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은행놀이 명륜당

by 재홍

몇백 년 전, 명륜당 마당의 서걱거리는 모래 바닥 위에는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유생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큼지막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은행나무의 역사를 방증하듯 엄청난 풍재를 자랑합니다. 품에 안으려면 족히 20명의 사람이 손을 벌려야 할 것 같은 나무의 둘레는 그들이 버텨온 시간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 세월 동안 창창한 노란빛의 나무들은 때로는 엄격한 스승처럼, 때로는 인자한 삼촌처럼 학생들을 굽어보았을 것입니다.


특히 가을이 깊어지면 명륜당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정에 달합니다. 500년 세월을 품은 은행나무가 마당 전체를 금빛으로 물들입니다. 바람이 슬쩍 결을 따라 불어오기라도 하면, 노란 이파리들이 공중을 유영하며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림같이 은행이 만발한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은행나무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본래 이 나무들은 열매를 맺는 암나무였다고 합니다. 가을철만 되면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 열매가 마당 전체에 흩뿌려져 성균관 유생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지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유생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나무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자, 마침내 하늘이 응답하듯 나무가 수나무로 바뀌어 더 이상 열매가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사로 나무의 성별이 바뀔 리 만무하지만, 선조들의 지극정성의 노력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명륜당에서 냄새 없는 쾌적한 은행놀이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