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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Dec 23. 2020

엄마, 산타는 무슨 말 써요?

우리 집 산타

"산타는~ 없~다~"

교실 가득 메운 개구쟁이 녀석의 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산타를 믿었을까? 우리 집 산타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꽤 치밀했다.


우리 집 현관문엔 구멍이 있었다. 더러는 우유 구멍, 누구는 신문 구멍이라고도 했다. 엄마가 외출할 때면 그 안에 열쇠가 있었다. 왼손은 구멍 뚜껑이 닫히지 않게 잡고, 오른손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열쇠를 찾았다. 가끔 왼손을 일찍 빼 손등을 부딪히는 날엔 빨갛게 멍이 들기도 했지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도로시가 되어본다. 따뜻한 햇볕이 가득한 오즈의 나라처럼, 현관에 놓인 신발 사이로 한 움큼 햇살이 쏟아진다. 이참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되어본다. 어렴풋이 보이는 식탁 다리와 냉장고 밑동이 우리 집을 꽉 채운다. 구멍으로 본 우리 집은 동화 속 그림 같았다.   



12월 24일, 밖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 가족은 저녁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목욕을 하고 곧장 따뜻한 이불로 들어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산타가 온다는 12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산타할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머리맡으로 들어온 햇빛이 야속해 눈물이 났다. 아빠, 엄마, 동생은 아직 자고 있었다. 털레털레 거실로 나갔다. 거실까지 환히 찾아온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미워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와, 선물이야!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갔나 봐!'


믿을 수 없었다. 잠들었을 때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녀간 사실이. 선물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 내가 여닫던 현관 구멍을 산타할아버지 열다는 사실이. 맨발로 달려가 문을 열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선물을 무한 감상한 뒤에야 가지런히 놓인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는 무슨 말 써?'

'영어지.'   

'아, 그러면 이게 산타할아버지 나라에서 쓰는 말이구나. 엄마가 읽어줘.'

'Merry christmas!'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다가  편지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3학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치밀했던 산타가, 어느덧 부모가 된 나에겐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아빠!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영어를 사용하면, 제 이름부터 영어로 쓰셨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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