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6천만 원을 돌려받다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여금 문제로 상담실을 찾아오는 이들 중 상당수가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빌려준 돈 때문에 고민한다. 차용증을 쓰지 않았고, 재촉하지 못했고, 결국 포기해야 하나 망설인다.
몇 년 전 A 씨가 상담실을 찾아왔을 때가 기억난다. 그녀는 돈을 못 받고 17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변호사님, 시누이 부부한테 6천만 원을 빌려줬는데... 차용증을 안 썼어요."
1992년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나는 수많은 가족 간 금전 분쟁을 봤다. 그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가족이기에 차용증을 쓰지 않았고, 가족이기에 재촉하지 못했고, 가족이기에 결국 모든 것을 잃을 뻔한 사람들.
시작은 믿음이었다
A 씨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시누이에게 돈을 빌려줬다. 시누이 부부가 주택을 구입한다고 해서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건넸다. 총 6천만 원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시누이 부부는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는 듯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A 씨의 대출이자를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2020년, 시누이가 사망했다. 이제 남편인 B 씨만 남았다. A 씨는 그제야 용기를 냈다.
"이제라도 돈을 돌려주세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그런 돈 빌린 적 없다."
"설령 있었다 해도 시효가 지났다."
"장모를 30여 년간 봉양했으니 그걸로 상계된다."
차용증 없이 어떻게 이겼을까
"변호사님, 차용증도 없는데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A 씨는 처음에 이렇게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간단하진 않다고. 하지만 해볼 만하다고. 차용증 같은 직접 증거가 없어도 여러 정황상 대여 사실이 있었음을 입증하면 된다.
우리는 친척들의 증언을 받았다. 주택 구입을 위해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다른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B 씨가 일정 기간 대출이자를 대신 갚았던 기록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채무를 인정한 행위였다.
결정적인 것은 B 씨의 동거녀가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5천만 원이 있다고 들었고, 4천만 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B 씨와의 통화를 녹취한 파일에서도 채무를 명확히 부정하지 못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하나하나는 약한 증거였지만 모이면 그림이 그려졌다. 돈을 빌렸고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B 씨도 알고 있었다는 그림이었다.
10년의 벽
B 씨 측 변호사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소멸시효였다.
"마지막 대여가 2006년입니다. 2022년 소송 제기 시점에는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습니다."
법리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채무자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 가혹하지만 그것이 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다. B 씨의 동거녀가 2022년 4월 A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5천만 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4천만 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통장번호 주세요."
이것이 시효 완성 후의 채무 승인이다.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채무자가 다시 채무를 인정하면 시효는 리셋된다. 법원은 이 문자를 단순한 협상 제안이 아니라 채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 변제 의사 표시로 봤다.
17년 만의 승리
2023년, 1심 법원은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B 씨가 항소했지만, 2심 역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라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B 씨는 A 씨에게 5천만 원과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했다. 확정판결 이후 A 씨는 전액을 변제받았다.
가족에게 돈을 빌려줄 때
1992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의뢰인들에게 같은 조언을 반복한다.
가족이어도 차용증은 써라. 섭섭해 보일까 봐 망설이지 마라. 차용증은 서로를 지키는 약속이다. 금액과 변제 기일을 명확히 적고, 이자가 있다면 그것도 명시하라. 쌍방이 서명하고 날인하라.
대여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남겨라. 통장 이체 내역, 문자메시지, 통화 녹음이 모두 나중에 증거가 된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1644-9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