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인생

"그래도 월급쟁이가 최고야!"

by 제이식

월요일 아침.


'5분만 더.. 5분만 더..'를 되뇌며 침대에서 늦장을 부리다 결국 30분이 지난 뒤에야 시계를 보고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이불킥을 날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후다닥 머리만 감고 가지런한 머리 정리는 생략이다. 잡히는 데로 옷을 입고 집을 나서지만, 안 그래도 막히는 출근길은 평소보다 늦어진 시간 덕에 더욱 답답해져 있었다.


마음이 조급하다.

'왜 이리 내가 서 있는 차선만 안 가고 있지?'


슬쩍 사이드미러를 확인하고 핸들을 꺾는 순간 '빵!'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귀를 때린다. 뒤에 있던 차는 급하게 차를 몰아 내가 앞에 끼어드는 것을 막아선다. 저리도 야박하게 구는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짙게 선팅 된 차창 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밀려온다. 가만히 있자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고, 그렇다고 당장 차에서 뛰어내려 멱살잡이 할만한 일은 아닌 듯하고. 그냥 부글거리는 속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도로 위의 차들은 지렁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앞차(머리)가 먼저 조금 움직이면 뒤차(꼬리)가 딱 고만큼만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조금.. 다시 조금.. 답답하고 지루한 출근길은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제시간에 도착하는 걸 포기하고 나니 딱 고만큼 마음은 편해졌다.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게이트 앞에 서자, 문은 열리지 않고 '부제 위반차량'이라는 빨간 글자만 뜬다.

'아! 하필이면 오늘이 5부제 날이라니..'

단전에서부터 짜증이 울컥울컥 올라오지만, 숨을 고르고 차를 돌려 다시 꽉 막힌 도로로 나오는 수밖에.


회사 앞 사거리, 신호가 바뀌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서 있는 차선만 요지부동이다. 목을 길게 빼고 보니 앞에 있는 버스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가만히 서 있었다. 급하게 차선을 바꿔보지만 짧은 신호가 다시 나를 막아선다. 도리없이 신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독한 '머피의 법칙'같은 건가? 왜 이리도 아침부터 꼬이기만 하는지.


회사 근처 공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니 급하게 회사에 들어갈 마음도 사라졌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 한 갑과 그 가게에서 제일 싼 캔커피 하나를 샀다. 편의점 앞에는 낡은 벤치 하나가 있다. 아침햇살이 길게 드리운 그 벤치에 앉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캔커피 뚜껑을 따고 담배 한 모금과 함께 마신다. 싸구려 캔커피는 달달하고 따뜻했다. 햇살이 덥혀 놓은 벽에 등을 대고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는다. 치열했던 출근길의 기분은 잠시 잊고 한가로이 망상에 빠져본다.


'너도 참 오래 버티고 있구나.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데..'

낡은 벤치를 보며 속으로 말을 건넨다.


'입사한지도 벌써 15년. 너무 아득하네.

너나 나나 참 잘 버텼구나.

처음 여기에 온 게 언제일까?

아마 이 골목에서 동기들과 자주 어울렸으니 술 마시고 지나는 길에 여기서 담배 한 대 폈으려나?

요즘에는 화나고 답답할 때만 이곳을 찾는구나.'


사내에 흡연장이 있긴 하지만, 혼자 담배 한 대 피고 싶을 때, 여기까지 와서 천천히 담배 한 대와 시름을 같이 태우곤 한다.


'생각해보니 참 긴 시간이다.

15년이라.. 나의 20,30대 시절을 모조리 갈아 넣었구나.

그리고 이제 마흔이 넘었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이렇게 되돌아보면 한낱 회사일인데 왜 그리 마음 쓰고 애태우는 날들이 많았는지...

가끔 좋을 때도 있었는데...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했었던 좋은 동료들.

그들과 어울려 참 많은 밤을 같이 보냈었는데...

뒤돌아보면 왜 이리 짧게만 느껴지는 건지?

그 오랜 시간 동안 뭘 한 걸까?

별로 달라진 것도 모르겠군.

그저 이 골목의 간판들만 없어지고 또 새로 생기는구나.

그래도 회사 덕에 아이들도 낳고 키우고, 우리 식구들 먹고 자고 입고 쓰고 할 수 있었던 거 아니겠어?

이 죽일 놈의 월급.

마약처럼 끊을 수가 없는 거지.

얼마나 남았을까?

이 월급쟁이 인생.'


갑자기 어릴 적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신 후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그래도 월급쟁이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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