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알게 된 남편의 죽음

특별한정승인, 뒤늦게 알게 된 빚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법


"변호사님, 어떡하죠. 이미 1년 반이나 지났는데요."


A 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1,700여만 원을 갚으라는 서류를 받은 뒤로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18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남편이 남긴 빚이었다.


서류를 살펴보니 채권양도 통지서였다. 원래 어느 회사에서 빌린 돈인지도 알 수 없었다. A 씨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상속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상속포기는 3개월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별거 18년, 사망 인지는 1년 뒤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와 남편 B 씨의 결혼생활은 그해 끝이 났다.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A 씨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새 출발을 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남편은 전화번호도 바뀌었고 어디 사는지도 몰랐다. 명절에도 연락이 없었다. 아이들도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2024년 1월쯤이었을 것이다. 큰딸이 대학 서류를 준비하다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아빠가..." 목소리가 이상했다.


남편은 2023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거의 1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장례도 이미 끝났고 유산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더 지나, 빚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3개월이 지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특별한정승인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A 씨는 처음 듣는 말이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일반인들은 상속포기나 한정승인만 알고 있다. 3개월이라는 기한도 워낙 유명해서 그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민법을 보면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결정하라고 되어 있다. 포기할 것인지, 한정승인할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3개월 안에 고인의 모든 재산과 빚을 파악하는 게 가능한가?


특히 A 씨처럼 연락이 끊긴 가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돌아가신 줄도 모르는데 빚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민법 제1019조 제3항이 존재한다. 채무가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것을 모른 데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중대한 과실


법원이 보는 것은 이것이다. 당신이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알 수 있었던 일인가, 아니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알 수 없었던 일인가.


같은 집에 살면서 매일 얼굴을 보던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황에서 부친에게 빚이 있는 줄 몰랐다고 주장하면 받아들여질까? 대부업체에서 독촉 전화가 왔을 것이고, 카드사에서 우편물이 날아왔을 것이다. 집에 채권추심원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부모가 돈 걱정하는 모습을 봤을 수도 있다. 법원은 이런 경우 '조금만 주의했으면 알 수 있었다'라고 본다. 중대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A 씨처럼 18년간 연락이 끊긴 경우는 다르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망한 것도 1년 뒤에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빚을 미리 알 수 있었을까. 법원도 '그건 무리다'라고 판단한다.


실무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들이 인정된다. 성인 자녀가 부모와 따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해 있었던 경우. 안심상속 서비스로 조회했는데도 나오지 않은 숨겨진 빚이 있었던 경우. 상속 당시 재산이 꽤 있어서 빚보다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우.





빚이 더 발견되었다


우리는 가정법원에 특별한정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에는 이런 내용들을 담았다. 2006년부터 별거했다는 사실. 18년간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 사망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는 사실. 그러니 빚이 있는지 없는지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


동시에 상속인 금융거래 통합조회 서비스를 신청했다. 고인 명의로 된 계좌가 있는지, 대출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는데, 은행 계좌 4개에 들어있는 돈은 모두 합쳐서 66만 원이었다. 그리고 대부업체 채무 1,730만 원 외에 카드 빚도 1,270만 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총 3천만 원이 넘는 빚이었다.


재산 66만 원, 빚 3천만 원. 이 숫자면 충분했다.





신고 수리


한 달쯤 지났을 때, 법원에서 심판문을 받았다. 특별한정승인 신고 수리. A 씨 가족은 이제 66만 원 한도 내에서만 변제하면 됐다. 3천만 원 빚에서 2,934만 원이 사라진 셈이었다.


특별한정승인.png



A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 돈을 어떻게 갚나 싶어서..." 목소리가 떨렸다.


33년째 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서 충분히 무뎌졌을 법 하지만, 의뢰인들의 진심 어린 감사에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변호사로서의 초심과 사람을 향한 마음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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