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읽지 못한 그녀의 사정
변호사 생활 30년.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수많은 의뢰인을 만났다. 개중에는 흉악한 범죄자도 있었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우리네 평범한 이웃이 억울하게 피의자가 되어 찾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변호사님,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죄를 지은 건가요?"
상담실에 들어선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녀에게 씌워진 혐의는 '업무방해죄'. 그녀가 방해했다는 업무는 거대 공기업 코레일의 승차권 예매 시스템이었다. 도대체 평범한 가정주부가 어떻게 기차 예매 시스템을 마비시켰다는 것일까.
기차여행이 유일한 낙이었던 여자
그녀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아들을 24시간 돌보는 어머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고된 간병 생활.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은 그녀에게 삶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한 달에 한두 번,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일요일에 떠나는 당일치기 기차 여행이었다. 짧은 시간 기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 풍경을 보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집의 일상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여행 날짜를 잡아두어도 아이가 갑자기 열이라도 나면 모든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혹시라도 몸이 불편한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할 상황을 대비해, 그녀는 늘 휠체어 이용이 용이한 특정 좌석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매달 일요일 표를 미리 예매해 두고, 갈 수 있는 날이 확정되면 나머지를 취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시스템을 교란하려는 악의가 아니라, 고단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숨 쉴 구멍을 확보하려는 엄마의 절박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전산 시스템의 눈에 사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코레일의 알고리즘에 그녀는 그저 '수천 건의 표를 샀다가 취소하며 영업을 방해하고 카드 포인트를 챙기려는 악성 이용자'로 분류되었을 뿐이다. 결국 그녀는 고소당했고,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위계와 위력, 그리고 진심의 증명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허위 사실 유포, 위계(속임수), 또는 위력이 있어야 한다. 수사기관은 그녀의 행위를 위계, 즉 탈 생각도 없으면서 표를 사서 코레일을 속인 행위로 의심하고 있었다.
"평생 남에게 해 끼친 적 없는데 범죄자라니요..."
억울해하는 그녀를 위해 우리 로펌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2024년 4월부터 12월까지, 그녀의 모든 승차권 예매 내역을 현미경 보듯 분석했다. 그리고 우리는 수사관 앞에 세 가지 명백한 사실을 내놓았다.
첫째, 속임수는 없었다. 그녀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린 것이 아니라, 손수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좌석을 일일이 지정해서 예매했다. 실제로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간절한 마음의 증거였다.
둘째, 부정한 이익도 없었다. 코레일 측은 카드 실적을 노렸다고 주장했지만, 확인 결과 그녀가 사용한 카드는 취소 시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거나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 카드였다. 오히려 잦은 취소 수수료 때문에 그녀는 금전적 손해를 보고 있었다. 포인트 사냥꾼이 손해를 보면서 사냥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셋째, 방해의 고의가 없었다. 그녀는 대부분 일주일 전, 늦어도 2~3일 전에는 취소했다. 그 표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적으로 재판매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담아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했고, 끈질기게 수사관을 설득했다. 결과는 혐의없음(불송치).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지도 않고 경찰 단계에서 깨끗하게 종결되었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건이 해결되고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나 역시 가슴 한구석에 얹혀있던 돌덩이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댄다. 그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개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정은 걸러지지 않고, 때로는 이번 사건처럼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시스템이 보지 못하는 '사람'을 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활자만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 그 진실을 길어 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업으로 삼으며 지키려 애쓰는 가치다.
로펌을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다루는 서류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일 수 있다." 그녀의 승차권 내역서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둔 엄마의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시스템의 오해로, 혹은 법을 잘 몰라서 가슴 졸이고 있을 또 다른 그와 그녀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니, 미리 절망하지 말라고.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1644-9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