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돈이 3억이 넘는데 채무자가 내 통장을 압류했다

3억을 떼이고도 통장을 압류당한 남자의 이야기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법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끔은 법이 만들어내는 상황이 현실의 상식을 정면으로 배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법전이 참으로 차갑게 느껴진다.


법은 감정이 없다. 맥락을 스스로 읽어내지도 못한다. 그저 입력된 값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과를 출력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선량한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둔갑하고, 남의 돈을 떼어먹은 사람이 큰소리를 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우리 사무실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찾아오신 50대 남성분의 사연이 딱 그러했다. 그는 3억 원이 넘는 큰돈을 떼이고도, 오히려 고작 수백만 원 때문에 자신의 생계 통장이 묶이는 황당한 일을 겪고 있었다.





3억 5천만 원과 500만 원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의뢰인은 상대방에게 3억 5,500만 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공증까지 받아둔 확실한 채권이었다. 반면 상대방은 의뢰인에게 줄 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의뢰인이 채권자였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얽힌 별개의 소송이 불씨가 되었다. 의뢰인이 상대방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소송비용 약 560만 원을 상대방에게 물어줘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계산은 간단하다.


"당신이 나에게 줄 돈이 3억 5천만 원이나 있으니, 내가 줄 돈 560만 원은 거기서 깝시다."


법률 용어로 상계라고 한다. 의뢰인은 당연히 그렇게 처리될 것이라 믿고 상대방에게 상계를 통보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법원으로부터 받은 500만 원짜리 소송비용 확정 결정을 무기 삼아 의뢰인의 주거래 은행 통장에 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해 버렸다.


수억 원을 갚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는 멀쩡히 활보하는데, 돈을 떼인 채권자의 손발이 묶여버린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집행관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내가 받을 돈이 더 많다"라거나 "이미 갚았다"는 사실만 있으면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행 현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집행관이나 은행은 실체적 진실을 따지는 기관이 아니다.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결정문이라는 서류뿐이다. 서류가 완벽하면 집행은 이루어진다. 그것이 설령 억울한 집행일지라도 말이다.


의뢰인의 통장은 묶였고, 당장 사업 자금 융통이 막혔다. 상대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의뢰인이 가진 3억 5,500만 원짜리 공정증서 자체가 무효라며 별도의 소송까지 걸어왔다. 의뢰인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엉킨 실타래를 끊어내는 세 번의 가위질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법원을 설득할 수 없다.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법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동료 변호사들과 사건을 재구성하며, 반드시 거쳐야 할 세 단계의 실행 계획을 세웠다.


첫째, 상대방의 주장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상대방은 의뢰인이 가진 3억 5,500만 원짜리 채권(공정증서)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공정증서 무효 확인의 소송을 걸어온 상태였다. 만약 이 채권이 무효가 되면, 우리가 주장하려는 상계의 전제 조건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치열한 공방 끝에 "공정증서는 유효하다"는 승소 판결을 받아내며 법적 우위를 점했다.


공정증서 무효확인.png



둘째, 의뢰인의 숨통을 틔우는 조치가 시급했다.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통장이 계속 묶여 있다면 의뢰인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우리는 즉시 법원에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상계를 통해 채무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자료로 소명했다.


그 결과, 법원은 우리의 소명을 받아들였다. 재판부 역시 이 집행이 부당하다는 우리의 주장에 공감했다는 방증이었다.


강제집행정지.png



셋째, 분쟁의 뿌리를 뽑았다.

마지막 단계로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상대방이 가진 집행 권한을 법적으로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절차다. 앞서 확보한 승소 판결문과 상계 법리를 토대로, 상대방이 청구한 560만 원의 채권은 이미 소멸했음을 입증했다.


결국 법원은 "강제집행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리며 의뢰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청구이의.png





변호사의 역할


사건이 종결되고 압류가 풀리던 날, 안도하던 의뢰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명백히 내가 받을 돈이 더 많은데도, 절차의 틈새를 파고든 악의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시간들. 그 불안함이 오죽했을까.


돈을 빌려 간 사람은 오히려 당당하고, 돈을 떼인 사람은 전전긍긍하는 세태. 거기에 법적 절차를 악용하는 교묘함까지 더해지면, 선량한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법률가의 역할은 거창한 정의 구현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억울하게 꼬여버린 누군가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법을 통해 해결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30년 넘게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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