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사히 악마가 되었다

by 재홍

대학로에는 제 일터도 있습니다. 바로 서울대학교병원인데요,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병원입니다. 이 병원은 오래됐습니다. 제중원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해서 대한의원이라는 이름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하죠. 병원 안쪽에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고, 가장 유명한 시계탑도 있습니다. 화창한 하늘에 우뚝 솟은 시계탑은 제법 웅장해 보입니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게 만듭니다. 아, 입사 1000일 사진도 이 앞에서 찍었었네요. 저는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생각합니다. 병원은 악마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


사람은 어디에서 가장 많이 죽을까요? 아시겠지만 정답은 병원입니다. 2024년 통계청 기준으로 전체 사망자의 75%가 병원에서 돌아가십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절절하고 아련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든, 어제 차에 치인 사람이든, 검사 결과가 아주 괜찮든가 상상도 못하게 나쁘던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기관삽관했던 환자 분이 하루만에 걸으시는가 하면, 중환자실에 있는 모든 기계를 사용해도 살아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번호표가 없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활력 징후가 조금만 떨어져도, 검사 결과가 약간만 불안정해도 벌벌 떨었습니다.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며 심장이 빨리 뛰는 걸 자각했습니다. 출근 전 어떤 환자를 보게 될까 걱정했습니다. 퇴근해서도 그 환자의 안부를 궁금해했습니다. 아픈 건 괜찮아지셨을까, 혈압은 올랐을까, 투석을 아직 하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저는 덤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중한 환자를 봐도 떨리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환자 분이 돌아가시면 사후 처치, 사망진단서 발급, 장례식장 위치를 떠올리는 사무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악마가 되었습니다. 병원 위 구름에 걸터 앉아 낄낄대는 악마들은 명부에 적힌 사람들을 데려가고 숫자를 셉니다. 그 모든 절차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제가 보입니다. 정수리를 만지작거립니다. 돋아난 뿔을 느끼고도 내색 않는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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