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대신 혼인무효를 택한 국제결혼 피해자

비자를 위한 도구가 되었던 한 남자의 인생을 되찾다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변호사님, 이혼이 아니라... 결혼을 아예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상담실에 들어선 남자의 얼굴을 보니, 단순히 부부 불화로 고민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깊은 배신감,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잘못 찍힌 낙인을 어떻게든 지워버리고 싶다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30년 넘게 변호사 밥을 먹다 보면 의뢰인의 첫마디와 눈빛만으로도 사안의 무게가 읽히곤 한다.


그는 간절히 혼인무효를 원하고 있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법이 가장 필요한 곳은 거창한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는 현장이라고 믿어왔다. 이 사건 역시 그랬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한 남자가 결혼이라는 꿈을 미끼로 철저히 이용당한 이야기였다.





아내의 잔인한 고백


이야기는 202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흔을 넘긴 나이, 의뢰인 A 씨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여성 B 씨를 소개받았고, 그는 진심을 다했다. 수천만 원의 비용, 수차례의 출국, 그리고 그녀가 한국어를 배우는 8개월 동안 보낸 생활비와 학비까지. 그는 아낌없이 지원했다.


2024년 9월, 드디어 아내가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행복은 신기루처럼 짧았다.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몸이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데려간 병원에서 의사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임신 6주 차입니다."


입국한 지 채 2주 남짓한 시점이었다. 의학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A 씨의 아이일 수가 없었다. 추궁 끝에 돌아온 대답은 비수와 같았다. 그녀는 입국 전 현지 애인의 아이를 임신했고, 한국 국적과 비자를 따기 위해 A 씨와 결혼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는 "당신의 아이로 키우다 나중에 이혼하려 했다"는 끔찍한 말과 함께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짐을 싸서 본국으로 도망쳐버렸다.





이혼이 아닌 무효를 구해야 하는 이유


A 씨는 내게 물었다. "제가 너무 바보 같았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믿은 것은 죄가 아니다. 그 믿음을 악용한 사람이 나쁜 것이다.


법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혼이고, 다른 하나는 혼인무효다. 많은 사람이 이 둘을 혼동하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이혼은 [유효하게 성립한 결혼]을 장래를 향해 해소하는 것이다. 즉, 가족관계등록부에 결혼과 이혼의 기록이 남는다. 반면 혼인무효는 [애초에 결혼이 성립하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것이다. 법적으로 부부였던 적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A 씨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혼인무효는 이혼보다 훨씬 까다롭다. 단순히 사이가 나쁘거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민법 제815조 제1호,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에 해당함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합의란 단순한 신고 의사가 아니라, 사회 통념상 부부로서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맺으려는 진정한 의사를 뜻한다.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명확했다. B 씨에게는 처음부터 A 씨와 부부로 살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A 씨는 남편이 아니라 비자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





진실을 밝히는 싸움


국제결혼 사건, 특히 상대방이 출국해 버린 사건은 증거 싸움에서 난항을 겪기 쉽다. 나는 우리 법무법인 이현의 직원들과 함께 A 씨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결정적인 증거들이 있었다.


첫째, 산부인과 진료 기록이다. 입국 날짜와 임신 주수를 비교한 결과,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되었다.

둘째, A 씨가 송금한 거액의 내역들이다. 이것은 사랑의 증표가 아니라 착취의 증거였다.

셋째, 무엇보다 피고가 직접 쓰고 간 편지였다. "국적 취득이 목적이었다"는 그녀의 자백은 이 소송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이 증거들을 토대로 치밀하게 소장을 작성했다. 상대방이 소재 불명이기에 공시송달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흘러, 법원은 피고가 원고를 기망하여 국적 취득의 방편으로 혼인신고를 했을 뿐, 참다운 부부관계 설정의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하여 혼인무효 판결을 내렸다.


혼인무효.png




사람중심이라는 가치 앞에서


판결이 확정된 날, A 씨는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는 후련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기록은 지웠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까지 지워지지는 않았으리라.


2002년, 내가 법무법인 이현을 세우며 내건 비전은 '국민로펌'이다. 중소기업과 서민들도 언제든 믿고 찾을 수 있는 문턱 낮은 로펌. 변호사 비용이 걱정되어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합리적인 비용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곳. A 씨 같은 분들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이다. 선량한 마음으로 행복을 꿈꿨을 뿐인데,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들에게 짓밟힌 사람들 말이다.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이런 피해 사례도 함께 늘고 있다. 비자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위장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범죄다.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너진 의뢰인의 삶을 법을 통해 다시 세워주는 일일 것이다. 비록 마음의 상처는 의사의 영역일지라도, 사회적 신분과 법적 권리만큼은 온전히 되찾아주는 것. 그것이 사람중심을 외치는 나의 책무라고 믿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내가 속은 건 아닐까"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잘못된 출발점은 다시 바로잡으면 된다.


우리가, 그리고 내가 곁에서 도울 것이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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