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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Aug 03. 2024

감정의 세계 #12

두번째 신과 세번째 신

"내가 너희를 안내해줄게."

우리가 마주한 첫번째 신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아니 친절을 가장한 책임 회피일지도.

그래도 첫번째 신이 빛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준 덕분에 어럽지 않게 두번째 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신이시여! 당신은 지금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계시나요?"

우리는 두번째 신 앞에 당도했을때, 망설임없이 원성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신은 대답했다.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럼 왜 모든 슬픔의 잠을 깨우신건가요?"

"슬픔의 잠? 아니 그건 오해야. 그들의 잠을 깨운건 내가 아니야! 그건 우리 의식의 세계를 관장하는 신들 중에서 가장 안쪽에 살고 있는 고대의 신이 한짓이야. 난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왜 고대의 신이 그들을 모두 깨운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난 그들을 막기 위해서 부랴부랴 감정의 나무를 봉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모든 감정의 나무들은 폭발해버렸을걸. 그랬다면 이 곳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삭막한 곳이 되어버리겠지. 그러니 너희는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네! 그건 그렇지만, 감정의 나무를 봉인한다고 문제가 해결된건 아니지 않나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거죠? 당신은 '슬픔'이 다시 잠들수만 있다면, 감정의 나무에 건 봉인을 해제할 건가요?"

"그들만 다시 잠재울수 있다면 난 바로 봉인을 해제할거야! 하지만 그건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고대의 신이 내린 주문은 그렇게 쉽게 풀릴 수 있는게 아니야! 그들은 감정의 나무가 터져나가기 전에는 절대 다시 잠들지 않을걸!"

"제가 설득해볼게요. 제가 고대의 신을 만나서 이야기해볼게요!"

"하아...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건 불가능해. 너 같은 하찮은 미생물이 고대의 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수 있다고?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어!"

"왜죠? 왜 불가능하다고 하는거죠?"

"고대의 신은 말을 할 수 없어. 듣지도 못하지. 왜 그들의 고대의 신인지 알아? 그들은 너희같은 미생물에 가깝다고. 지금 이 상황이 누가 제일 답답한지 알아? 그건 바로 '나'라고! 난 이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어! 근데 저 고대의 신이 벌인 일때문에 그것조차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난번에는 나까지 공격하는 바람에 잠시 심장이 멈추기까지 했다고!"

"심장이 멈춘 일을 알고 계시군요! 제가 아는 슬픔이 있는데 그가 말했어요. 심장에서 전해온 특별한 진동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진동은 아주 잠시동안 심장이 멈춘 뒤에 찾아왔다고 했어요."

"맞아. 심장을 계속 뛰기 하는건 바로 내 역할이지. 하지만 나도 그 순간은 어쩔 수 없었다고. 저 안쪽에 있는 고대의 신이 보낸 강렬한 신호때문에 내가 심장에게 전달하는 신호가 순간적으로 먹통이 되어버렸지. 내가 보낸 신호를 받지 못하면 심장은 멈춰버린다고."

"그럼 그 다음에 이어진 진동은 뭐였나요?"

"그건 고대의 신이 보낸 강렬한 신호였을거야. 고대의 신은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지만, 반대로 누구에게나 영향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 그 만의 방식으로. 그게 바로 진동이야. 고대의 신이 내보낸 강렬한 신호 때문에 나와 심장의 교신이 잠시 끊겼고, 그 다음 몇 초간 고대의 신이 내보낸 강렬한 진동이 있었어. 그건 심장까지 전달되었을거야. 심장은 그 신호를 증폭시키는 수단이었겠지. 심장만큼 강렬하게 움직이는 것은 없으니깐. 그래서 슬픔은 그 신호가 심장에서 보낸 신호라고 생각했을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건 고대의 신이 보낸 신호야. 그들이 슬픔을 잠에서 깨웠어."

"왜 그런 짓을 한거죠? 이해할 수 없어요. 고대의 신은 이 아이를 망치고 싶은건가요? 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건가요?"

"그럴리가.. 아무도 그와 대화할 수 없지만, 그는 고대의 신이라고! 몇 억년의 세월을 이어온 아주 질긴 작자란 말이야! 그가 그런 일을 할리는 없어. 아마도 그만 알고 있는 뜻이 있겠지!"

"젠장!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럼 모두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건가요? 지금 이건 비상상황이에요. 이러다가 이 아이가 죽고 우리 모두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요!"

"그래! 니가 답답해 하는건 이해해. 하지만, 방법이 없다고! 고대의 신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고! 니가 아무리 그의 앞에서 소리쳐 애원해도 그는 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그냥 그의 뜻을 따라야해! 그건 내가 게을러서도 아니고 니가 부족해서도 아니야! 그냥 그렇게 정해진거라고. 제발 이 상황을 받아들여!"

"아니요! 방법이 있어요."

"방법? 무슨 방법?"

"고대의 신과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적어도 당신과는 가능하죠. 감정의 나무에 걸린 봉인을 풀어주세요!"

"봉인을 풀라고?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생각하고 지금 말하고 있는거냐고!"

"네 알아요. 아주 잘 알죠. 모든 슬픔들이 감정의 나무로 향할거에요. 그리고 그들이 한번에 슬픔의 나무에 십수년 동안 저장해둔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다면 아마 모든 감정의 나무가 폭발할 정도의 위력이 되겠죠. 혹시 몇몇 나무는 살아남는다 해도 한번에 밀어닥친 슬픔의 에너지의 영향으로 서서히 말라죽을거에요. 모든 감정의 나무들이 사라지겠죠. 그럼 우리는 그저 음식물만 분해하는 쓸모없는 미생물이 되어버릴거고요. 더 이상 나는 '기쁨'이 아닌거죠!"

"잘도 아시는군! 그런데 지금 그런 미친 소릴 왜 하는거야?"

"당신이 말했잖아요! 고대의 신에게는 분명 뜻이 있을거라고!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뜻이 나쁜 뜻은 아닐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왜 당신은 고대의 신의 뜻을 거역한건가요?"

"내가? 내가 무슨?"

"당신은 감정의 나무를 봉인했어요. 그래서 슬픔이 감정의 나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죠. 왜 고대의 신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는 건가요? 지금 그를 믿지 못하고 따르지 않은건 바로 당신 아닌가요?"


내가 만난 두번째 신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나의 말을 전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 듣고보니 니 말이 맞군. 내가 그 분의 뜻을 거역하고 지금 상황을 억지로 유지하려고 했어."

"그렇다면 감정의 봉인을 풀어주세요. 고대의 신이 미치지 않았다면 당신이나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거에요."

"그래! 내가 경솔했어. 그 분을 믿었어야 했는데... 니 말대로 봉인은 해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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