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모르는 사람이면, 그는 가치 없는 사람인가
기자를 하면 제일 먼저 육하원칙을 배운다.
이걸 모르면 절대로 기사를 쓸 수 없다.
단정적인 표현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건 단정적으로 그렇다.
걸음마를 떼지 않고 뛸 수 없는 것과 같다.
육하원칙에서도 '누가'는 기사 맨 앞에 온다.
맨 앞에 온다는 건 중요하다는 의미다.
즉, 사람은 기사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
기자 하면서 정말 지겹게 들은 이 명제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개중에 '기사에서 사람은 주어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게 주된 포인트다.
여기까지 왔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든다.
'사람 얘기를 기사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체로 관음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트루먼쇼>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대중이 호응한 기저에는,
상대를 지켜보려는 인간의 본능이 자리한다.
조지오웰이 <1984>에서 그린 것처럼,
누구나 파놉티콘의 관찰자가 되기를 상상한(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독자도 인간이니 관음적이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산다.
그러니 독자가 원하는 사람 얘기를 써야 한다.
이제는 '누구'를 쓸지 결정할 차례다.
마찬가지로 기준으로,
독자가 원하는 사람 얘기를 써야 한다.
흔하지 사람 얘기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기사에는 유명한 사람만 나온다.
속되어 보이지만 저널리즘에서 기사의 필수 구성 요소이다.
그럴싸하게 '기사의 저명성'으로 부른다.
이걸 앞서 명제에 빗대어 보면,
개가 사람을 물면 얘기가 안 되지만,
물린 사람이 어떤 누군가라면 얘기가 된다.
예컨대 '개가 국회의원을 물'면,
목적어는 주어가 돼 기사가 된다.
'국회의원이 개에 물렸다!'
(물론 국회의원이 개를 문 게 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기사가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게 기자의 능력이다.
말하자면 우리 동네 정육점 형님네가 부인의 외도로 부부싸움을 했는데,
(글의 이해를 위하여 지어낸 일이다.)
이걸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독자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부인의 외도 상대방이 앞서 '개한테 물린 국회의원'이라면,
나를 포함해 유권자인 독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이 된다.
한낱 치정에 불과했던 부부싸움이 급기야 민주주의의 요체인 참된 선거권 행사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의 눈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둘로 나뉜다.
얘기가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얘기가 안 되는) 사람.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절대다수의 기자들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사람을 대한다.
관건은 여기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전에도 유명하지 않았고,
지금도 유명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유명하지 않은(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 이들은,
얘기가 안 된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상관이 없다.
독자가 모르거나 모를 법하면,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여기에 익숙해진 기자들의 사고방식이 때로는 문제가 된다.
재벌과 정치인, 고관대작 같은 이들을 만나다 보니,
그들이 된 양 굴기도 한다.
영화 <야당>에서 검사가 검찰 출입 기자를 이용하다고 배신을 하면서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검찰 출입하더니 지가 검사인 줄 아네."
영화 맥락을 떠나서,
실제로 나는 검찰을 취재하면서 '검사인 줄 아는' 기자를 많이 봤다.
법조문에서 조차 사라진 검사동일체가 검언동일체**로 부활한 느낌이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이들(독자)이 사는 세상과 괴리한다.
기자가 둘 간에 괴리를 좁히지 못하면 독자는 떠난다.
이런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짐작이 무리도 아니다.
'기자야 니가 재벌 걱정을 왜 하냐'
아이러니다.
유명하지 않은 독자가 원해서,
유명한 이의 기사를 쓰다가,
결국엔 유명하지 않은 독자를 잃는다니.
나도 사람께나 볼 줄 안다고 폼 잡고 다닌 적이 있었다.
치기 어린 시절 얘기다.
어느 날 법정에서 그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게 부끄러웠다.
그 뒤로 스스로 경계했다.
그들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에게 더는 공감하지 못하게 되지 않으리라고.
(뒤에 이어서)
*언론 소비자는 독자뿐 아니라 시청자와 청취자 등이 있다. 글에서는 편의상 독자라고 칭하고 특별한 부연이 없으면 모든 언론 소비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친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찰청법에 명시돼 있던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조항을 일컫는다. 어떤 검사가 어느 사건을 맡더라도 동일하게 처리하도록 한 장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를 상징하는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 지금은 폐지됐다. 검언동일체는 이런 맥락을 빗대어 지어낸 조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