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운동 #건강 #속리산 #가족 등산
2019년 9월 어느 날.
오전 9시 59분.
PC 앞에서 초조하게 10시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이미 5분 전부터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몇 초 안 남았다. 9시 59분 57초, 58초, 59초.. 그리고 10시 정각.
시작이다.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시스템 open!
나름 '한메타자교사'(DOS와 플로피 디스켓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시절의 타자연습 프로그램) 분당 300타를 가볍게 돌파했던 속사수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기록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실전에서는 말야. (총을) 뽑는 속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전투기술? 그딴 거 없어. 얼마나 침착한가, 얼마나 빨리 판단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느냐? 그게 다야."
공동경비구역 JSA 오경필 중사(송강호 배우)가 이수혁 병장(이병헌 배우)에게 했던 대사이다.
대피소 예약, 분당 몇 타를 치느냐 이딴 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침착하게 얼마나 대담하게 클릭하고 타이핑을 하느냐 그게 다이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단풍 시즌 설악산 대피소 예약에 성공했다.
"야호!!"
2017년 가을,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산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등산이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니까, 그게 맞다면 24년 만에 산에 온 것이다. 어색하게 짧은 머리를 하고 친구들과 속리산 문장대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아마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이 제법 농익은 어느 주말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근처에 캠핑을 왔다가 단풍놀이나 할 요량으로 속리산을 찾아왔다. 산에 오기는 했지만 미리 정해놓은 등산 코스 같은 건 없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짜리 첫째, 그리고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6살짜리 둘째와 함께 하는 산행이다 보니 어디까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는 데까지 가다가 힘들면 내려오면 되지"
산길을 떠나기 전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고 등산로는 법주사를 지나 세조길로 이어졌다. 피부병이 심했던 세조(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연기했던 그 임금님)는 이곳까지 목욕을 하러 왔었는데, 그때 지나던 길이라 하여 '세조길'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세조가 이 길을 가마를 타고 올랐을까? 아니면 운동삼아 걸어갔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여튼 잘은 모르겠지만 야트막한 오르막길이라서 어떻게 가더라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법하다.
그래서인가? 길을 걷는 동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들이 내뿜는 냄새, 살랑살랑 스치는 바람, 햇빛에 비친 단풍의 고운 색까지 가는 길에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제 산이 좋아질 만한 나이가 된 건가? 길을 걷는 동안 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가볍게 해 주었다. 발걸음은 경쾌해졌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 상태였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도 잘 따라왔다. 모든 것이 수월했다. '세심정'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세심정'은 문장대와 천왕봉으로 나뉘는 길 가운데 있는 정자이다.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팻말은 문장대와 천왕봉까지 3km 정도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표지판을 통해 우리가 법주사에서부터 2.7km나 걸어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벌써 2.7km나 올라왔다고! 등산 별거 아닌데..'
자만심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지도 않던 욕심이 생겨났다.
'정상까지 가볼까?'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미 2.7km를 왔고, 3km 정도만 더 가면 정상이다. 지금까지 잘 왔지 않은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정 힘들면 그때 내려오면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세심정을 출발하고 머지않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심정 이후부터 진짜 산행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넓고 완만한 길은 없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다. 그전까지 왔던 길하고는 전혀 다른 강도이다. 난 우리 가족 일행의 가장 뒤에 쳐져서 산을 올랐는데, 10월 초였지만 땀은 연신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입고 온 외투는 벗어서 허리춤에 묶어두었지만,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은 뒤였다.
"아빠 얼마 남았어?"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천왕봉으로 가는 길 중간 어디 즈음이라는 것 밖에는. 얼마나 더 가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올라가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래, 이만하고 내려갈까?'
혼자 슬슬 내려갈 궁리를 하던 그때, 하산하는 등산객과 마주쳤다. 지긋이 나이가 들어 보이시는 부부였다. 그분들은 쪼그만 두 아이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을 보시고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워하더니 이내 메고 있던 배낭을 뒤져 초콜릿과 과자를 한 아름 아이들 손에 쥐어주며 '장하네! 기특하네!' 칭찬을 연발하셨다.
칭찬 스테로이드는 놀라웠다.
다 죽어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힘을 내고 앞장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마주치는 등산객들마다 공통된 반응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꼬맹이들이 여기까지 왔냐고 놀라워하다 다들 과자를 한 움큼씩 아이들 손에 쥐어주며 칭찬을 한 마디씩 남기고 내려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어깨가 으쓱해져서 더욱 힘을 내 산을 올랐다. 이러다 보니 내려갈 타이밍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결국 너무 많이 와버렸다. 정상까지 대략 1km 남았음을 알려주는 팻말이 나왔다. 이 쯤되니 이제는 그냥 내려갈 수 없었다.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어떡해서든 정상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정상까지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누가 도술이라도 부리는 건가? 가도 가도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포기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오르고 올라 기어이 천왕봉에 도착했다.
정상이다. 속리산 천왕봉, 해발 1058m! 정상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8살, 6살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오다니...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거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래도 그 힘든 노고를 잊게 할 만했다. 가을 하늘은 청명했고, 그 아래 산줄기를 따라 산들이 첩첩이 겹쳐있었다. 근데 그 많은 산들 중에 하늘 아래 구름과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우리였다. 세상에! 정말 여기를 저 꼬마들과 같이 올라왔단 말인가?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기쁘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너무 지쳐있었고 더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올라온 바람에 우리는 허기를 채울만한 간식도 없었다. 다행히 인심 좋은 등산객들이 십시일반 먹을 것을 나눠주어 약간의 요기는 했지만, 그 먼길을 다시 내려오는 내내 배고픔은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는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작은 식당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그곳에서 우동을 주문하고 곧이어 그토록 원했던 우동 한 그릇씩을 받아서 벤치에 앉았다. 따끈한 우동 국물과 통통한 면발. 특별한 건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식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마 이 날 먹은 우동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