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유망주?

by 제이식

'운동을 하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다짐이 길게 이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보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성공은커녕 1주일조차 버티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매일 퇴근 후 아파트 헬스장으로 다시 출근을 했고, 스스로 세운 '전날보다 500m 더 달리기'라는 목표도 꾸준히 지켜내고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킨 것도, 목표했던 일이 술술 풀렸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이번 생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 결과, 처음에는 고작 2.5km를 달리는 게 한계였지만, 일주일 뒤 5km를 한 번에 뛸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렇게 잘 뛰는 거지?'


이런 내 모습은 스스로에게도 낯설었다. 그리고 뛰면 뛸수록 더욱더 내일의 내가 궁금해졌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500m를 더 뛸 수 있을까?


내일의 '나'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해서 운동 욕구를 부추겼다. 퇴근하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물론 뛸 때는 힘들지만 결과에 대한 만족감은 그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다. 그리고 남는 것은 호기심,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나 정말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건가? 차라리 어려서부터 이 길로 나섰다면 지금쯤 황영조, 이봉주의 대를 잇는 '마라톤'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허무맹랑한 망상까지 든다.


그런데 '마라톤?'

호기심에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라톤’을 검색했다. 연관검색어로 ‘마라톤 온라인’, ‘마라톤 대회 일정’이 뜬다. 그리고 이어서 백과사전에는 마라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42.195km를 달리는 최장거리 종목으로, 지구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경기라 할 수 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지구력의 한계”.

왠지 이 단어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계에 도전하고 그걸 극복하며 골인지점에서 포효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벌써부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영웅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내친김에 연관 검색어까지 클릭해본다.


‘마라톤 대회 일정’


검색어를 입력하자 마라톤 대회 일정을 정리한 웹 사이트들이 나온다. 이렇게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집 근처에서도 열리는 대회가 있을까?'

'있다! 대회가 있다! 2월 24일. 경기 국제 하프마라톤대회.'


앞으로 1달 뒤였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 이 설렘.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다. 마흔이 넘었지만, 소년처럼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 참가 접수를 앞두고 며칠간 망설였다. 참가하고 싶은 부문은 10km 코스인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정말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10여 년 전인가? 회사에서 마라톤 대회를 한다고 해서 5km 정도를 뛰었는데 3일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두배의 거리를 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10km 코스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냥 쉽게 해버릴수 있는 것이라면 좀 시시하지 않은가? 올라서 보지 못한 곳, 넘어서 보지 못한 한계를 부숴버리고 싶었고, 그 순간의 희열을 원했다.


그렇게 낯선 것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대회 참가를 고민하는 사이에도 기록은 점점 향상되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7km를 한 번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대회 참가 접수를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맨날 러닝머신에서만 달렸는데, 실제 도로 위에서 달리면 더 힘든 건 아닐까? 오르막 길에서 지쳐버리면 어떡하지? 맞바람이 불면 훨씬 힘들지는 않을까?'


막상 마라톤 대회 참가 접수를 하려니 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클릭.


"대회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한 줄의 메시지가 뜬다.


'모르겠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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