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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에는 '꽃'이었을까?

행복할 줄만 알았던, 직장 이야기

by 아는 사람 가탁이

2016년 7월 어느 ,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우수직원으로 선정되어 사내 방송 촬영,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 해는 유독 상도 많이 받고 사내 방송 출연도 잦았다. 큰 딸과 택시를 타고 '퇴근길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어색했지만 색다른 경험에 딸도 나도 신이 났었다. 한동안 서울연수실 모니터에 영상이 나오는 바람에 연수실 지킴이 매니저 분이 얼굴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해 주시는 유명세(?)를 누리기도 했다.


사내방송 촬영이 막 끝나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전화벨이 유난을 떨었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던 선배 지점장의 전화였다.

"어이 ○지점장! 이제 내캉 본부회의 같이 해야 되겠네" "네?"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승진 축하합니대이" 그로부터 한참 동안 사내전화, 휴대폰, 사내메신저, 메일등으로 축하인사가 쏟아졌다. 6개월 전, 갑작스러운 승진예고(함께 근무하던 지점장님께서 갑자기 후임으로 누구를 추천하면 좋을지 물어오며 조심스레 본부부서에서 후임 추천 전화가 왔음을 얘기해 주셨다..) 소식도 준비되지 않았었는데 승진발령도 마찬가지였다.

후일 우연히 들은 숨은 얘기로는, 당시 지점장과 본부장은 승진에 거의 영향력이 없었다 했다. 남자 고호봉자, 동문 후배등의 순으로 고과 순위를 정해놓고 있었으니.. 유난히 복 많았던 상들이 나의 고과 성적이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조직임이 명확히 드러나는 진실이었다.


이틀뒤 월요일 아침,

○○지점 지점장에 명함.

여러 차례 예행연습에도 불구하고 진행자의 호명과 사령장의 명칭이 일치되지 않았지만 그러면 어떤가 내 이름으로 호명된 선배나 선배의 이름으로 호명된 나나 명령을 받은 관리자인 것을!

세상을 다 얻은듯했다.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꽃'이라 불리는 직급(과장, 부지점장, 지점장 - 자동 승진 격인 임용이 아닌 승진이었으므로, 실제로 축하 선물로 꽃과 난 등을 보낸다.)을 모두 경험해 보았으니.. 하지만 선배들의 조언 아니 충고대로 기쁨은 딱 이틀에 끝나버렸다. 삼일째부터 가슴과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으니까..


열여섯. 그 가을에 가슴으로 울었던 눈물이 기쁨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 지켜보고 계시지요? 큰 딸 이렇게 잘 살아왔습니다 이제 엄마랑 동생들 걱정하지 마시고 그곳에서 편안히 계세요'


스무 살,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작은 시에서 대도시로의 탈출이었다.

시키는 일은 무조건 했다. 시키지 않은 일도 했다. 행여 능력부족으로 쫓겨날까 두려웠으니까, 쫓겨나면 나를 믿고 나만 바라보는 엄마와 두동생들이 살 곳도 먹을 것도 없을 테니까..

버스를 타고 거의 한 시간 거리를 왕복 버스표 두 장만 가지고 출근을 했다.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만 소중했던 시골여학생에게 직장생활은 힘들었다. 무엇보다 체력이 부족했다. 선배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영업장 전체를 쓸고 닦았다. 책상도..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쫓겨나는 줄 알았다. 한마디 도와주는 동문선배도, 동향선배도 없었지만 외로울 틈도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한 달이 채 되기 전, 입안이 아렸다. 언제부터인지 물을 마셔도 입안이 아팠다. 물집이 안으로 생겼던 것이다. 밖으로 나타나면 보이기라도 했을 힘듬이었겠지만, 물집조차도 속으로 삼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좋았다. 기쁘고 행복했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새로 들어온 이양(그때는 호칭이 그랬다)은 힘들지도 않나 봐 늘 생글 생글이네"했으니까..

물집을 머금은 내 미소로 가족이 버텨내고 살아갈 수 있다는데, 설령 억지웃음이라 해도 못할 게 없었다. 내 웃음에 하루가 아닌 한 달 아니 여러 달 우리 가족의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생기고 동생들이 원하는 만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데..


그 시절 내게 '꽃'이었던, '꽃'처럼 보이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내가 근무하던 최일선(?)이 아닌, 바로 뒷자리의 선배! 담당업무 책임자 옆자리에 앉아 내부업무를 지원하던 선배언니였다. 업무가 온라인화 되면서 제일 먼저 사라져 버린 자리이기도 했다.

고객과의 접점이 아닌 내부업무만 하는 선배가 얼마나 부럽고, 꼭 저 자리에 앉아봐야지 했었다.

안타깝게도(?)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내게 '꽃'이던 그 자리처럼,


오롯이 혼자,

36년 직장생활을 캐리어 하나에 정리해야 했던,

이런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었을까...

우연히 TV드라마 '대행사'의 마지막 회에서 후배와 경쟁하다 물러나는 순간까지 분개하는 선배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 마지막에 절규하듯 던진 후배의 한마디,
존경할 수 있는 선배로 남아달라던 그 말 한마디로 어제까지의 일들을 정리하고 담담하게 뒤돌아서는 선배에게 모두의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었다.
눈시울보다 가슴이 더 뜨겁게 젖어들었던 건 나 혼자만의 경험일까.


아직은.,.피고 있는 꽃이리라

#승진 #직장생활의 꽃 #행복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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