어린 마음에 제대로 와닿지 않았지만,
몸은 매일 그 사실을 증명하듯 나를 배신했습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은 흔들렸고,
계단은 출렁이는 바다처럼 요동쳤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고,
작은 소음에도 머릿속은 금세 울렸습니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나는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내 안의 시계는 멈춰 있었고,
세상은 나를 두고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길을 건너려 할 때마다 차 소리가 가슴을 죄어왔습니다.
빨간불 신호등을 보면 심장이 미친 듯 뛰었고,
브레이크 소리만 들어도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도로 앞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위로했지만,
내게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몸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으나,
마음속의 공포는 날마다 더 커져만 갔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몸에서 풍기는 병원 냄새 때문에 멀어지는 아이들도 있었고,
괜히 나를 조심스레 대하는 시선들이 내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몇몇 친구는 여전히 곁에 있어 주었지만,
그 따뜻함마저 오래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웃으며 어울렸지만, 그 웃음은 종이처럼 얇고 쉽게 찢어졌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숨죽여 울기도 했고, 운동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 없는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해 달라.”
그러나 기도는 매번 같은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집 안은 잠시 안전한 곳처럼 느껴졌지만,
불이 꺼지고 밤이 찾아오면 다시 공포가 스며들었습니다.
방바닥에 깔린 이불에 몸을 묻고 눈을 감으면,
귀를 찢는 충격음과 아스팔트의 차가움이 되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되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괴로운 걸까…”
그 질문은 어린 내 마음 깊은 곳에 내려앉아,
시간은 그곳에서 멈춰 서 버렸습니다.
나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는 더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불씨는 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짓밟듯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이번에는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다른 상처였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바람은 차갑게 스며들었고,
하루가 금세 어두워졌습니다.
밤마다 심장은 거세게 뛰었고,
작은 소리에도 몸은 얼어붙었습니다.
집안은 잠시 안전한 곳처럼 느껴졌지만,
불이 꺼지고 창밖이 어두워지면 다시 공포가 스며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아주 작은 불씨가 남아 있었습니다.
말하지 못한 공포와 긴장 속에서도,
나는 그 불씨를 붙잡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 불씨를 지키는 다음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친구 집이라는 공간에서,
몸이 아닌 마음을 겨냥한 새로운 그림자와 맞서야 했습니다.
내 삶을 또다시 멈추게 만들 사건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