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구름 위의 산책, 소백산

#소백산 #100대명산 #가족등산 #철쭉

by 제이식

오월의 녹음에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산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다만 보통 삼사월 정도에 푸른 내가 올라오기 시작해서 한여름이 되면 절정을 맞이하는데, 오월의 녹음은 딱 그 중간 즈음이다. 너무 여리지도 너무 농익지도 않았는데, 살짝 설익은 맛이 나면서도 도저히 가둬둘 수 없는 생명력이 봇물 터지듯이 폭발한다. 이 오묘함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는 꼭 한번 가보길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오월의 소백산'이다.


소백산은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금강, 설악, 오대산을 거쳐 남도의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의 허리춤에 위치해 있다. '소백(小白)'이란 단어가 주는 소박한 느낌과는 어울리지 않게 충청도와 경상도를 걸쳐서 널찍하니 펼쳐진 산세는 완만하지만 듬직하고 매섭지는 않으나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오월의 어느 날, 단양에 있는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찌감치 소백산을 찾아왔다.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 부지런히 아침을 해 먹고 오니 대략 8시 즈음이다. 이제 해가 꽤 길어져서 8시라도 해가 제법 높이 떠있다. 화창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햇살은 눈부시게 빛난다. "날씨 참 좋다!" 마음속의 말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툭 튀어나와 버렸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등산로는 천동계곡으로 이어진다.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들은 짙은 그늘을 만들고, 그 옆을 흐르는 계곡 물줄기는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할 만큼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는 소백산이라는 푸른 산수화의 화룡정점이다. 형형색색 피어나 지나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니 고된 줄도 모르고 산을 오르게 한다.

소백산의 오월에는 특별함이 있다.
길을 가다 만나는 야생화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참으로 좋았다. 거칠지 않은 산길에 여유롭게 즐기는 오월의 신록은 말 그대로 힐링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잠시 쉬어가며 바라본 아이들의 표정에서 지루함과 고단함이 묻어난다. 비로봉까지는 7km 정도. 동네 뒷산 마실 가듯이 편안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래도 힘들다는 투정 한마디 없다. 첫째는 언제나처럼 가장 앞장서서 산을 오르고, 내가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가면 둘째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내 뒤를 따른다.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나야 좋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소백산은 지루하고 힘든 산이었을 것이다


특별날 것 없던 산이 주목군락지에 이르자 순식간에 전혀 다른 탈을 쓰고 나타난다. 꼬맹이들 눈에도 이런 변화가 신기했는지 둘째는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짤막한 생물 지식으로 어영부영 답을 해주었는데, 다행히도 둘째는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다. 그나저나 시작할 때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은 어디 가고 사방이 온통 회색 구름이다. 어째 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주목군락지에 다다르자 소백산은 갑자기 탈을 바꿔 쓰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비로봉 정상에 거의 다다르자 우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에 갇혀버렸다. 그 먼 길을 올라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상이라니! 이리도 허망할 수 있는가! 정상에서 응당 누려야 할 모든 혜택을 구름 떼가 모조리 집어삼켜버렸다. 하늘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 그림 같은 산수도, 철쭉군락의 오색찬란한 빛깔마저도.

정상에 다 왔는데 여긴 완전히 구름 속이다!
소백산 비로봉에 올라섰다.


하지만 나와는 반대로 아이들은 세상 신났다. 이 녀석들에게 구름 속 세상은 동화 속 세상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입을 잔뜩 벌리고 구름을 먹어 보겠다며 방방 뛰어다니는 꼴이 불과 몇 시간 전 힘들다고 풀이 죽어있던 아이들이 맞나 싶다.


그래! 비록 같이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각자 즐거운 추억 하나씩은 남기고 돌아가니 그리 허무하지만은 않은 산행이로구나!

어디서 나뭇가지를 주워와서는 또 장난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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