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할 만한 일을 계속하는 것 정도 되겠다. 여기에 흥미라는 조건은 없다. 직업의 성립 요건으로도 윤리성, 경제성, 계속성, 사회성을 꼽을 뿐 개인의 흥미라는 요건은 없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일이어야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가끔 엉뚱한 짓을 하긴 했지만, 나름 모범생의 삶을 살아온 나도 이런 기대에 따라 살아왔다. 삼십 대 중반까지 해외 영업, 영어 강사 등을 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내 유일한 특기인 책상에 오래 앉아있기 신공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내 공무원이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적성에 맞춰” 이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며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직업의 요건도 만족시키며 내 흥미에도 맞는, 나에게 이 이상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사하기로 치면 세상에 내 마음보다 더 간사한 놈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바라던 일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자유”가 그리웠다. 이해 내지는 공감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을 자유, “왜?”라고 마음껏 물을 수 있는 자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자유... 이렇다 보니 ‘나는 애초부터 공무원에는 맞지 않는 인간형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예’라고 대답해 놓고 뒤돌아서는 ‘이걸 왜 해야 하나’ 투덜대며 점점 불평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얼굴에 "근드르즈므르"라고 쓰여있는 듯하다.
늦게나마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하셨던 부모님의 만류도, 일 년만 더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남편의 권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남의 말 안 듣기로는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남은 인생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갑질과 을질에 시달리며 그나마 있던 인류애마저 사라져 가는 경험을 계속 하긴 싫었다. 이렇게 십여 년 간의 공직 경험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내 최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주었고, "행복하게 잘 늙기"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잃었던 꿈과 흥미를 되찾게 해 주었으니 나에게는 정말로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행복하게 잘 늙기 위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