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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Aug 03. 2024

감정의 세계 #10

신의 영역

기나긴 '슬픔'의 행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던 중 난 낯익은 '슬픔'을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슬픔이었다. 


'그래! 저 아이에게 물어보면 될거야!'


난 내 옆의 꼬맹이 손을 단단히 붙들어잡고 행렬 사이를 헤짚으며 소리쳤다.


"이봐! 나야 나! 기억 못하겠어? 우리 처음 아이의 속에 들어왔을 때 만났잖아!"

나의 외침에 낯익은 슬픔이 반응했다.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섰고, 그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다. 난 더욱 잽싸게 무리 속을 파고들어 낯익은 슬픔에게 접근했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다들 잠에서 깨버린거지? 너희는 원래 이러지 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야?"

"글세. 사실 나도 심장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깨어난 거라서 좀 정신이 없긴 한데, 분명 강한 진동이 느껴졌어."

"진동? 무슨 진동 우리는 저 아래 쪽 장 속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전혀 그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마 그걸 너희는 느끼지 못했을거야. 하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어. 분명 심장에서 전해진 진동일거야.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고 있긴 하지만 항상 심장의 진동을 느끼면서 잠을 자고 있거든. 그런데 아주 잠시 심장이 멈췄었어. 아주 잠깐말이야. 그러니깐 우리처럼 항상 심장에 귀기울고 있는 감정들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거야. 그리고 그 다음 심장은 아주 강한 진동을 내보냈지. 딱 한번!"

"그 한번의 진동때문에 너희가 모두 일어났단 말이야?!"

"그건 분명 한번의 진동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어. 지금 이 아이에게는 '슬픔'이 필요해. 그래서 우리가 모두 일어난거야. 이 아이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거야."

"아니 내 생각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거 같아. 이렇게 너희가 한번에 일어나서 '슬픔의 나무'로 향한다면 슬픔의 나무는 견뎌내지 못할거야. 우리도 어떤 감정보다 활발하게 감정의 나무와 교류하지만, 이렇게 벌떼같이 감정의 나무에 달려들지는 않는다고! 너희가 이렇게 한번에 모여들면 감정의 나무는 폭발해버릴지도 몰라! 그럼 그 연쇄반응으로 다른 감정의 나무까지 이상해져 버린다고! 어서 다른 '슬픔'들에게 이야기를 해줘. 다시 돌아가라고!"

"아니 그럴 순 없어! 이건 우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야!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들의 세계에서 이 명령을 절대적인 것이야. 너 말대로 이대로라면 감정의 나무가 파괴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조차 아마 이유가 있을거야. 그러니깐 우리는 멈출 수 없어. 이건 우리를 창조한 조물주의 계시야. 우린 그걸 따라야만해. 그게 우리의 숙명이라고!"

"말도 안돼! 너희는 감정의 나무가 모두 파괴되어도 괜찮다고! 지금 이미 모든 감정의 나무들이 이상해졌어. 며철전부터 모든 감정의 나무들이 봉인되어버렸다고! 왜 그런일이 벌어졌을거 같아? 다 너희 때문이야! 너희들이 지금 이러고 있으니깐, 감정의 나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봉인을 해버린거라고! 아마 '슬픔의 나무'도 예외는 아닐걸. 이대로 가봐야 너희 중에 누구도 감정의 나무와 소통할 순 없다고. 쓸데없는 짓은 당장 그만두고 어서 다들 제자리로 가도록 좀 설득해줘!"

"감정의 나무가 봉인되었다고?! 설마! 우린 계시를 따라야해!"

"소용없어. 한번 나랑 같이 가보자고! 감정의 나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잠시 언쟁을 멈추고 같이 감정의 나무로 향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잠시 접어두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감정의 나무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꽉막힌 상태가 되었다.


"왜 앞으로 못가죠? 혹시 앞에 무슨 일이 있나요?"

나와 함께 하고 있던 슬픔이 외쳤다.

"슬픔의 나무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나봐요. 슬픔의 나무에게 가는길이 막혔다는데요."


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제 내 말을 믿겠어? 당장 다시 돌아서서 다시 잠을 청하라고!"

"아니 가는 길이 막혔다고 해서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어. 우리는 슬픔의 계시를 한번 받은 이상 우린 잠들 수 없어!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기다려야해! 슬픔의 나무에게 갈 수 있을 때까지!"


세상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앞뒤가 꽉 막힌 고구마 감정이 있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난 그들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여기서 시간을 허비했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복잡하게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누굴까? 분명 누군가는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텐데?


"장로님 저희는 이제 어쩌죠??"

내 옆의 어린 녀석이 나를 보챈다.

"근데 왜 심장이 잠시 멈췄을까요?"

난들 알겠는가? 그리고 그게 뭐가 궁금하다고...

"심장은 원래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거 아닌가요? 심장을 지배하는 '신'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신?!"


'그래. 신!'

이 아이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지배하는 신! 그들이 심장을 지배한다. 누군가 심장을 잠시 멈추게 했다면 그건 바로 신이 한 짓이다. 그렇다면 지금 '슬픔'을 모두 깨운건 바로 그 '신'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신이 모든 슬픔을 잠재울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 신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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