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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Aug 03. 2024

감정의 세계 #11

첫번째 '신'

'신의 계시라니! 멍청한 것들! 지능이란게 있기는 한거야?'

'슬픔'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분통을 터트리며, 푸념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난 어디에서 온거지? 난 왜 존재하는가?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수많은 일생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이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무엇 하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은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창조했다. 그리고 신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는척 한다. 심장은 끊임없이 뛴다. 몸 속의 음식물은 분해되고 소모된다. 기쁨의 감정은 이것들을 활성화하고, 반대로 슬픔의 감정은 이 모든 것들을 억누른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의 조화를 통해 우리는 안정된 삶을 영위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 우리는 '왜?' 그런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신'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다.

신의 영역에 이유는 없다.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그러한 것이지만, 놀랍도록 조화롭다. 적어도 이 작은 우주 안에서는 그러하다. 이 작은 우주안에서 그들은 분명 '신'이라고 불릴만하다. 


'신이시여!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신건가요?'

  

신에게로 향하는 길은 꽤 긴 여정이었다. 우리는 심장을 벗어나 근처에 있는 척수를 올라타고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척수는 온갖 신경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혀 있어서 그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신'의 영역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기나긴 어둠의 터널 같은 길을 지나 수많은 빛들이 섬광처럼 터져나오는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신'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의 영역은 빛의 세계였다. 수많은 빛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빠르게 지나갔고, 그들은 한번에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뿜다가 순식간에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하곤 했다. 우리는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고 있던 우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너희 같은 미생물들이 올만한 곳이 아닌데..."

"그 쪽은 신이시신가요? 저희는 장 속에 살고 있는 '기쁨'입니다. 저희를 처음 보시겠지만, 저희는 항상 장 속에서 기쁨의 나무를 통해 당신들께 '기쁨'을 선사했어요. 정말 쌔빠지게 일해서 모은 에너지를 당신들께 드린 것이라고요. 그러니 저희도 여기에 올 자격은 되지 않나요?"

"그래? 너가 바로 그 '기쁨'이구나. 우린 항상 너희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근데 왜 장 속에 있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온거야?"

"지금 모든 감정의 나무들이 봉인된 건 아시나요? 그리고 모든 슬픔이 잠에서 깨어난 것도요. 이 해괴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당신들께 이유를 물으려 왔어요."

"이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온 것이라면, 잘못 찾아왔어. 사실은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상태거든.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어. 모든게 엉망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이 없어. 왜 이렇게 엉망이 된건지도 궁금하고 말이야. 아무튼 나도 굉장히 짜증나는 상태라고."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가야되죠?"

"아마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될거야?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너희는 점점 위험해질거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빛도 희미해질 것이고, 너희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이들도 많을거야. 사실 내 안쪽에 있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해. 그들의 생각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 우리는 모두 신이리고 불리우기는 하지만, 아주 다른 존재들이거든. 그러니 부디 이 엿같은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말아줘. 다 저 속에 있는 것들이 저지른 일들이니깐. 그래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고대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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