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감옥에 갇혀서는

by 재홍

추위는 참 좋은 핑계다.

특히 요사이에 눈이 펑펑 내려 거리에 쌓였기에 소위 '집콕' 하기에는 완벽한 환경이 되었다. 푹푹 쌓인 눈에 빙판길은 다치기 십상이라는 말을 떵떵거리면서 오늘도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다. 온돌 대신 바닥의 온도를 책임지는 전기장판의 위대함에 힘입어 지글지글 등을 지지면 잠이 솔솔 온다.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본다. 옆 책상에 좋아하는 과자를 쌓아 놓고, 귤도 하나씩 조물조물 까먹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체육복을 차려입고 밖엘 나갔다. 귀까지 덮는 모자와 치렁치렁한 목도리, 무릎까지 오는 롱 패딩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 사이에는 나는 몇 세기 뒤떨어진 병사 같다. 바람이 잘 통하라고 뚫어놓은 러닝화 앞창의 구멍들이 원망스러워진다. 오들오들 떨며 출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뺨과 귀를 스치며 윽박지른다. 영하의 날씨에 너는 뭣하러 나왔냐고, 얼른 패배의 신호를 느끼며 돌아가라고. 땅을 구르는 것을 포기하고 지나가는 171 버스를 잡아 타는 상상을 한다. 도중에 땀냄새를 풍기며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뛰는 사람의 치욕이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바람에게 소리치듯이 숨을 내뱉는다.


경복궁을 돈다. 가을에는 집 드나들 듯이 수월했던 오르막길은 험난한 눈길이 되어 있다. 숨이 차올라 급격히 느려진다. 성곽 옆의 눈부신 가을의 단풍은 온 데 간데없다. 미끌미끌해진 길을 조심해서 내밟는다. 내려가는 길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홀가분함에 속도를 내게 된다. 헉헉대며 목표한 5km를 마저 채우고 걷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밖에서 가져온 차가운 기운이 담긴 몸에 따뜻한 물을 맞으니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고거 좀 뛰었다고 얼마나 상쾌한지. 슬리퍼를 끌고 집 앞 마트에 갔다. 두부를 사 와서 찌개를 해 먹었다. 부글대며 끓는 국물을 뜨거울 때 얼른 건져 후후 불어 입 안으로 가져갔다. 양념을 머금은 탱글탱글한 두부를 밥에다 올려다 먹으니 제법 맛나다.


계속 반복될 겨울을 잘 보내려면

따뜻한 감옥을 탈옥해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