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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돈가스

스무 살의 행복

by 아는 사람 가탁이

"누나야! 짜장면 먹으러 가자"
사무실 뒷문을 열고 국민학교(요즘의 초등학교) 6학년 남동생이 들어왔다. 첫 월급날, 월급을 받으면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던 약속을 잊지 않고 기억하던 동생들이 엄마와 함께 낯선 도시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50분을 버스로 달려와 무작정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버스 번호만 알려줬는데, 어느 방향에서 타는지도 모를 만큼 무섭고 어색한 길이었을 텐데 낯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 행여 엄마손을 놓칠세라 비쩍 마른 6학년 남동생과 더 비쩍 마른 4학년 여동생이 고사리손을 꼭 잡고 사무실 뒤편 주차장에 엄마를 대기시키고 어리둥절해하며 뒷문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들은 귀여운 듯 "너거 누나가 누고?" 라며 놀려댔고 "우리 누나 이름은 ○○○입니다"라고 똑똑하고 우렁차게 말하는 동생이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업무용 탁자밑으로 숨어버렸다. "○○○누나한테 뭔 볼일이 있어가?""네, 울 누나야가 짜장면 사준다 캤거든요"


볼에 젖살이 가득한 채로 처음 해보는 직장생활이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게 된 나의 스무 살은 짜장면의 반지르르한 기름기보다 더 윤기가 흘렀다. 고기가 헤엄치는 짜장면이라도 좋았다. 고기보다 옥수수알갱이와 양파만 가득해도 좋았다. 눈앞에 놓여있는 짜장면을 두고 면발이 불어 짜장소스 위로 제 본색을 드러날 때까지 하염없이 눈미끄럼만 타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눈과 책으로만 먹어본 음식 중 하나가 '돈가스'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입으로 맛볼 수 있었고 입사동기들 모임을 돈가스집에서 한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반 설렘반으로 며칠을 뒤척였다. 활자와 사진으로만 먹어본 돈가스를 동기들에게 촌티 내지 않고 먹고 싶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보는 돈가스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모임이 있던 날, 포크와 나이프질은 미약하여 엇박자로 출발하였으나 접시를 반쯤 비워갈 때쯤에는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손의 이끌림에 응해주었다. 라면수프 맛이 살짝 나던 수프를 먹으며 숟가락을 앞쪽에서 뒤쪽으로 떠서 먹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기들의 손과 접시를 곁눈질로 훔쳐보고 반박자 정도 속도를 늦춰가며 먹기는 했지만 나의 가난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날부터 돈가스는 나를 배부르게 해 준 특별식이 되었고 짜장면과 함께 월급날이면 온 가족을 설레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짜장면과 돈가스 덕에 배가 부르게 되어서인지 스무 살 가장의 어깨무게는 한층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미련 때문에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뒤돌아본 거기, 그곳에 지금의 나를 꿈꾸던 씩씩하고 강인한 스무 살의 내가 볼에 젖살을 품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수줍게 서 있기 때문이다.
오십 중반을 넘어선 지금의 내가, 스무 살의 내게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고 싶을 뿐,
그래, 그렇게 딱 한 걸음씩만 씩씩해지는 거야!
돈가스 혼자 먹기 없기!(대왕돈가슨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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