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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극만 보러 오지 마세요:>

by 재홍

‘대학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연극이다. 찾아보니 서울시 전체 연극의 30%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주말의 대학로는 공연을 알리는 외침과 소극장 앞 대기줄, 반짝이는 포장마차의 전구들로 가득하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 요즘은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의 입김만으로도 거리가 뽀얗다.


대학로가 연극 공연의 메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시절부터 이어진 학생문화의 뿌리 위에, 1970~80년대 소극장들이 밀집하며 창작공연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1년 아르코 예술극장 같은 공공극장의 설립은 이 일대를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굳혔다. 대학로는 한국 연극 생태계의 심장 같은 곳이 되어, 새로운 작품이 가장 먼저 태어나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ChatGPT가 가르쳐주었다.)


친구들은 혜화에 사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연극 이야기를 꺼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같은 자신이 재밌게 봤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이 근처에 살면서 연극을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데도 말이다. 마치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반찬처럼 존재만 알고 지나친 것 같다.


사실 대학로의 매력은 연극뿐만이 아니다. 골목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카페와 식당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새로 문을 연 빵집들과 소품샵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어 산책하는 재미를 더한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마로니에공원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고,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서울 도심에서 보기 드문 개방감을 준다. 한성대 방향으로 올라가면 성북천이 흐르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근처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야장을 즐길 수 있다.

202205181638344791.jpg 낙산공원


아르코 미술관도 대학로의 자랑 중 하나다. 일단 관람료가 무료인 데다 체험형 전시가 많은 편이라, 미술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술관 뒤편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이화벽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화마을이라는 이름 때문에 화려한 그림이 가득할 거라 예상하지만, 오래된 집들과 벽과 계단 사이에 그려진 벽화들은 소박하다. 그것들은 새로 그려지기도 하고 흐릿하게 남아 있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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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벽화마을


그리고 대학로는 엄청난 궁세권이기도 하다. 서울대병원 뒤쪽으로 나가면 창경궁이 있고, 조금만 더 걸으면 창덕궁과 종묘가 모습을 드러낸다. 버스를 타면 경복궁도 금방 닿는다. 특히 가을에는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창경궁–율곡터널–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을 강력 추천한다. 오른편의 홍화문과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만드는 풍경은 몇 번을 봐도 늘 새롭다. 율곡터널을 지나면 SNS로 유명해진 서순라길이 왼편으로 나타나고, 짧은 골목 사이에 서점과 공방과 맛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대학로에서 자주 가는 카페와 식당을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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