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공책

(다시 살아보기)

by 신비아

왜 그렇게 철저하게 버려 버렸을까

해마다 연말이면 버리고 치우고 정리를 한다

필요 없는 내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면서.

특별히 2025년 연말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을

거의 모두 없애버렸다


브런치 쓰기를 시작하면서 써서 모아두었던

모든 글짓기공책과 일기장과 낙서장 그리고

숱한 책을 읽은 후의 독후감 공책 들을

들들 뒤지며 찾고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나의 흔적은 지금 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작년에 전날까지 통화하고 함께 바둑 두고 골프 치던

남편 친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자마자 곧장 떠나버렸다

단 몇 분 안에 끝나버린 목숨줄

그때 생각 했었지.

두 번 다시 쓸 일 없고 들여다보지 않을 거야

그냥 사는 거야. 소장하고 아끼던 많은 책들을 기부하고

옷도 기부하고 살림살이와 기록들은 버리고 또 버렸다

마치 나도 당장 떠나갈 사람처럼.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듯 가라앉았다.

매일 하루 삶의 기억도 버려버렸다

아무것도 기억하거나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잊혀가는 예행연습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써볼까?... 깨어날 수 있을까?

자신감이 텅 비었다. 머리가 텅 비었다. 공책도 텅 비었다.

쓸거리가 없고 생각도 없다.

재활치료처럼 쓰기 연습을 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처럼 새로운 생명을 입혀야지

무채색이던 일상이 생각으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소유도 관심 없고 싶다

이제는 의식을 의식하지 않고 싶다

이제는 자유를 채워봐야겠다

텅 빈 공책을 그냥 나로 채우면서

다시 살기를 시작한다

이제는 진짜 나를 찾아서


Salton Sea i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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