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했는데, 그는 빛나는 도시 분위기와 달리 개인적으로는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3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불행한 천재 슈베르트. 그는 죽는 순간까지 가난했고 굶주림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천재적인 음악성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의 가곡은 당시 인정받지 못했고, 교사생활로 힘든 생계를 이어나갔다. 유명한 작곡가처럼 한가로운 연주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던 그에게 당대를 주름잡던 유명한 성악가 미하엘 포글이 오스트리아 북부 여행을 제안한다.
난생처음 경험한 여행에서 슈베르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아름다운 강과 눈부신 햇살은 그의 감성을 자극했고 악상은 샘물처럼 솟았다. ‘송어’가 대표적인 여행의 산물이다. 그는 6개월간의 그 여행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만약 슈베르트가 불행한 현실을 한탄하며 작은 방에서 악보만 보고 있었다면 그의 아름다운 가곡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유럽에 가 본 적이 없다. 만약 어릴 때 파리에서 에펠탑에 올랐다면, 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인생의 결정적 영향은 아닐 수 있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쏙 빼닮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욕심내진 않으려 한다. 방향이 옳다면 천천히 가도 괜찮다. 우리가 아이에게 남길 것은 금전적 재산이 아닌 함께 한 추억이다.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흡수하는 아이에게 영양이 가득한 기억을 저축해 주고 싶다. 단단한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을 때 탱글탱글하게 여문 열매를 맺을 수 있게끔.
우리 가족에게 유럽 여행은 큰 행운이지만, 매일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짧은 여행이 아닌 긴 여행을 하다 보면 분명 힘들고 지칠 것이며, 즐거움 사이로 짜증 나는 일도 동전의 양면처럼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겪어내면,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단단해 질거라 믿어본다.
10년 이상 같이 살았다고 부부간에 전부 알지는 못한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라고 해도 다 알 수 없다. 밖으로는 세상을, 안으로는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이 바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