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고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 간절히 바라는 것이 생겼다. 중학교 3학년 가을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부모님과 상담을 해야 하니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어느 학교로 갈지 부모님과 미리 의논도 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방 소도시의 여중학교였고, 학년당 300여 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다. 전체 석차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나도 엄마도 아버지는 더군다나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 가질 여유가 없으셨으리라. 간암말기 판정 후 투병 중이셨으니..)
반에서 최상위권을 다툴 정도는 되었기에 대도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창 밖 아지랑이를 보며 시를 읽어주고, 자유로운 마음을 글로 쓰게 해주는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우리 집 형편을 전혀 몰랐을 때는 그랬다. 그러다가,
연초부터 건강이 많이 나빠진 아버지와 결혼 후 전업주부로만 살아서 무기력한 엄마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부모님 사랑에 허기져 배가 아픈 건지 늘 힘없고 추레한 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를 살려내고 엄마를 편하게 해 주고 동생들을 꼿꼿이 세우고 싶었다.
'그래 상업고등학교에 가자. 졸업하고 돈부터 벌자'
대도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야겠다 생각하고 학교로 오시기 전 날 엄마에게 말씀드렸으나,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안된다. 우리 집 형편에 대도시라니.."
처럼 가타부타, 일언반구 없으셨다. 다음 날, 엄마의 짧은 상담이 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당연히 어제의 내 이야기에 동의하셨으리라 생각했다. 성적이 안 돼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면 장학금 받을 자신도 있었다.
○○야! 엄마 다녀가셨다."
이상하게도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선생님을 쳐다볼 수 없었다.
"□□가면 자취해야 되는데 월세랑 생활비는 어찌 마련하려고? 아버지도 편찮으시다면서.. 그냥 여기 있는 학교에 가자. 네 성적이면 3년간 등록금 걱정 안 해도 되고, 공부는 더 하고 싶으면 취직하고 야간대학 다니면 될 거고..."
선생님은 계속 말씀을 하셨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보다 우리 집 사정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듯 걱정 어린 목소리가 꽤 설득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