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처음으로 10km 트레드밀 달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10km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허비해야 하는 에너지는 또 얼마나 클지 알 수가 없었기에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래서 조금 더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일을 반복했다.
기록은 계속 향상되었다. 대회를 일주일 남기고는 13km까지 뛸 수 있었고 몸무게는 어느 덧 77.8kg까지 내려왔다. 원래 목표는 75kg이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 5kg이상 감량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배번표와 기록칩도 도착했다.
택배를 받아본 순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복잡한 감정에 휘말려 들었다.
그것은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마라톤 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잠들기 전 침대에 잠시 앉아 다음 날 느끼게 될 흥분과 감동을 미리 예감해본다. 등골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대회를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쳤다. 대회 코스도 꼼꼼히 살피고 혹시 스마트 워치가 말썽을 부릴까봐 주요 건물들과 그곳에 도달해야 하는 시간까지 외워두었다. 물론 며칠 전부터 몸 관리도 시작했다. 달리는 시간도 거리도 줄였고, 식사도 계산된 칼로리만큼만 먹었다. 그렇지만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 완주할 수 있을까? 오버페이스를 해버리면 어떡하지? 스마트 워치 GPS가 또 말썽을 부리면 어떡하지? 설마 코스를 헷갈려서 다른 데로 뛰어가버리는 일은 없겠지?'
자려고 누워 있으니 오만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마라톤 대회 당일 새벽 6시.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사방은 어두웠다. 하지만 긴장감에 시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눈이 떠졌다. 조금 더 침대 위에 있어도 되지만 그냥 일어나서 천천히 준비하는 쪽을 선택했다. 먼저 계획한 대로 바나나 2개를 먹는다. 무게는 약 100g 정도 되는 것으로 이 정도면 대략 200kcal를 섭취하게 될 것이고, 10km 코스를 뛰는 데는 충분한 열량이다.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크게 숨을 내쉰다. 레깅스의 타이트함이 비장한 마음까지 조여주는 듯하다.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수원 종합운동장으로 가족들과 함께 출발했다. 집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찍으니 거리가 10km 정도로 표시된다.
‘오늘은 이 거리를 두 다리로 달려야 하다니..'
종합운동장으로 가는 길, 10km가 그 날따라 길게 느껴졌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호회에서 온 듯한 사람들은 둥그렇게 대형을 만든 채 몸을 풀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참가한 듯한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몸을 풀고 있었다. 여기서 혼자 온 사람은 나말고는 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같이 있어줘서 몸을 푸는 동안 그리 뻘쭘하지는 않았다.
시계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출발은 9시. 대략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먼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천천히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 그 후 100m 트랙에서 스톱워치로 기록을 재며 내가 원하는 페이스를 몸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아, 이 정도 속도로 달려야 하는구나’
대충 감은 잡았는데, 반복해서 뛰다 보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듯 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니 땀이 식어 한기가 느껴진다. 이거 시작도 하기 전에 좀 꼬인 거 같은데...
출발 전 여러가지 행사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너무 달아오르지도 너무 차갑게 식어버리지도 않도록 워밍업과 휴식을 반복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건 나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빨리 행사가 마무리되기만을 바랬지만,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단상에서는 경품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운동장 안의 모든 시선이 그쪽을 향했지만, 난 그 순간에도 오로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9시 정각.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터졌다. 하프 엘리트코스, 마스터스 그리고 이어서 10km 주자들이 차례로 출발하기 때문에 나는 출발선 한참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출발 전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쳤다. 원래 그런 행동은 잘 안하는 편인데, 살짝 긴장하고 있었나보다. 앞선 주자들이 출발하고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갈수록 심장박동은 배가 되었다. 등을 타고 올라오던 흥분은 출발선에 이르렀을 때, 절정에 도달했다. 팔과 목덜미에는 소름이 돋았다. 몸에 힘을 빼려고 했지만,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을 제어할 수 없었다. 헐크 같은 힘이 느껴졌고, 그 에너지를 두 다리에 모아 힘차게 출발선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힘도 곧 넘쳐나는 인파 속에 어쩔 수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사람들로 뒤엉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런 현상은 첫 번째 사거리를 돌 때까지 이어졌다. 목표는 1km를 6분에 뛰는 것이었지만, 첫 1km를 6분 14초에 통과했다. 그래도 목표에서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기에, 페이스를 올리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사거리를 돌고 주자 간의 거리는 조금 벌어지기 시작했다. 첫 1km에서 늦춰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페이스를 올렸다. 다행히 2km 통과 기록은 11:32. 이제 1km를 6분에 돌파하는 페이스만 유지하면 된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될 때마다 페이스가 들쭉날쭉해졌지만 전체 페이스는 목표대로 흘러갔다. 순조로웠다. 호흡도 지치지 않았고, 걱정했던 것만큼 날씨도 춥지 않았다. 5km 지점에서 급수대를 만났지만, 물을 마실 필요도 없었다.
레이스가 중반을 넘어서자 주자들의 간격은 더욱 넓어졌고, 주변은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주자들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이제 굳이 시계를 보지 않고 앞사람만 보고 뛰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훨씬 달리기가 편해졌다. 그 사이 6km 지점을 통과했다. 평소 러닝머신에서는 6~7km 구간이 되면 첫번째 고비를 맞이하지만, 이 날 나의 허벅지 근육은 지칠 줄 모르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완주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몸상태는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이게 ‘대회발’이란 건가? 이젠 완주보다는 기록 단축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기록을 1시간 이내로 찍어보고 싶은 마음에 8km 지점을 통과하며 페이스를 올렸다. 하지만 오르막을 만나자 속도는 저절로 원상태로 돌아갔다. 몸이 지쳐서인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멀리 수원 종합운동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결승선이 코 앞이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며 운동장에 들어서자 처음 출발했던 트랙이 나타났다. 이어서 결승선이 보인다.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
10km를 완주했다!
기분이 오묘했다.
지난 한달간 오직 이 순간만을 상상했었는데,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니 이상하게도 강렬한 환희보다는 소박한 안도감만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밤새 연구했던 세레모니조차 잊어버린채 밋밋하게 결승선을 통과해버렸다. 나의 첫번재 마라톤은 그렇게 끝났다.
첫 10km 마라톤 기록, 58분 25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