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살 집을 찾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발령이 나면 이삼 년마다 여기저기로 돌아다녀야 하다 보니 “집”이라는 것에 그리 애착이 많지 않았고, 어차피 곧 떠날 거 괜한데 에너지 쓰지 말고 대충 구하자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아파트 위주의 우리나라에서 내게 맞는 좋은 집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잊고 있었다.
“나자추(‘나는 자연인이다’식 삶을 추구하는)”인 아내와 까도남인 남편의 취향을 둘 다 만족시킬만한 집을 예산 범위 내에서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통학 걱정할 애들이 없다는 거 정도. 대출을 받아 족쇄를 하나 늘리는 것도 싫어 그냥 우리가 가진 예산 범위 내에서 적절한 집을 찾아보기로 하고, 귀국한 3월 초부터 집 찾기 전국 투어를 해왔다.
남편과 내가 합의한 조건은 첫째, 단독주택일 것, 둘째, 마당이 있을 것, 셋째, 새벽배송 가능 지역일 것, 넷째, 도보 가능 거리 내 병원, 마트, 다양한 식당, 헬스장이 있을 것. 다섯째, 차량 30분 거리 내 문화시설이 있을 것. 엄청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난 첫째, 둘째 조건만 만족하면 전국 어디든 상관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조건은 남편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주위에서는 ‘같은 돈이면 아파트로 가야지 왜 단독주택이냐’에서부터 ‘주택은 관리가 힘들어 골병든다’까지 다양한 이유로 우리가 결정을 번복하도록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난 원래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하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아파트 가격이 또 고공행진해서 벼락 거지가 되든, 그런 것들은 우리가 새로운 정착지를 정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내 공간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찾은 집은 산 중턱쯤에 있는 주택이다. 마당이 좀 더 넓으면 좋았겠지만, 계속 보다 보니 잔디 뽑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관리하기에는 딱 좋은 넓이인 듯도 하다. 마당에서 빨래 말리고, 비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보며 멍 때리고, 새소리, 개구리소리,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 들으며 살고 싶은 내 로망을 채우기엔 충분한 넓이이다. 밤이면 아래쪽 도시의 야경이 나름 휘황찬란하다. 뉴욕 같은 도시를 그리워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며 ‘뉴저지에서 맨해튼 야경 보는 기분이네’하며 와인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준비되어 있다.
이제 이사한 지 이주 남짓. 정리에 잼병인 내가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늘린 짐을 정리하려면 올해가 다 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