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조차도 손절한, 퇴사의 날
INFJ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때 도어슬램을 한다고 한다. 한 번 정떨어지면 문을 확 닫아버린다는 것인데, 나같은 경우는 그런 문이 인당 3천개 정도 존재한다. 매번 정떨어지지만 그래도 이유가 있겠지, 저 사람만의 사정이 있겠지, 나라고는 완전무결한가? 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마지막 문을 닫지 못하는 게 나인데, 정말 절대악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에게 주어진 3천개의 문은 진작에 닫혔다. 아마도 최단기록일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질리게 하는 육각형의 조건들이 있다면 육각형 미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도어슬램을 하고 나서도 후회가 든다. "방금 바람이 닫은거야 괜히 큰 소리 난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도어슬램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 순간에 확신을 주는 사건들이 터져서 후회가 발붙일 곳조차 없어보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이 사람의 인생내력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자라왔길래 이렇게 적대적이고 유치할 수 있을까. 인생의 여정에서 이 사람을 보듬어준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남을 이해하고 살피는 일에 소홀할 수는 없었겠다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래처 및 동료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니 내가 업무상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명확해져갔다. 나에 대해 좋게 말씀해주시는 분들 조언해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한 마음이고 내가 그래도 인복이 없지는 않았구나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출판사 미팅에서 만난 책이 너무 좋아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 책으로 굿즈도 만들고 북토크도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그런 것들을 미리 협의하기에는 후임자에게 부담만 줄테니 할 수도 없고. 이제는 독자 1인으로 돌아가서 평소 좋아하던 책을 담뿍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일테다.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던 업무조차 마지막 순간이 되니 이렇게 보인다. 뭐든 새옹지마라는 생각을 갖고 새로운 직장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인연의 시작과 끝을 맺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첫 직장에서의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그래야 나의 커리어에 연속적으로 도움이 될 테니까.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까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