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더 현명하게 믿어야 한다

투자 사기로 1,800만 원을 잃고 되찾은 그녀의 이야기

by 대표변호사 이환권


변호사로 살아오며 수많은 사기 사건을 봐왔다. 처음엔 분노했고, 그다음엔 안타까워했고, 지금은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기꾼은 왜 사람을 속이는가. 피해자는 왜 속는가. 그 둘 사이에는 믿음이라는 이름의 간극이 있다. 사기꾼은 그 믿음을 이용하고, 피해자는 그 믿음 때문에 무너진다.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던 그녀의 사연도 그랬다.





'회장님'이라는 덫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대출금을 갚아나가던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손님으로 온 장 씨를 알게 되었다. 장 씨는 자신을 어느 기업의 회장이라 칭하며 재력을 과시했다. 그는 그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교묘하게 접근했다.


"나한테 돈을 빌려주면 투자해서 큰돈을 벌게 해 줄게. 이제 이런 고된 일은 안 해도 돼."


그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했다. 1,800만 원을 빌려주면 자신이 1,200만 원을 보태 총 3,000만 원을 투자하고, 매달 1,000만 원씩 수익을 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매달 1,000만 원? 두 달이면 수익이 원금을 뛰어넘는다. 세상 어디에 그런 투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사기꾼의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고, 피해자는 언제나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희망 앞에서는 합리성이 흐려지고, 절박함 앞에서는 의심이 무뎌진다.


그녀가 그 남자를 믿은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35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500만 원으로 돌려주며 자신의 '투자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신뢰를 쌓아 더 큰돈을 넣게 만드는 수법. 투자 사기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방식이다.


이 정교한 연출에 그녀는 결국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해 총 1,800만 원을 그가 지정한 계좌로 보냈다.





부족한 증거


하지만 돈을 보낸 뒤 장 씨의 태도는 돌변했다. 약속한 수익금은커녕 전화조차 피하기 시작했다. 15일 안에 갚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고, 출금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미적거림뿐이었다.


그녀가 나를 찾아왔을 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회사의 겸업금지 조항 때문에 자신의 아르바이트 사실이 직장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장 씨와 주고받은 연락 내용을 수시로 삭제해 버린 상태였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직접 증거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직접적인 대화 기록이 없다면, 흩어진 정황들을 꿰어 하나의 진실을 만들어내야 했다.





고소장을 쓰며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할수록 고소장은 법리적으로 더 치밀해야 한다. 나는 장 씨의 행위를 단순히 돈을 갚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를 속여 돈을 가로채려 했던 계획된 사기로 규정하고 공략해 나갔다.


우선, 장 씨가 약속한 매월 1,000만 원이라는 수익 자체가 객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망(속임수) 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장 씨가 재력가인 척 연출하며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가짜)로 초대해 안심시킨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사기죄의 주관적 고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수사기관에 강력한 수사 요청을 덧붙였다.


실체 확인: 장 씨가 회장으로 있다는 주식회사 OOOO 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의 직함이 허위는 아닌지 확인을 요청했다.

자금 흐름 추적: 그녀가 돈을 보낸 A 씨 명의의 계좌에 대해 금융거래정보조회를 신청했다. 이를 통해 장 씨와 A 씨가 공모하여 다른 피해자들의 돈으로 돌려 막기를 하는 소위 폰지사기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처럼 고소장에 장 씨의 사회적 지위와 자금 세탁 정황을 압박하는 내용을 담아, 수사기관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함과 동시에 장 씨 스스로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느끼게 했다.





기적처럼 돌아온 전재산


사기 사건은 대부분 피해 회복이 어렵다. 피고인이 이미 돈을 다 써버렸거나, 소재가 불명이거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같은 수법을 써서 채무가 과다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도 형사처벌은 가능할지 몰라도, 돈을 전액 돌려받기는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고소인 조사 입회를 불과 몇 시간 앞둔 당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에 압박을 느낀 장 씨가 그녀의 계좌로 피해 금액 1,800만 원 전액을 이체한 것이다. 빈틈없는 고소장과 강력한 수사 요청이 그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결과였다.


사건은 그녀가 피해금을 모두 돌려받고 고소 취하서를 제출하며 원만하게 종결되었다. 전액 회수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안도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비로소 변호사로서의 소명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고소취하서.png




장 씨는 왜 돈을 돌려줬을까


사건을 종결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왜 피고소인은 고소 입회 당일에 돈을 돌려준 걸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형사처벌이 두려웠을 것이다. 사기죄는 원래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였다. 하지만 2025년 12월 23일 자로 형법이 일부개정되어 처벌 수위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두 배 이상 강화되었다.


한창 언론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보도하던 시기였으니, 그가 지레 겁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수사 과정에서 다른 범죄가 드러날 것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은 대부분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다. 한 명이 고소하면 줄줄이 다른 피해자들도 나타난다.


셋째, 그래도 양심이 조금은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이건 내가 변호사로서 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 인간으로서 믿고 싶은 희망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악한 순간과 선한 순간을 오간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돌이킬 기회를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믿음에 대하여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나는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기꾼은 믿음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믿지 말아야 하는가. 의심하고, 경계하고, 모든 관계를 계약서로 묶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믿음 없이는 인간관계도, 사회도, 사랑도 불가능하다. 믿음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현명하게 믿는 것이다.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근거 있는 신뢰를 하는 것. 그리고 만약 배신당했을 때, 자책 속에 갇히지 않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래서 나는 의뢰인들에게 말한다.


후회 대신 행동을.

침묵 대신 목소리를.

체념 대신 대응을.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1644-9360

카카오톡 문의(클릭)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세대출 불가 시 계약금 반환 특약을 무시한 집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