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을 빌려줬는데, 그는 집을 아들에게 넘겼다

채무자가 재산 은닉을 했다면 사해행위취소소송으로 해결하라

"변호사님, 판결까지 받았는데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2023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상대방이 미리 재산을 빼돌려서 회수할 재산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전화였다.


A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서류를 요청했다. 판결문, 차용증, 등기부등본. 도착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윤곽이 잡혔다. 전형적인 사해행위 사안이었다.






20년 간 빌려준 돈


A 씨에게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었다. 그 지인이 경매로 나온 부동산을 낙찰받고 싶다며 입찰보증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A 씨는 믿고 돈을 보냈다. 그 후로도 경락자금대출 이자가 필요하다고, 건물 관리비가 급하다고 할 때마다 A 씨는 돈을 보냈다. 20년 간 수십 차례에 걸쳐서. "부동산 팔면 전부 갚겠다"는 말을 믿으면서. 총액은 3억 원이 넘었다.


A 씨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차용증은 매번 빠짐없이 받아두었다. 하지만 2021년 9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당연히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원금 3억 원에 이자를 더한 3억 5천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재산조회를 신청해보니, 채무자가 강원도 OO군 소재 토지 5필지를 아들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점은 2021년 6월. A 씨가 소송을 제기하기 불과 3개월 전이었다.





재산을 숨기는 사람들


사해행위. 법률용어이기에 생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쉽게 말해, 빚을 진 사람이 갚기 싫어서 자기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빼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가진 재산이 별로 없는데 빚은 수억 원인 상황에서, 유일한 부동산을 가족에게 헐값에 팔거나 증여하는 행위가 그 예시이다.


법은 이런 행위를 그냥 두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자는 법원에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이 인정하면 빼돌린 재산을 다시 채무자 명의로 되돌리고, 그 재산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소송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린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또는 그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이내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


A 씨의 경우는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재산조회로 사실을 안 게 2023년 8월이었고, 명의 이전은 2021년 6월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급히 처리된 명의 이전


사실관계를 정리하자 윤곽이 선명해졌다. 채무자는 2021년 6월,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라 할 OO군 토지 5필지를 아들에게 넘겼다. 아들은 어머니인 채무자와 함께 살고 있었고, 같은 날 5필지 전부가 동일한 접수번호로 등기됐다. 한꺼번에 급하게 처리한 흔적이었다.


나는 즉시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소송 중에 상대방이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또 팔아버리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가처분 결정이 나면 매매든 증여든 저당권 설정이든 일체의 처분행위가 금지된다.


그 다음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채무자가 아니라 재산을 받은 아들이다. 사해행위취소소송은 현재 그 재산의 명의를 가진 사람을 상대로 해야 한다. 원상회복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모에게 빌렸다는 1억 2천만 원


피고 측 변호사가 제출한 답변서를 읽었다. "매매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했습니다. 피고는 그 과정에서 이모(모친의 친구)로부터 1억 2천만 원을 차용해서 어머니에게 지급했고, 현재도 이모에게 매달 이자 50만 원씩 성실히 납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주장의 허점을 하나씩 짚어갔다. 변호사 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이런 식의 항변은 수없이 봤다. 30대 초반 청년이 특별한 재력도 없는데, 어머니의 친구에게서 1억 2천만 원을 빌린다? 어머니가 돈이 필요하면 본인 명의로 대출받거나 담보를 제공하면 된다. 왜 아들이 채무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자 지급 내역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대부분 현금으로 줬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간에 원금을 일부 변제했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도 월 이자는 여전히 50만 원이었다. 이모에게 2천만 원 가까이 갚았는데 이자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준비서면에 이렇게 썼다.


"피고의 주장은 통상적인 거래 관행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해행위를 위장하기 위한 형식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악의의 추정


사해행위가 성립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였어야 한다. 이 사건의 채무자는 A 씨에게 3억 5천만 원이 넘는 빚이 있었고, 재산은 OO군 토지들뿐이었다. 명백한 채무초과였다.


둘째,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것을 알았어야 한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해치려는 의도까지는 필요 없다. 소극적으로 '이렇게 하면 채권자가 피해를 입겠구나' 정도만 인식해도 충분하다. 일명 미필적 고의이다.


셋째, 재산을 받은 사람도 그 사정을 알았어야 한다. 다만 수익자가 가족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악의로 추정된다. 채무자와 긴밀한 관계에 있어 사정을 모를 리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사건은 모자 관계였고, 같이 살고 있었다. 법원이 볼 때 아들이 어머니의 채무초과 상태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채무초과 상태, 소송 직전 시점의 명의 이전, 가족 간 거래, 대금 지급의 불합리성. 그리고 2024년 4월 마지막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법원의 판결


"피고와 채무자 사이의 매매계약을 취소한다. 피고는 채무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전부승소였다.


사해행위.png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채무자는 채무초과 상태에서 유일한 재산인 이 사건 부동산을 아들에게 양도함으로써 일반 채권자에 대한 공동담보를 감소시켰다. 수익자인 피고는 채무자와 모자 관계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의 사해의사를 알았다고 추정된다."


판결이 확정된 뒤 우리는 즉시 등기 말소를 신청했다. 토지가 다시 채무자 명의로 돌아갔고, 그 토지에 강제경매 절차를 진행했다. A 씨는 결국 경매를 통해 대금을 회수하게 되었다.





변호사로 산다는 것


판결이 확정되고, A 씨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악수를 하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20년을 기다린 사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판결을 받고도 돈을 못 받는다는 걸 알았을 때의 절망은 또 얼마나 컸을까.


1992년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나는 수많은 A 씨들을 만났다. 돈을 빌려주고 못 받는 사람들,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2002년 법무법인 이현을 만들 때 내가 다짐한 것도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의뢰인이 사건을 맡기는 것은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나는 그 신뢰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내 일보다 더 신중하게,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변호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오늘도 나는 상담실에서 새로운 의뢰인을 만난다.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고, 법무법인 이현이 걸어온 길이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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