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 없이 퇴사했으니 손해배상 청구하겠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을 울리는 기업의 화풀이 소송에 맞서며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직장인에게 사직서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약대이고,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일 것이다. 어떤 의미든 그 끝은 깔끔한 마침표여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마무리가 새로운 악몽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 의뢰인의 손에는 소장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2년 6개월간 몸담았던 전 직장,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육 기업에서 그녀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소장이었다.


청구 금액은 1,800만 원. 기업 입장에서는 회계 장부상의 숫자일지 모르지만, 월급을 모아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거액이다. 상담실에 앉은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변호사님, 제가 퇴사하면서 회사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힌 걸까요?"


나는 30년 넘게 변호사로 살면서, 법이 강자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순간을 수없이 목격했다. 기록을 훑어보는 내내, 이번 사건 역시 힘없는 개인을 향한 조직의 화풀이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인수인계를 안 하고 도망친 직원?


회사의 주장은 제법 그럴싸했다. 피고(의뢰인)가 퇴사하면서 업무 산출물을 인계하지 않았고, 보안 서약서를 위반해 자료를 개인 USB에 담아 유출하거나 분실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회사는 업무를 파악하느라 6개월이나 허비했고, 그 기간에 해당하는 인건비 1,8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소장만 읽어보면 의뢰인은 무책임하게 회사를 망가뜨리고 도망친 파렴치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듣고, 증거 기록을 통해 확인한 진실은 전혀 달랐다.


의뢰인은 웹 기획자로 2년 넘게 성실히 근무했다. 퇴사를 앞두고 그녀는 회사의 관행대로 협업 툴에 모든 작업물을 공유했다. 진짜 문제는 회사의 관리 부실과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퇴사 과정에서 상급자는 그녀가 내민 인수인계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며 소리를 질렀고, "사인 못 하겠으니 알아서 하라"며 모욕감을 주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사라졌다는 자료의 행방이었다. 회사는 의뢰인이 고의로 자료를 지웠다고 몰아세웠지만, 사실은 달랐다. 협업 툴 관리자인 상급자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관행적으로 자료를 삭제해 온 것이었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1,800만 원의 무게


회사는 1,800만 원이라는 돈으로 직원을 압박했다. 소송이 걸리면 개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 비용 걱정에, 혹시라도 패소해서 빚더미에 앉을까 봐 두려움에 떤다. 회사는 바로 그 공포를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의뢰인의 억울함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우리 법인의 담당 변호사들과 직원들은 회사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첫째, 의뢰인은 회사의 지시대로 협업 툴을 통해 업무를 공유했다는 점. 둘째, 자료가 사라진 것은 회사의 운영 방침(관리자의 삭제) 때문이지 의뢰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셋째, 회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의뢰인이 퇴사한 후에도 회사 운영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고, 회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가 마비되었는지조차 입증하지 못했다.





진실이 이긴다는 믿음


싸움은 1년 넘게 이어졌고, 긴 기다림 끝에 법원은 회사의 청구를 기각하며,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퇴사자손해배상방어.png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분실했다는 산출물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명시했다. 또한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담당자 교체 과정에서 업무를 다시 파악하는 것은 통상적인 업무이므로 이를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회사의 주장은 그저 주장일 뿐,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판결문.png 해당 사건 판결문 중 발췌





소송이 끝난 뒤 남는 것


승소 후, 우리는 의뢰인이 지출했던 변호사 비용까지 상대방에게 일부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금전적인 승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뢰인이 잃어버릴 뻔했던 '자존감'을 되찾아주는 일이었다. 성실히 일했던 2년 6개월의 시간이 무책임으로 매도당하지 않게 된 것, 그것이 진짜 승리였다.


법은 때로 차갑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법이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도구가 될 때 나는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거창한 정의를 외치지 않더라도, 내 앞에 앉은 의뢰인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회사의 부당한 처사나 억지 소송으로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웅크리고 있지 마라. 부당함에 침묵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누군가 당신의 억울함을 알아서 풀어주지도 않는다.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다투어 쟁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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