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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iricbobo Oct 31. 2016

편견에 대하여

나는 편견 덩어리다. 21세기 살며 젊은 지성임을 자청하고 추구함에도 특정 인종은 타 인종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고 특정 성별은 타 성별에 비해 감정적이라고 믿는 - 그리고 때때로 사람을 그 생김새로 판단하는 - 나는 편견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굳이 이런 의견을 내비치는 이유의 반쯤은 타인이 쉬이 수용하기 힘든 공격적인 주장을 펼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다.)


편견은 때로는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든다.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드레퓌스의 수모'라는 사건이 있다. 프랑스군 참모본부에서 중요한 군사기밀이 독일 대사관으로 유출된 정황을 포착하였고 당시 포병 대위였던 드레퓌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드레퓌스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으며 그 어떤 추측 가능한 범행 동기도 없었지만 단지 해당 계급에서 유일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랐 수차례 수색에도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조사당국은 드레퓌스가 유죄일 뿐 아니라 모든 증거를 완벽히 은닉할 만큼 치밀하기까지 하다고 확신하였다. 심지어는 드레퓌스가 외국어에 능통했고 기억력이 좋았다는 증언들까지 '정황상 증거'로 받아들였다. 반유대인 정서가 팽배했던 당시 프랑스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가톨릭 교회, 보수언론도 일제히 드레퓌스를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전문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은 드레퓌스의 필적이 범인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결론지어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후 정보국 피카트 대령에 의해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고 헝가리 출신 에스테라지 소령을 진범으로 지목되었다. 필적이 정확히 일치하는 등 확정적 증거에도 불구, 군 수뇌부는 증거를 은폐할 뿐 아니라 재판에 회부된 에스테라지를 단 이틀 만에 무죄 석방하였고 해당 의혹이 언론에서도 제기되자 오히려 피카트 대령을 군사기밀 누설죄로 투옥했다. 사건은 1898년 소설가 에밀 졸라가 군부를 비판하는 논설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발표하면서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지식인계가 둘로 나뉘어 격돌하고나서야 드레퓌스는 10년간의 수감생활 끝에 복권되었고 이후 1차 대전에도 참전하는 등 국가에 공헌하였다. 여기까지가 '드레퓌스의 수모' 사건의 주된 내용이다.


이 사건을 보면 참 흥미로운 점이 있다. 어떻게 그리 허무맹랑한 근거로만 뒷받침된 주장을 온 나라가 믿었냐는 점이다. 군 수뇌부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체가 반유대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논리의 타당성보다는 원하는 결론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였다. 즉, '동기적 추론(Motivated Reasoning)'에 빠지고 만 것이다. 동기적 추론의 덫에 걸리면 무의식적 속 동기와 바램, 두려움이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게 되고 특정 정보나 생각을 '내 편'으로 느끼게 된다. 편견에 동화되어 '내 편'인 정보, 생각이 이기길 바라고 그것을 보호하며 확증편향이 시작된다. 이렇게 편견이 편향으로 이어지는 단계가 되면 믿음에 반하는 모든 것을 적대시하게 된다.


내가 편견 덩어리라는 것을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선 '동기적 추론'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편견으로 인한 편향'을 경계하는 사람은 결론이 아닌 논리를 얘기하게 되고 탐구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피카트 대령도 그런 사람이었다. 피카트 대령은 놀랍게도 극렬한 반유대주의자였지만 그 편견이 스스로의 판단능력에 영향을 주도록 놔두지 않았다. 마치 길목을 확인하고 장애물을 파악하며 지형을 그리는 정찰병처럼 그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했다. 유리한 지형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비판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정찰자적 사고(Scout Mindset)'를 지녔던 것이다.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저 그의 행동을 더 존경스럽게 만들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바로 이 정찰자적 사고가 결핍되어 있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 사고하고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자는 개인 이권조차 못 챙기는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 반면 사익에 맞춰 판단 기준을 세우고 논리보다는 결론을 앞세우며 동기적 추론에 매진하는 자는 득세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자연히 전자는 사라졌고 후자는 넘쳐난다. 부족한 근거와 충분한 편견으로 드레퓌스를 단죄했던 프랑스 군부처럼 이제 남은 이들은 우리 사회를 '첩자로만 구성된 군대'로 만들었다.


편견으로 인한 동기적 추론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편견을 용인하는 것이다. 편견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라도 하는 듯 보지 않을 때 더 많이 다가온다. 바라보아 한다. 부정적 선입견까지도 있는 그대로 바라야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지고 독립적인 가치판단이 열리게 되며 이제는 새로운 지점에서 새로운 정의가 시작된다. 하루빨리 그 날이 왔으면 한다. 첩자로만 구성된 군대는 너무 쓸쓸하다.



Reference - [TED] Julia Galef, why you think you're right even if you're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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