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조언에 따른 선을 넘지 않는 삶"
그날은 무언가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화의 흐름이 어긋난 것 같았고,
이대로 두면 오해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설명을 덧붙이고,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침묵은 문제를 키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이상하게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지금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답이 또렷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불편함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말하려는 이유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내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그래서 그날은 멈췄다.
이해한 척도 하지 않았고,
결론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데서 생각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알지 못한 채로 밀어붙이지 말라는 경계에 가깝다.
말을 멈추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화의 흐름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의 속도도 서두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날의 문제는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불안해서 급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그 불안이 말이 되어
관계를 더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자리를 인정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판단하지 않아도 되었고,
설득하지 않아도 되었다.
관계는 이기고 지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견디는 자리라는 걸
그날 다시 배웠다.
멈춘다고 해서 관계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는 힘이 빠지자
대화가 부드러워졌다.
그날 이후 나는 묻는다.
지금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가.
오늘은
멈췄기 때문에 편해진 순간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자리에 머문 덕분에
관계가 덜 흔들리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돌아본다.
모른다는 멈춤은 무지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하나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말과 사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선을 넘지 않는 삶 1」**에서
따로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