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법률구조공단에서부터 시작된 고민
1992년, 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 여건이나 법률 지식의 부족 때문에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복지를 제공하는 곳이다. 즉, 법률서비스가 필요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을 돕는 곳이었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은 가장이 찾아왔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 소송을 해야 하는데 주부라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여성도 있었다. 물품 대금을 받지 못해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폐업 위기에 놓인 회사 대표도 만났다.
서류를 검토해 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법률구조공단의 지원 대상이 아니거나, 조건이 맞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결국 변호사 선임을 포기하고 체념했다.
이후 개인 사무실을 열었을 때도, 법무법인 이현을 설립한 후에도, 나는 똑같은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변호사비가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나홀로소송을 선택한 68%
법원행정처가 발표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민사사건 처리 건수 768,886건 중 무려 522,631건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68%가 혼자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과연 그것이 쉬운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사무실에 사건을 맡긴 분들 중에는 처음엔 변호사 없이 혼자 시작했던 이들이 많다. 그들이 겪은 어려움은 비슷했다. 소장 작성부터 막막했다. 증거를 어떻게 수집하고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상대측 변호사의 전문적인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법정에서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다.
특히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에는 축구 경기에서 프로선수와 아마추어가 붙는 격인 셈이다. 결국 1심에서 패소하여 이를 뒤집어 줄 변호사를 찾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후불제를 고민했던 시간들
후불제 소송을 진행해 드릴까. 그런 생각으로 몇 년간 운영을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지속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약 10명의 변호사와 50명의 직원이 일하는 조직이다. 업무의 분업화, 조직화, 표준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변호사비를 낮추려 노력해왔지만, 후불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후불제 소송은 포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포기하고 있던 와중, 소송금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길
소송금융. 단어를 접했을 당시에는 나에게도 생소한 단어였다.
쉽게 말하자면, 회사나 기관이 변호사 비용을 대신 내주고, 승소하면 배상금에서 일정 비율을 가져가는 일종의 투자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성화된 시장이다. 영미권에서는 Burford Capital, Augusta Ventures 같은 회사들이 소송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로앤굿, 로에이드 같은 리걸 테크 기업들이 생겨났다. 작년에 로앤굿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이 회사가 국내에서 홀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로에이드도 생겨났다. 이 시장이 활성화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모든 사건이 가능한 건 아니다
물론 아쉽게도 모든 사건이 지원 대상은 아니다. 업체들 입장에서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승소 시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사건에 한해 지원한다.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건, 배상 금액이 너무 적은 사건, 상대방이 무자력인 경우, 증거가 부족한 사건은 지원받기 어렵다. 형사범죄 가해자 사건, 교통사고나 음주운전 가해자 사건, 회생이나 파산 관련 사건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나 고객이 신청서를 접수하면 내부 심사팀에서 승소 가능성과 실질적인 금액 회수 가능성을 검토한 뒤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지원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심사에 통과하면 변호사 착수금과 인지대 등 소송비용을 전액 지원받을 수 있다.
이현에서 진행한 사례들
우리 사무실에서도 재산분할, 손해배상, 약정금, 보증금 등 다수의 사건을 소송금융을 받아 진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의뢰인들의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발설할 수 없다. 하지만 의뢰인분들 반응은 좋았다.
"처음엔 비용 때문에 고민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네요."
의뢰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패소했을 때다. 만약 패소하면 어떻게 되는가. 투자 받은 변호사 비용을 상환할 의무는 없다. 이것이 소송금융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대신 투자회사가 그 손실을 감수한다. 그래서 그들도 승소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다.
소송 중간에 합의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사전에 약정했던 비율대로 투자회사에서 회수한다. 합의든 판결이든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마찬가지다.
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마라
나는 이 글이 광고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업체 이름을 언급하지 말까 생각도 해봤다. 그렇지만 사실상 국내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전무했기에, 비용이 없어 소송을 하지 못했던 분들께 자그마한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언급을 해본다.
그러니 억울한 일이 생겨 소송이 필요할 때, 비용 부담 때문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조차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1644-9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