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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Dec 22. 2020

생일 축하, 어디까지 받아봤니?

그리운 선물

'언냐 집주소 불러봐봐ㅋㅋ'

한참을 고민하다 '괜찮다ㅋㅋ'하고 맞받아쳤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대신 훅 들어온 그녀의 카톡이 꽤 당돌했다. 우린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내가 안 괜찮다, 과자 쪼가리 하나 보낼 거라는 말에, 아니면 돌려보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마카롱과 따뜻한 커피가 놓여있었다. 이미 가버렸는지 엘리베이터는 1층. 그냥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딘데?' 격양된 내 목소리와 반대로 전화기 너머 그녀는 차분해도 너무~ 차분했다. '나는 학교지.' 알고 보니 우리 집 근처 카페로 배달을 시킨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놀랐던지... 이 상황이 재밌는지 그녀는 연신 깔깔대며 '촌스럽기는'하고 또 받아친다. 내가 졌다.


세상 참 좋아졌다. 아침부터 단체 카톡방에는 총대를 메고 내 생일을 알린 사람을 시작으로 축하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 000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라는 알림과 함께 선물도 받았다. 생일에 빠질 수 없는 케이크부터 겨울 필수품 핸드크림, 치킨, 상품권 등.



어릴 적, 12월이 되면 친구들에게 내 생일을 홍보했다.

12를 거꾸로 하면? 21!

오~ 맞아. 12월 21일! 내 생일이야. 기억하기 쉽지?


돌아보면 어떻게 저런 말을 셀프로 했을까 싶지만, 그땐 그랬다. 서로의 생일이 궁금했고 부끄럼 없이 말했다. 친구의 생일 파티 초대을 받으면 기뻤다.  문구점에서 흥얼대며 선물을 고르던 기분, 근사한 옷을 입고 친구 집으로 가던 설레는 걸음, 내가 선물한 포장을 뜯으며 친구가 환하게 웃던 모습.


중학생이 되면서 생일 파티는 집 밖, 고등학교 때는 박스 안에 일용한 먹거리를 채워주는 것으로 선물을 대신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끼리 십시일반 모아 당사자가 원하는 선물을 사줬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생일의 설렘은 줄어들었다.  



남편이 사 온 신상 케이크로 생일 축하 노래만 다섯 번을 이어 불렀다. 참고로 우리 집 아이의 애창곡이 생일 축하 노래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과 옷에 밥풀이 덕지덕지 묻은 지금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끓인 미역국도 잊은 채, 선물 받은 치킨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많은 축하와 선물을 받은 하루였다. 기뻤다. 정말 기뻤다.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집에서 맛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남편이 힘들게 모은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 줄 누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어릴 적 아빠가 수줍게 건네던 형광펜 4자루. 3000원도 채 되지 않은 그 선물이 떠오르는 건 무엇이 그리운 걸까?




돌아보면 그땐 내 생일이 한참 지났을 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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