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본변경을 통해 원래의 성을 되찾은 그녀

17세에 강요당한 성본변경, 그리고 성인이 된 후의 선택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제 성을 되찾고 싶어요."


"청첩장에 아빠의 성으로 이름을 쓰고 싶어요. 결혼식장에서 아빠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고 싶고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수많은 가족 문제를 봐왔다. 그중에서도 성본변경 사건은 늘 조심스럽다. 단순히 호적을 고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소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


A 씨의 이야기는 초등학생 때 부모의 이혼에서 시작됐다. 엄마가 친권자가 됐고, A 씨는 엄마가, 남동생은 아빠가 키우기로 했다. 그날 이후 아빠와 동생은 A 씨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이혼 후에 여러 남자를 만났다. A 씨는 중학생 때 외할머니의 집을 나와서 엄마 남친의 집으로 옮겨야 했고, 학교도 전학을 가야 했다. 그렇게 불안정한 생활이 몇 년 이어졌다. 엄마의 남자친구가 바뀔 때면 A 씨도 그때마다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친구를 만났고, 이번에는 임신까지 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했고, 얼마 뒤 이부동생이 태어났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이부동생이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자, 엄마와 계부가 A 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언니랑 성이 다르면 동생이 학교에서 힘들 수 있어." 만 17세.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나이였다. A 씨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자필 진술서를 썼고, 법원을 통해서 계부의 성으로 바꿨다.


나는 비슷한 사례를 여러 번 봤다. 미성년자의 성본 변경은 대부분 '부모의 필요'에 의해서 이뤄진다. 아이 본인의 의사는 그 과정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법원도, 친권자가 동의하고 절차상의 문제가 없으면 대개 허가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 아이에게 좋은 선택일까? 나는 늘 의문이었다.





이름뿐인 가족


성을 바꿨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었다. A 씨는 명절 때마다 혼자 외할머니의 집에 남겨졌다. 엄마와 계부는 이부동생만 데리고 계부의 친가로 갔다. 계부의 친척들에게 조카나 손녀로 불린 적도 없었다. 계부는 A 씨와 부딪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너랑 사는 이유는 단 하나, 네 동생 때문이다. 와이프나 내가 잘못되면 어린 걔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할 거 아니냐."


A 씨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학비나 용돈을 받지 못했다. 졸업하고 취직한 뒤에는 생활비를 과하게 요구당했고, 힘들다고 하면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괘씸하다, 패륜이다"라는 말만 들었다.


2002년에 법무법인 이현을 설립하면서, 나는 '사람중심'이라는 가치를 가장 먼저 세웠다. 법률 서비스는 결국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가족법 사건을 하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소외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A 씨도 그랬다. 17세 때 본인의 의사는 묻히고, 살면서 이부동생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되었다.





진짜 가족을 만나다


독립한 뒤, A 씨는 친모·계부와 의절했다. 엄마나 계부 소식만 들어도 숨이 막혔던 그녀는, 결국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러던 중에 친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거부했다. '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트라우마였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궁금했다. 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빠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그런 마음이 조금씩 쌓여서, 결국 A 씨는 용기를 내서 동생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리고 동생을 통해서 친부를 만났다.


아빠는 만나자마자 울면서 사과했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정과, 엄마와의 불화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A 씨는 그때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느꼈다고 했다. '진짜 가족들'과 만난 이후 그녀는 공황장애 약을 조금씩 줄였고, 나중엔 아예 끊을 수 있었다.


명절에는 아빠, 동생과 함께 큰아버지의 댁에 갔다. 친척들과 인사하고, 돌아가신 조부모님의 차례 음식을 함께 만들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속한 곳.'





원래의 성을 되찾다


"원래 성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A 씨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나는 보정 없이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도록 서류를 꼼꼼히 준비했다. 미성년자 때 강요된 변경이었다는 점, 계부·친모와는 의절 상태라는 점, 학대로 인한 공황장애, 그리고 친부·동생과 회복된 가족 관계. 모든 것을 심판 청구서에 담았다.



그리고,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26일 만에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인용.png


A 씨는 자신의 진짜 성을 되찾았고, 이후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을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을 진행할 때면, 우리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법무법인 이현의 비전은 '국민로펌'이다. 고객과 변호사와 직원이 모두 행복한 법률회사. 중산서민층과 중소기업도 믿고 찾을 수 있는 곳.


화려한 비전은 아니다. 매출을 올리고 조직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변호사가 하는 일의 본질은 곤란함을 겪고 있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 씨처럼 자기 성씨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사람이, 법의 도움으로 진정한 자신을 되찾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A 씨 같은 사람들이 망설이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1644-9360

카카오톡 문의(클릭)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족에게 빌려준 돈, 10년이 넘었어도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