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스캠을 당했습니다

9천만 원을 사기 당한 그녀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2023년 가을, 충주에서 온 전화 한 통.


"혹시.. 이게 사기인 걸까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차분하기도 했다. 33년간 변호사로 살아오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짐작이 간다.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확인받고 싶은, 그런 목소리였다.


내용을 들어보니, 9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사기당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서류를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고, 얼마 안 가 도착한 파일을 한참 읽었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었다.




김OO이라는 남자


틴더라는 데이팅 앱에서 만난 김OO이라는 사람. 한국계 미국인 오일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몇 달에 걸쳐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쌓았다. 매일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었고, 시리아 현장에서 근무한다며 일상을 공유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인터넷 뱅킹 오류로 급한 거래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수법은 정교했다. 그는 자신의 계좌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로그인하니 정말로 거액의 잔고가 있었다. 물론 가짜 사이트였지만, 그녀는 알 리가 없었다.


안심한 그녀는 송금을 시작했다. 수리비 1,800만 원, 물품대금 7,100만 원, 배송료. 마지막엔 긴급 귀국을 위한 항공료까지.


그 후, 김OO은 카카오톡을 차단했다. 알려준 계좌는 비밀번호가 바뀌어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똑같은 수법의 피해 사례가 수두룩했다. 그녀는 그제야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가압류부터


이미 피해를 입고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였기에 불안했지만, 가압류 신청부터 진행했다. 그녀가 돈을 보낸 계좌에 잔고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계좌를 묶어두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고소보충서를 썼다. 그녀는 이미 충주경찰서에 고소한 상황이었지만, 일반인이 작성한 것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추가로 70장 분량의 보충서를 제출했다.


민사소송도 함께 진행했다. 계좌 명의자들을 상대로 본소 소장을 냈다. 손해배상 청구와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병합했다. "계좌를 범죄에 이용될 줄 알면서도 제공했으니,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이 드러났다. 김OO은 허구의 인물이었다. 돈을 받은 계좌들은 모두 외국인 명의였고, 명의자들을 소환하려 해도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수사는 결국 중지됐다.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민사소송 판결을 받았다. 이제 집행을 할 차례다. 우리는 곧바로 가압류를 본압류로 이전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을 냈다. 2곳의 은행 계좌를 압류하고, 제3채무자인 은행들에 진술최고를 신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은행으로부터 2,640여만 원을 추심했다. 다음 날에는, 농협은행으로부터 540여만 원을 추심했다.


추심.png


합계 약 3,180만 원.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피해액의 3분의 1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진화하는 로맨스스캠


사실 그녀가 당한 수법은 꽤나 오래된 수법이다. 예전에는 '돈 좀 빌려줘'였다면, 이제는 '함께 돈을 벌자'로 로맨스스캠이 진화하고 있다.


요새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라고 사칭하며 팀미션 사기와 결합해 돈을 갈취하는 행태가 많아졌다. 이 경우 사기꾼은 한국인이 맞으나, 해외에 체류하고 있어 검거가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조명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조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수법은 이러하다.


"요즘 쇼핑몰 리뷰 알바를 하는데, 돈이 꽤 되더라. 우리 같이 해볼래?"


처음엔 적은 금액으로 시작하고, 지정된 상품을 구매하면 구매액에 수수료를 얹어 돌려준다. 몇 번은 정말 돈이 들어온다. 그러다 '팀미션'을 권유받는다. 여러 명이 함께 큰 금액을 투자하면 수익률이 높아진다며 유혹한다.


"나도 넣을게. 우리 함께 해보자."


갈수록 구매해야 할 물건의 값이 커지고,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다른 사람들도 정산을 못 받는 식으로 죄책감을 유발해 억지로 이어나가게 한다. 그러다 대출까지 받아 수천만 원을 입금한 순간, 연락은 끊어진다.


리뷰 알바, 쇼핑몰 팀미션, 가상자산 투자. 이름만 다를 뿐 패턴은 같다. 애정으로 신뢰를 쌓고, 작은 성공을 보여주고, 큰 금액을 걸게 만들고, 사라진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하고도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싶지 않으니까.





변호사가 해줄 수 있는 일


이런 사건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돈을 전부 돌려받는 것? 솔직히 쉽지 않다. 범인을 잡는 것? 그건 더더욱 어렵다. 피해액의 3분의 1만 추심한 이 사건에서, 내가 의뢰인에게 과연 도움이 된 것인가. 나는 그 답을 의뢰인의 감사 인사에서 찾았다.


"변호사님,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 제 편에서 싸워준다는 게 위로가 됐어요." 그녀는 아예 받지 못할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큼이라도 찾아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전했다.



변호사로 살아가며 때때로 무력함과 마주한다. 피해액을 전부 돌려받지 못할 때, 범인을 잡지 못할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럼에도 나는 소장을 쓴다. 가압류를 신청하고, 고소장을 작성하고, 법정에 선다. 완벽한 결과를 약속할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해 함께 싸울 수는 있으니까.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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