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색빛깔 단풍, 오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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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대략 보니 가을 단풍 하면 내장산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 같고, 거기에 버금가는 것이 설악산인 것 같다. 계절은 단풍이 절정인 때라, 어디든 단풍을 찾아 떠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지만 어느 산을 찾아갈지 고르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단풍으로 유명한 산을 대놓고 고르자니 단풍 보러 갔다가 사람들만 보고 올 듯싶고, 그렇다고 그저 그런 산으로 고르자니 단풍이 아쉬울까 걱정이고....


그러다가 가기로 한 곳이 '오대산'이었다.


왜 하필 오대산인가?

위치로 보면 백두대간 중 금강산과 설악산 바로 아래이고, 높이는 최고봉인 비로봉이 1,563m, 우리나라에서 8번째이며, 국립공원이 된 건 1975년으로 11번째이다. 나름 명산 축에 속하기는 한데 뭐하나 으뜸가는 것은 없다. 검색해보니 최근에는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전나무숲길이 유명세를 탔었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도 꽤 인기가 좋은 듯싶었는데, 막상 내가 가려하는 비로봉은 별 이야기가 없다. 다만 상원사에서 출발하면 3.5km만에 도착할 수 있고 오대산이 흙산이라 가는 길이 완만하다 하니 그것 때문에 오대산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비록 지난번 속리산 천왕봉까지 다녀왔다고는 하나 그래도 두 꼬맹이들을 데리고 가야 히나 가는 길이 너무 험했다가는 낭패를 볼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봉평에 있는 캠핑장에서 출발해서 상원사 입구까지 차로 갔다. 때는 10월 말인데도 오대산 아래는 어찌나 추운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기에 깜짝 놀라 지퍼를 목 위까지 바싹 올려야 했다.

10월의 오대산, 여기 엘사라도 다녀간 건가?


전날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지만, 날은 여전히 찌뿌둥해 양지바른 곳조차 안 보이고, 추위를 덜어낼 방도는 냅따 산을 오르는 것뿐일 듯한데 어찌 된 일인지 꼬맹이들이 잘 따라오지를 않는다. 왜 그런가 보니 상원사로 올라가는 쪽에서 다람쥐 한 마리를 보고는 다람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저런다고 저 어설픈 사냥꾼들한테 붙잡힐 다람쥐인가? 좁은 바위틈 사이로 쏙 숨으니 사냥꾼들은 방도가 없다. 나올 기미는 없는데 꼬맹이들은 요령도 없이 그 앞에서 멀거니 서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만 한다. 구멍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아이들을 농락이라도 하듯 다람쥐는 다른 구멍으로 쓱~ 기어 나오더니 상원사 쪽으로 유유히 내뺀다. 그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모양새가 닭 쫓던 강아지들 같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다람쥐가 나오겠니??


오대산에 오르는 길은 편해서 좋기는 한데, 영 심심하다. 하염없이 계단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에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어찌 녀석들을 끌고 가야 하나 난감하던 차에 아내가 기지를 발휘했다. 지나는 길에서 오색 낙엽을 모아 오는 게임을 제안했다. 색을 하나 정해서 그 색에 맞는 낙엽을 가져오되 가장 예쁜 색을 찾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덕분에 지루한 초반 코스는 어느 정도 넘겼다.


누구의 빨간색이 가장 예쁜가요?
다들 노란색이긴 한데, 영...


중대사자암까지 왔으나, 아직도 절반은 넘게 남은 듯하다. 그래도 형형색색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해 주니 나야 좋지만 꼬맹이들은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 나오는지, 왜 오늘은 '까까 줄까?' 하는 어르신들이 안 나타나는지가 궁금하다. 날도 찌뿌둥한 월요일에 산을 타는 건 우리 가족들 말고는 다람쥐들이 전부인 듯한데, 난들 이럴 줄 알았겠는가?



중대사자암의 형형색색 단풍은 눈을 즐겁게 해 준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적멸보궁 옆을 지날 때는 여기가 부처님 진성 사리를 모시는 우리나라에 5군데 밖에 없는 진귀한 곳이니 같이 가서 구경해보자는 말도 못 꺼내고, 혼자서 잽싸게 뛰어올라가 대문 사진만 카메라에 얼른 담아서 돌아왔다.

적멸보궁은 나 혼자 보고 올게!


그 사이 오색빛깔 단풍이 모두 모였다. 한참 게임할 때는 몰랐는데, 그래도 1등들만 모아놓으니 꽤 그럴싸했다.

오색빛깔 단풍이 모두 모였다.


그나저나 꼬맹이들을 너무 얕봤나 보다. 이제 정상이 코 앞인데 아직 여유가 넘쳐난다. 괜한 걱정에 너무 쉬운 코스를 골랐나 보다. 고생고생해서 정상에 오르는 맛도 좀 있어야 보람도 있고 할 텐데, 이거 원 너무 쉬우니 밋밋한 게 좀 아쉽다.

다음번에는 좀 더 힘든 곳으로 가도 될 것 같다.


오대산 비로봉이다. 해발 1,563m!

제 아무리 힘들고 지겨워도 정상에 도착하면 그 수고가 그리 아깝지 않다. 잔뜩 구름 낀 하늘이긴 하나 그 아래 펼쳐진 강산이 다 내 아래에 있으니 어찌 뿌듯하지 않겠는가? 정상석에 버젓이 써져있는데 둘째는 자꾸 여기가 몇 m짜리 산이었냐고 물어본다. 아마 돌아가면 그게 뭔지도 모를 친구들한테 떠들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으니 자기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꼭 기억해두려고 하는 것 같다.

해방 1,563m 오대산 비로봉
이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시 내려가는 길에는 잔뜩 흐렸던 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쨍하고 갰다. 그래도 막판에 중대사자암에서 만난 어르신들 덕분에 사탕까지 한아름 챙겼으니 나도 꼬맹이들도 그리 아쉽지는 않은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늘도 사탕이 한아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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