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 낙조의 시간

" 잠시 멈춰 서서 하루의 낙조를 바라봅니다."

by 장재덕

** 이번 글**은 쉬어가는 기록입니다.

빠르게 달려온 시간 끝에서,

잠시 멈춰 서서,

하루의 낙조를 바라봅니다.


낙조의 시간


젊은 시절의 나는 거의 쉬지 않고 살았다.
맡은 일은 끝을 봐야 했고,

중간에서 내려오는 선택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인생에 배정된 시간을

한 번에 밀어 넣어 살아온 셈이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몰입과 책임은 성격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었다.

그 시간들은 분명 많은 성과를 남겼지만,

동시에 몸과 마음을 깊이 소모시켰다.


이제 와서 그 흔적을 마주하며,

이 나이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하나의 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에는 보상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애쓴 만큼 돌려받는 정산도 없고,

견뎌낸 시간에 대한 보답도 없다.

한때는 많은 것을 이루고 쥐었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들

역시 잠시 맡겨졌던 것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공수래공수거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흐름 속에서,

잠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그 짐은 개인의 욕망이라기보다,

그 시대와 역할이 요구한 몫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오랫동안 사회의 전면에 있었다.


앞에 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을 지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 있다.

더 이상 증명할 것도,

주장할 것도 없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끌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는 하루의 끝에 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낙조는 사라짐이지만 무너짐은 아니다.

하루의 빛을 모두 써낸 뒤

다음을 위해 조용히 자리를 비워주는 장면이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내 삶과 닮아 있다.


황혼은 끝이 아니라 졸업이라는 말을

이제는 설명 없이도 이해한다.

더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다음 세대가 시작할 수 있도록 무대를 넘겨주고,

자신은 뒤편으로 물러나는 시간이다.


엔딩은 비극이 아니라 이행이며,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태어날 때는 울음으로 시작했지만,

인생을 졸업할 즈음에는 미소와 약간의 미련을 함께 품은 채,

불꽃이 사그라지듯 낙조처럼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

그 미련조차도 집착이 아니라,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일 것이다.


새해가 와도 새해라는 감각은 크지 않다.

달력이 바뀐다고 해서 마음이 새로워지지도 않고,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할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이 무감각 속에서 오히려 인생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고르게 지나가는지를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허무가 아니다.

의미를 계속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에 가깝다.

더 이상 미래를 설계하지 않아도 되고,

다짐으로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아도 괜찮아진 자리다.


이제는 더 쌓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얼마나 덜 소모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며,

생각이 찾아와도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삶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평가하려 들지 않는 태도 속에서 오히려 평온이 생긴다.

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음을 받아들인다.

붙잡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하루는 그렇게 스스로 마무리된다.


인생 역시 다르지 않다.

충분히 쓰였고,

이제는 조용히 넘어가도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하다.


**사유(思惟)의 겹**


이 감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인간의 인식이기도 하다.

어떤 철학자는 인생에서 우리 손에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비로소 평온에 이른다고 말했다.

애써 쥐려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인간의 삶을 덧없는 연속으로 보며,

오늘을 온전히 마치고 내일을 과도하게,

기대하지 않는 것을 성숙의 징표로 여겼다.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올 일에 과잉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는,

오래 살아본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절제다.

끝을 의식하는 순간,

삶은 초조함을 잃고 오히려 단단해진다는 말도 있다.

더 얻으려 하지 않고,

더 증명하려 하지 않을 때 고통은 자연히 줄어든다.

덜 쓰는 삶이 평온에 가까워지는 이유다.


이런 생각들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같다.

보상은 없고,

의미는 강요할 수 없으며,

인생은 그저 지나간다.

다만 그 지나감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게 된다.

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치는 일.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
철학은 결국 그 말을 오래 돌려 표현해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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